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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시민단체와 기업의 한판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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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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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역사상 최대규모로 치러지는 지구정상회의… 국익·이윤과 환경·인권의 대결

사진/ "세계의 지도자들이여, 잠에서 깨어나 지구를 구하라"고 외치는 세계야생기금의 시위. (이성훈)
세계 190개 국가 정부대표, 국제기구 및 민간단체의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지난 8월26일부터 10일간 일정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지구정상회의)가 개막됐다. 공식 등록한 참가자 수만 약 2만여명. 190개 국가에서 정부 대표단 약 9천여명, 시민사회단체 8천명, 언론인 4천명 정도가 참여하였고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부대 행사 참가자까지 고려하면 4만명을 쉽게 넘는다. 유엔 관계자에 따르면 유엔 역사상 참가국 수와 참석자 수에서 최대 규모다.

다국적 기업의 로비 활발

사진/ 지구정상회의는 유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다. 개막을 축하하며 올라가는 유엔기와 남아공 국기.
이러한 메가톤급 회의를 일부에서는 축구의 월드컵과 비교해 ‘지구컵’(Earth Cup)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이변에 대한 흥분과 축제 분위기에서 마무리된 한·일 월드컵과 달리 지구컵 대회는 처음부터 낙관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불안과 우려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유리컵을 깨지 않기 위한, 즉 지구의 존속 가능성에 대한 위기의식은 회의 직전과 기간 중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재난으로 인해 더욱 고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주최국인 남아공 타보 음베키 대통령의 환영 및 개막연설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는 현재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가난한 나라의 10억 이상의 인구가 직면한 극심한 가난을 ‘환경의 최대 적’이자 ‘지구적 아파르트헤이트(제도화된 인종차별)’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이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자원과 기술이 있음에도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인류 모두의 수치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 선진국의 협조와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를 촉구했다.

그러나 막상 협상이 다시 시작되자마자 지속가능성, 연대와 같은 보편적 가치는 이른바 국익의 논리와 기업의 이윤논리 사이에 끼어 실종돼버렸다. 사막화 방지, 기후변화협약 비준, 화학물질 사용, 환경재난 방지 등의 환경문제는 상대적으로 쉽게 합의가 되었지만 세계화, 무역, 재정 및 효과적 이행을 위한 체제정비 등의 분야에서는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 간 기구인 유엔에서 국익을 매개로 협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익숙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는 과거 유엔의 어느 회의보다도 다국적 기업의 적극적 참여와 영향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92년 리우회의에 주도적 역할을 한 말레이시아의 제3세계 네트워크 소장 마틴 코씨는 “애매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이용해 상당수의 반환경적 다국적 기업들이 친환경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고 우려하며 “다국적 기업의 반환경적 활동을 규제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환경이 경제에 납치당했다”

사진/ 지구정상회의 사무총장 니티 테사이(왼쪽)와 남아공 외무장관 들라미니 주마(오른쪽)가 회의장 밖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9월4일 마지막 정상회의가 열린다.
형식적으로 회의는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 간 협상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다국적 기업과 국제 환경 및 인권단체가 힘을 겨루는 줄다리기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유엔이 설정한 물, 에너지, 건강, 농업 및 생물다양성의 다섯 가지 중심과제에 대한 전체회의에서 다국적 기업은 ‘판정패’를 당한 듯했다. 다른 주요 그룹과 국제기구, 상당수의 국가들이 다국적 기업 활동의 국제법적인 규제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외에서 엄청난 로비와 압력수단을 지닌 다국적 기업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은 기업의 대표가 정부 대표단의 자격으로 발언과 로비를 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 다른 주요 그룹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한편 한 기업체 대표는 패널에서 “기업은 지속가능한 발전, 특히 가난퇴치와 환경보전 사업에서 중요한 파트너다. 시장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활동에 대한 법적 규제가 아니라 자율적 개선을 유도하는 윤리강령이나 모범사례가 바람직하다”며 다른 주요 그룹의 논리를 반박했다.

92년 리우회의가 환경과 발전을 분리해서 논의한 반면 이번 회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틀 속에서 사회, 경제 및 환경문제가 통합적으로 논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보라고 평가해왔지만 이번 회의에 참여한 상당수의 국제 환경운동단체 참가자들은 “환경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구실로 경제에 의해 납치당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지구의 벗’ 소속 한 참가자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실제로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빠진 지속되는(sustained) 경제성장으로 전락했다”며 “더 이상 이 개념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한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는 “평상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무역과 재정문제, 특히 지난해 11월 채택된 세계무역기구의 도하발전의제, 올해 3월 멕시코 몬트레이에서 열린 개발재원을 위한 국제회의가 채택한 몬트레이 합의 등 경제 관련 문제가 협상의 중심적 이슈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세계화된 경제의 현실에서 경제, 특히 무역문제를 모르고서는 국제 환경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일부 활동가 회의 거부론 제기

이러한 이슈 통합의 추세는 여성·인권·평화 등 여러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젠더적 접근은 물론이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 안전한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권리 등 인권에 근거한 접근과 영성과 윤리적 접근을 강조하는 이슈별 로비그룹의 활동도 주목을 받았다. 평화그룹은 국방비 삭감과 전쟁과 군사기지에 의한 환경오염의 문제를 적극 제기했다.

회의 기간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장내와 장외로 나누어서 활동을 전개했다. 장내에서는 주요 그룹의 구성원들이 정부 대표단을 대상으로 로비에 초점을 맞추었고, 장외에서는 지속가능 발전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토론하고 시민사회의 공통 입장을 모으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장내·장외 양쪽의 활동 결과가 국가 간 협상의 결과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다.

일부 급진적인 활동가들은 “대다수 정부가 겉으로는 시민사회와의 파트너십을 말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기업을 통한 파트너십에 경도되어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회의에 계속 참석하는 것은 들러리를 서고 회의에 정당성만 부여해줄 뿐이다”며 회의 자체를 거부할 것을 촉구하였다. 실제로 많은 시민사회단체 참가자들은 마지막 협상과정에서 미합의된 문안이 무차별적으로 삭제되고 바꿔치기되면서 이행계획이 알맹이 없는 문서로 전락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한편 세계민중포럼의 참자가들은 9월2일 정상회의에 맞춰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민영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전개할 예정이다.

요하네스버그=이성훈 전문위원 almole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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