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의 대가는 비싸네
등록 : 2000-09-27 00:00 수정 :
(사진/시라크대통령(오른쪽에서 세번째)은 인도양에 위치한 모리스섬에서 3주간의 화려한 여름휴가를 보냈다.언론은 그가 쓴 막대한 휴가비용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제원유가의 상승으로 생계비 부담이 커져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화려한 휴가가 프랑스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유명인사들의 사생활 폭로로 악명이 높은 연예주간지 <파리 마치>가 그의 사치스러운 휴가를 아주 적나라하게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 주간지에 따르면 시라크 대통령은 인도양에 위치한 모리스섬에 있는, 세계의 부호들이 모여드는 팔므 로열 호텔에서 하루에 2만1900프랑(약 330만원) 하는 객실을 빌려 3주간의 여름 휴가를 보냈다. 이런 폭로에 격분한 시라크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언론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주간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결국 이 주간지의 대표가 대통령에게 사과를 함으로써 폭풍은 일단 가라앉았다. 그러나 케이블방송
가 “대통령이 팁을 아주 후하게 주었다”는 호텔 고용인들의 말과 “대통령 스스로 체류비용을 다 계산했다”는 회계직원의 증언을 보도함으로써 막대한 휴가비용에 대한 의구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보좌관들은 국민감정을 고려해 1997년 이래 대통령에게 화려한 휴가를 자제할 것을 누누이 건의해왔지만 시라크 대통령은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자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해온 것이다. 코르시카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전국 일간지 편집국장 모임에서도 시라크 대통령은 “휴가는 사적인 장소에서의 사적인 여행”이라고 못박았다.
마약 스캔들에 연루돼 곤욕을 치른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과 영화배우 알랭 들롱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1970년 이른바 ‘침묵의 법’으로 불리는 ‘사생활 보호에 관한 법’이 제정된 이후 프랑스사회에서는 언론이 공인의 사생활을 본인의 동의없이 폭로하는 행위가 금기시돼왔다. <파리 마치>가 미테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 마자린을 특종기사로 보도했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이 잡지를 비난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조스팽 정부의 각료들도 “대통령의 바캉스는 그의 사생활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공인의 사생활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 이를 밝히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휴가비용에 관한 논란이 시라크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의 월급은 세금을 공제하고 4만1416프랑(약 621만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이탈리아에서 스트로치 왕자가 빌려준 50개 객실이 갖추어진 별장에 묶으면서 정부가 빌려준 고급 자동차를 타고 휴가를 보낸 반면 시라크 대통령은 자기 돈으로 휴가비용을 지불했다. 막대한 휴가비용의 출처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파리=신순예 통신원 soonye.sin@libertysurf.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