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기행(1)
교육받지 못한 코소보 젊은이들에겐 굶주림만이… 국제기구 통역이 최고의 직업
발칸분쟁에 관한 글을 기고해온 하영식 전문위원이 7월부터 한달간 발칸 각국을 현지 취재했다. 발칸 기행은 5회에 걸쳐 전쟁으로 피폐해진 발칸반도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
코소보 프리스티나대학에서 알바니아어를 전공하는 셀친 밀로폴로(23)는 시골에서 수도 프리스티나로 유학 온 학생이다. 아버지가 세르비아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깊은 전쟁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알바니아어가 전공과목이지만 여전히 알바니아 어휘가 모자라는지 계속 친구들과의 대화 도중 알바니아어 사전을 뒤적인다.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사전을 뒤적이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물론 일상대화는 알바니아어로 충분하지만 학술용어는 아직도 미숙하다.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에서 유고슬라비아어를 배워야 했고 몇해가 지난 뒤, 세르비아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부터는 학교를 그만두고 가정학교라는 사설학교에서 공부해왔다. 당연히 정상적인 교과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대부분의 코소보 알바니아 청소년들은 셀친과 거의 비슷한 어린 시절을 거쳐왔다. 지금 셀친의 꿈은 기회가 주어지면 이탈리아로 가서 이탈리아 문학을 공부해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무기밀매 코소보 젊은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된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단순육체노동자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도 일거리가 없어 길거리를 배회하는 경우가 많다. 호구지책으로 길거리에는 많은 암달러상들이 돈다발을 들고 죽치고 앉아 있고 바람잡이들이 외국인이 보는 앞에서 미국 달러를 유로화로 바꾸는 연기를 펼쳐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벌이를 공치기 일쑤다. 대부분의 상점들이나 쇼핑센터들은 프리스티나 현지 외국인들을 상대로 상거래를 한다. 사실상 코소보 경제가 외국에서 유입되는 구호자금이나 국제기구들에서 사용되는 돈에 의해 유지되는 형편이다. 유엔과 코소보평화유지군(KFOR), 국제민간단체에서 일하는 수만명의 외국인들이 있지만 이제는 그 수도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화려한 상점들이 하나둘씩 차례로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다. 실업률에 대한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거의 40% 이상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또한 코소보에서는 마약이나 무기밀수와 같은 조직범죄가 판을 치면서 경제의 중요한 한축을 형성하고 있다. 불법적인 무기거래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에서 일하는 한 알바니아인 통역관은 100유로만 지불하면 AK-47총을 살 수 있고, 1유로에 한발의 총알이 거래된다고 귀띔해주었다. 프리스티나 중심가에 자리잡은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바로 유엔과 OSCE 본부들이다. 이들 건물벽에는 통역관을 비롯한 전문인력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기 위해 많은 알바니아인들이 모여든다. 우리나라의 해방공간에서 미군정청이 지배할 당시 통역관들이 사회의 상류계급을 형성하던 때와 아주 비슷하다. 전시상황으로 인한 낮은 교육수준으로 말미암아 영어 구사력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통역관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높아졌다. 일반회사나 공무원들이 받는 한달치 월급이 150유로 정도의 박봉이지만 통역관으로 일하면 1천유로 이상의 월급과 함께 온갖 특권이 주어진다. 즉 일반시민들은 높은 물가에 허덕이며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비해 이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또한 국제기구의 차량을 이용하고 국제기구 건물에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국제기구 건물 입구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일반시민들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절대로, 절대로 전쟁은 안 돼
KFOR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는 레일리 파밀로(45)는 전쟁이 끝난 뒤 처지가 훨씬 나아졌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두딸과 발전소에서 일하는 남편을 둔 그는 전쟁 전에는 빈곤에 허덕였다. 그러나 과거 유고슬라비아 체제에서 받은 고등교육 덕에 다행히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그는 밀로셰비치 정권 아래서는 일자리도 없었고 발전소에 근무하는 남편의 박봉으로 엄청 힘들게 살았다는 고생담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KFOR의 통역관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남편도 발전소에 복직되면서 지금은 코소보 알바니아인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전쟁의 상흔은 악몽과도 같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세르비아인들과 알바니아인들이 이웃하면서 수십해를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이웃이 이웃을 죽이기 시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그는 살던 집을 버리고 온 가족이 고향인 프리스티나를 떠나 정처 없는 피난길에 올랐다. 마케도니아 국경에 도달했을 때 마케도니아 정부에서 국경을 봉쇄해버리는 바람에 며칠을 도로에서 지내기도 했다는 기억하기조차 싫은 나날들을 들려주면서 “더 이상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을 빠뜨리지 말기를 필자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프리스티나(코소보)=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

사진/ 프리스티나 거리의 암달러상들. 직업 없는 이들의 호구지책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무기밀매 코소보 젊은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된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단순육체노동자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도 일거리가 없어 길거리를 배회하는 경우가 많다. 호구지책으로 길거리에는 많은 암달러상들이 돈다발을 들고 죽치고 앉아 있고 바람잡이들이 외국인이 보는 앞에서 미국 달러를 유로화로 바꾸는 연기를 펼쳐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벌이를 공치기 일쑤다. 대부분의 상점들이나 쇼핑센터들은 프리스티나 현지 외국인들을 상대로 상거래를 한다. 사실상 코소보 경제가 외국에서 유입되는 구호자금이나 국제기구들에서 사용되는 돈에 의해 유지되는 형편이다. 유엔과 코소보평화유지군(KFOR), 국제민간단체에서 일하는 수만명의 외국인들이 있지만 이제는 그 수도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화려한 상점들이 하나둘씩 차례로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다. 실업률에 대한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거의 40% 이상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또한 코소보에서는 마약이나 무기밀수와 같은 조직범죄가 판을 치면서 경제의 중요한 한축을 형성하고 있다. 불법적인 무기거래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에서 일하는 한 알바니아인 통역관은 100유로만 지불하면 AK-47총을 살 수 있고, 1유로에 한발의 총알이 거래된다고 귀띔해주었다. 프리스티나 중심가에 자리잡은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바로 유엔과 OSCE 본부들이다. 이들 건물벽에는 통역관을 비롯한 전문인력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기 위해 많은 알바니아인들이 모여든다. 우리나라의 해방공간에서 미군정청이 지배할 당시 통역관들이 사회의 상류계급을 형성하던 때와 아주 비슷하다. 전시상황으로 인한 낮은 교육수준으로 말미암아 영어 구사력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통역관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높아졌다. 일반회사나 공무원들이 받는 한달치 월급이 150유로 정도의 박봉이지만 통역관으로 일하면 1천유로 이상의 월급과 함께 온갖 특권이 주어진다. 즉 일반시민들은 높은 물가에 허덕이며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비해 이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또한 국제기구의 차량을 이용하고 국제기구 건물에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국제기구 건물 입구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일반시민들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절대로, 절대로 전쟁은 안 돼

사진/ 프리스티나 거리에는 언제나 실업자들이 넘쳐난다. 젊은이들은 10년 동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