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후지모리 정권의 2인자이자 정치공작 책임자 몬테시노스는 1946년생으로 페루 육군사관학교 출신.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이름을 갖게 된 배경에는 러시아공산당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있다. 그의 부친은 1950년대 페루공산당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진다. 몬테시노스는 청년장교 시절부터 정보쪽 일을 맡았다. 그러나 현역대위 시절이던 지난 1977년, 당시 페루 사회주의정권의 소련전투기 구입규모가 담긴 정보서류를 미 중앙정보국(CIA)에 넘겨준 혐의로 불명예제대를 당하고 1년 가까이 감옥에서 보냈다. 그뒤 변호사로 변신한 몬테시노스는 마약범죄자들, 그들과 거래하던 경찰관들의 변론을 맡아 짭짤한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80년대 초반 그의 이름으로 임대한 빌딩 두채가 실제로는 콜롬비아 마약조직의 사무소로 쓰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 전력의 몬테시노스에게 권력의 날개를 달아준 사람이 바로 알베르토 후지모리다. 두 사람은 90년 대통령선거운동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기존 정당의 배경없이 독립후보로 나섰던 후지모리 후보는 선거전 초반 사기성이 있는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법률문제로 애를 먹었다. 그 무렵 몬테시노스가 후지모리의 변호를 맡았는데, 관련서류들이 갑자기 없어지는 바람에 후지모리는 기소를 면했다. 그 과정은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후지모리 집권 뒤 몬테시노스는 정보기관을 장악해 후지모리의 철권통치에 앞장섰다. 1991년 리마 교외에서 일어난 15명 민간인 학살사건, 1992년 후지모리가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시킨 뒤에 일어난 라 칸투타대학 학살사건도 몬테시노스의 지휘를 받는 특수정보대(일명 콜리나그룹)에 의한 것이었다. 그 사건으로 9명의 학생과 교수 한 사람이 납치된 뒤 죽임을 당했다. 한편으로 몬테시노스는 지난날 사관학교 선후배 인맥을 십분 활용해 군부에 대한 장악력이 약하던 후지모리 대통령과 군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정보기관의 총수에 올랐다. 군부에 대한 인사를 몬테시노스가 좌지우지해왔다는 것은 리마에서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현재 페루 군부는 그의 사관학교 동기생 29명이 요직을 독차지해 후지모리 정권의 배후실세를 이뤄왔다.
몬테시노스에게는 후지모리 10년 집권 동안 추문이 끊이지 않고 따라 다녔다. 이런저런 이권사업과 관련해 거액을 챙기거나 마약밀매조직들의 뒤를 봐주고 검은 돈을 챙겨왔다는 부패혐의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난 96년 거물 마약밀매범 데메트리오 차베스가 체포됐을 때 그는 법정에서 “마약조직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매달 몬테시노스에게 5만달러를 줬다”고 증언한 바 있다(그는 나중에 자신의 증언을 번복했다). 지난 봄 대통령선거 당시 100만명에 이르는 유령 선거인명부를 대거 조작하려다, 리마 최대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의 폭로기사로 미수에 그친 사건의 배후인물로도 몬테시노스가 지목됐다. 최근 콜롬비아 좌익게릴라를 상대로 한 무기밀매에 관련됐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후지모리 정권의 실세였다 비디오 테이프 하나로 하루아침에 권력의 성벽에서 떨어진 몬테시노스. 그가 뇌물공여 혐의로 법정에 설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 몬테시노스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리마시 변두리에 있는 라스팔마스 공군기지에 감금 또는 보호를 받고 있다는 설이 나돌 뿐이다. 무엇보다 그가 제3국으로 비밀리에 떠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후지모리로서도 그의 출국이 선거관리 정국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