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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당해봐야 환경정치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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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8-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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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보다는 환경이군”… 유럽을 휩쓴 홍수는 독일 총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사진/ 드레스덴의 물에 잠긴 시가지. 통일 이후 공을 들여 재건한 문화유적들이 크게 손상됐다.
지난 8월10일을 전후로 중부 유럽에 내린 집중호우는 먼저 알프스에 있는 오스트리아를 강타했다. 이후 수마는 알프스에서 발원하는 하천을 타고 주변에 위치한 도시들을 차례로 휩쓸고 있다. 동유럽의 파리로 불리는 체코의 프라하가 물에 잠기면서 많은 문화유적들은 쓰레기더미로 변해버렸고, 프라하 북부에 있는 화학공장이 침수되며 유출된 독극물은 또 다른 위험이 되고 있다. 볼타바강, 몰다우강, 엘베강가에 있는 여러 크고 작은 마을들도 이미 물 속에 잠겨버렸다.

노아의 홍수가 아니라 환경재앙

13일 이후 비는 그쳤지만 제방 붕괴 위험이 나날이 높아지며, 강들의 중·하류에 있는 독일 동부의 중소도시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독일 동부에 위치한 문화도시 드레스덴에서는 평균 2m 남짓하던 강 수위가 16일 9m를 넘어 10m를 위협하면서 계측 역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통일 이후 공을 들여 재건한 문화유적들뿐만 아니라, 도로·주택 등 지난 10년간의 통일재건 사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100여명의 사망자와 수조원 이르는 재산피해를 낳은 이번 재앙을 그저 하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런 집중호우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사실 유럽 대부분의 지역은 이런 호우에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1년 평균 강우량이 한국 장마철 하루 강우량에도 못 미치는 상황을 고려해보면, 현재 하천의 수위조절 기능이나 하수시설, 각종 건물의 지붕구조는 완전히 새롭게 재건축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 듯 독일 언론들은 ‘노아의 홍수’라는 초기의 보도태도를 정정하기에 바쁘다. 즉 노아의 홍수처럼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반복될 뚜렷한 환경재앙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홍수로 남편을 읽은 한 할머니는 지역신문에 남편의 부고를 알리는 광고를 냈다. 그 광고문에는 장례 부조금을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에 기부해 달라는 슬픈 호소가 적혀 있었다. 이 부고문은 독일인들이 이번 홍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70년대 라인강의 오염과 공업도시들의 스모그 현상은 독일인들에게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깨우쳐주었다. 일상에서 체감된 환경오염은 본격적인 환경운동과 친환경정책의 시작을 예고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80년대 초 녹색당이 탄생했고, 86년 독일 연방정부에 처음으로 환경부 장관이 임명됐다. 이렇게 지난 20년간 환경운동은 정치적 주요 쟁점이 되어왔고, 독일인들에게 다시금 맑고 깨끗한 하늘과 강을 되돌려주었다. 98년 집권에 성공한 사민·녹색당은 원자력 발전소 폐기와 에너지 및 자원 소비에 따라 세금을 물리는 환경세 도입이라는 진일보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교토의정서가 정한 2005년까지 21% 배기가스 감축 목표치에 이미 19% 감축을 이루어내는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녹색당 정책에 다시 공감

그러나 산업계를 비롯한 국민적 저항은 예상외로 거셌고, 녹색당은 급속한 지지도 하락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미 깨끗한 환경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은 나날이 인상되는 기름값에 불만을 터트리며, 환경세를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문제까지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과도한 부담으로 받아들였다. 즉 자신의 일이 아닌 것이었다. 살인적인 실업률과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주식시세가 독일인들의 주된 관심사를 이루었고, 9월22일로 다가온 총선의 최대 쟁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하루아침에 바꾸어놓은 것이 이번 유럽 홍수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독일인들의 표정은 공포에 가깝다. 온실효과로 대변되는 현재의 전 지구적인 환경재앙은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를린=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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