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분쟁의 땅에 새벽은 오는가

422
등록 : 2002-08-14 00:00 수정 :

크게 작게

수단·콩고·르완다·앙골라에서 체결된 평화협정이 아프리카 피의 역사를 끝낼 수 있을까

사진/ 앙골라 반군 UNITA. 앙골라는 냉전시대 강대국의 대리전장이었다. (GAMMA)
내전으로 날을 지새우는 아프리카에 희망의 새벽은 오는가. 7월20일 5주간의 긴 마라톤 협상 끝에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 존 가랑이 휴전협정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들은 이번달에 회담을 재개하여 휴전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논의한다. 수단 평화회담이 진척된 지 열흘 뒤인 7월30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레토리아에서는 콩고민주공화국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과 콩고 내 반군 지원국인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이 만나 4년간의 분쟁을 종식시키는 각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아프리카 대륙의 심장부인 대호수지역 내 평화정착의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틀 뒤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는 쿤디 파야마 국방장관과 ‘앙골라의 완전독립을 위한 국민연합’(UNITA) 반군 대표 가토가 회동하여 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이후 지루하게 계속돼온 내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런 일련의 평화 분위기 조성이 내전과 분쟁으로 얼룩진 아프리카에 평화와 희망의 서곡을 울릴지 주목된다.

수단, 원유가 낳은 비극

수단 남부지역과 맞닿은 케냐 북부의 척박한 벌판에는 내전을 피해 케냐로 몰려드는 난민들을 수용하는 카쿠마 난민촌이 있다. 점점 늘어나는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캠프를 확대하면서 이제는 거대한 도시처럼 팽창해 난민촌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카쿠마 난민촌에서 다시 북쪽으로 120km쯤 올라가면 국제적십자사(ICRC)에서 운영 중인 로키초키오 국제적십자병원이 있다. 곳곳에 매설된 지뢰 혹은 총격과 폭격으로 부상당한 수단인들을 케냐로 긴급 후송하여 치료하고 재활훈련을 하는 곳이다. 필자는 이곳을 방문했을 때 부지기수의 난민들이 손발이 잘린 상태이거나 전신이 마비되어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고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 병원 내에는 의족과 의수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시설이 있어 끊임없이 후송되어 오는 민간인과 반군 병사들을 치료하고 이들에게 의·수족을 만들어준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수단 내전 19년 동안 200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450만명의 난민이 양산됐다. 수단은 북부지역에는 주로 아랍계의 무슬림들이, 남부지역에는 나일로틱계의 딩카·누에르·쉴룩족이 거주하는데 이들은 기독교와 토착종교를 신봉한다. 1983년 당시 니메리 대통령이 샤리아법을 도입하고, 남부지역에서 생산된 원유수입의 경제적 혜택이 남부지역 주민들에게 전혀 돌아오지 않는 등 종교적·경제적 차별이 노골화되자 수단인민해방운동(SPLM),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주도하는 반군세력들이 북부 하르툼 중앙정부에 대항하여 내전을 지속해왔다. 특히 누바산맥 인근 유전지대에는 1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어 99년 8월부터 매일 21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왔는데,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원유 생산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어 숱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에서뿐만 아니라 반군집단들 간의 세력다툼에서도 희생자들이 양산된다. 반군집단들이 부족 간 알력으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쿠마 난민촌에도 부족 간의 갈등과 폭력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분리 수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내전이 계속되면서 정부군과 반군 모두 다양한 유형의 인권유린을 자행하여 공분의 대상이 되어왔다. 인권단체들이 지적하는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들은 유괴, 강제징집, 고문, 강제노역, 조직적 강간 등이다. 정부군은 반군들을 진압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강제 징집해왔고 존 가랑이 이끄는 대표적 반군단체인 SPLA는 정부군과의 싸움에 소년병들을 투입하여 지탄을 받아왔다. 또한 분쟁지역에서 적을 무력화하기 위한 도구로 여성들에 대한 조직적 강간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 분쟁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 어린이·노약자·여성임이 확인됐다. 이번달에 회담을 재개하여 원유수입 분배문제 등을 논의하는데, 회담의 주요 관건은 역시 남부지역의 자결권 인정과 샤리아법 적용 제외로 압축된다. 약 6년간의 잠정적 기간 동안 연방제 형태의 권력분담을 거친 뒤 국민투표를 통해 향후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역내 분쟁으로 비화된 르완다-콩고 분쟁

사진/ 남아공 프리토리카에서 열린 콩고민주공화국-르완다 내전 종식 평화협정 조인식. 협정서에 서명하는 카빌라 콩고 대통령(왼쪽)과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GAMMA)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의 분쟁은 두 나라만의 싸움이 아니라 인근 국가들이 결부된 역내 분쟁으로 비화돼왔다. 르완다 정부는 94년 소수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들을 대상으로 대학살을 자행한 다수 후투족 지상주의자들과 후투족 민병조직인 인터함웨(interhamwe)가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지역을 본거지 삼아 르완다 정부를 전복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진압한다는 구실하에 3만명의 병사들을 콩고분쟁에 투입해왔다. 우간다 정부도 콩고민주공화국 내의 또 다른 반군단체를 지원해왔으며 짐바브웨·앙골라·나미비아는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에 대한 군사지원을 계속해왔다. 분쟁의 와중에 250만명이 희생되었고 동부지역에 풍부하게 매장된 금·다이아몬드·콜탄이 계속 약탈되었다.

99년 잠비아 루사카에서 분쟁 당사자들이 회동하여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유엔군은 협정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유엔콩고감시단(MONUC) 소속 3400명의 병력을 파견해왔으나 정전협정은 휴짓조각이 된 상태였다. 그래도 성과라면 우간다와 나미비아가 철수하여 분쟁 당사국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현재 반군의 주요 지원세력인 르완다가 협정대로 군대를 철수하면 콩고분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90일간의 이행기 동안에 콩고 정부는 인터함웨 소속 반군 및 학살에 가담한 르완다 병사들을 색출해 무장해제시킨 뒤 르완다로 송환해야 하고, 르완다도 이에 호응하여 콩고에서 군대를 철수해야 한다. 유엔과 남아공이 이를 중재·감시하게 된다. 그러나 당사국 간 이견이 남아 있어 협정이 이행될 수 있을지 회의론도 대두된다. 예컨대 콩고 내에서 준동하고 있는 후투 민병조직의 규모를 놓고 콩고 정부는 약 1만2천명으로 추산하는 반면 르완다 정부는 5만명에 달한다고 주장해 협상이 쉽이 않을 전망이다.

앙골라는 냉전시대 강대국의 대리전장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의 확대를 우려한 미국과 남아공 백인 소수정권이 UNITA 반군세력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고 옛소련과 쿠바는 사회주의 정권을 사수하기 위해 앙골라 정부에 자금·무기·군대를 제공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남아공에 흑인 다수정부가 들어서자 반군세력은 다이아몬드 밀수출로 자금을 마련했고, 앙골라 정부는 원유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무기를 구입하여 반군 진압에 사용했다. 앙골라는 미국에 수출하는 원유량이 쿠웨이트보다 많을 정도로 아프리카 대륙 내 주요 원유수출국이다.

국제사회의 감시와 압력이 절실

27년 동안이나 계속된 내전으로 50만명이 희생되었으며 450만명의 피난민이 발생했고 곳곳에 매설된 지뢰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얼마나 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800만개에서 1천만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뢰가 국민 1인당 1개꼴로 매설되어 있는 셈이다. 매설된 지뢰는 대부분 소형 대인지뢰로 피해자의 대부분은 민간인들이다. 향후 국가재건 과정에서도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자명하다. 앙골라 내전 종식은 지난 2월 반군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가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면서 급물결을 탔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는 8만명의 반군병사들 중 5천명이 정부군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7만5천명은 직업훈련을 통해 사회로 돌아오게 된다. 또한 UNITA도 반군세력에서 야당세력으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70%에 달하는 실업률, 곳곳에 매설된 지뢰, 반군병사들과 가족들에 대한 생계대책 마련, 심각한 식량부족 등 산적한 현안은 반군 진압보다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로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가 평화와 희망을 자동적으로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분쟁 당사자들이 상호신뢰와 타협에 기반을 두고 실천적 조치들을 진척시킬 때 비로소 총성은 멎을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과 이행은 항상 별개의 문제라는 회의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현실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감시와 압력이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준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