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l ’거짓 역사의 목격자’ 헨드로 수브로토 < TVRI > 전 카메라맨
헨드로는 정부가 운영하는 텔레비전 방송사 < TVRI >에서 1964년부터 카메라맨으로 일하며 그동안 각종 분쟁을 취재해왔다. 그는 취재를 통해 수많은 죽음들을 보면서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 가운데 잊지 못할 사건으로 1965년 10월4일 혁명 영웅인 몇몇 장군들의 주검을 기억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난도질한 만행이라는 해설을 붙인 그의 영상은 3일 연속 방송되면서, 당시 대중들을 격분케 했다. 그로부터 40여년 침묵의 세월이 흐른 뒤, 헨드로는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마침내 털어놓았다. 당시를 기록한 역사책과 현장 필름들이 수하르토 집단에 의해 날조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당신이 G30S(9월30일운동이라고도 하며 정부 전복을 기도한 사건)의 희생자들인 일곱 장군의 주검을 취재한 유일한 기자였나. 당시 상황을 들어보자.
사진기자도 있었지만 방송 카메라맨으로는 내가 유일했다. G30S가 발생하고부터 나는 수하르토가 사령관이었던 코스트라드(특전사)가 있는 육군사령부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날은 1965년 10월4일 아침이었다. 코스트라드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는데, 한 육군공보 장교가 버스에 타라고 했다. 군인들은 나를 동자카르타 루방부아야로 태워갔다. 아침 10시 무렵에 도착하고 보니 아직 수하르토 소장은 보이지 않았다.
몇시에 주검들을 우물에서 끌어올렸나.
수하르토가 올 때까지 기다렸으니, 오후 들어서였다. 그는 몇몇 기자들을 대동하고 왔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주검들을 촬영했나. 한 3m쯤 되지 않았나 싶은데…. 당시 주검들 상태를 정확히 묘사해줄 수 있는가. 살해당하고 4일이 지난 뒤였다. 주검의 상태는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들었다. 만약 담뱃불로 살갗을 태웠다면 주검이 급격히 부풀어올랐을 것이고, 때리거나 고문을 했다면 주검에서 육안으로도 잡히는 부분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었는데…. 당신이 본 걸 정확하게 말해보자. 관에 담기 전에. 내가 본 바로는 고문당했거나 절단당한 흔적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주검을 직접 다룬 부검의들이 정확했을 수도 있겠지만. 수하르토 정권은 G30S에 대해서 인도시네아 공산당(PKI)이 장군들을 난도질해서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모든 출판물에 공식적으로 기록해왔는데, 당신이 본 결과는 다르다는 뜻인가. 공식적인 발표와 달리 고문이나 신체를 절단한 흔적을 나는 결코 본 적이 없다. 총상이었다는 결론이다. 앞서 말했듯이 고문이나 절단 같은 건 외관상으로 구분이 된다. 당시 3분 정도밖에 촬영시간을 주지 않아서 주검을 구석구석 확인할 수는 없었다 치더라도. 3분이라, 그 3분 동안 본 걸로 확신할 수 있겠나. 거듭 말하지만 주검 7개 중에 절단당한 부분이나 고문당한 흔적 같은 건 볼 수 없었다. 공식적인 기록이라며, 주검들 성기도 잘려나갔다고 시민들은 배워왔는데. 절대 아니다. 주검들이 모두 발가벗겨져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절단 같은 건 없었다. 수하르토 시절, 해마다 9월30일 밤이면 ‘G30S/PKI의 배반’이라는 기록필름을 상영했는데, 당신이 찍은 현장기록들이 진실하게 전해지긴 했는가. 분명 이상한 일이다. 당시 현장을 찍은 카메라맨은 나뿐이었는데…. 나뿐이었다. 그 필름을 아직 당신이 갖고 있는가. 모든 필름은 < TVRI > 소유다. 복사판도 내겐 없다. 촬영 끝에 방위안보공보 부장 수간디 준장이 “헨드로, 그 필름을 며칠간 계속 틀 수 없나?”고 묻기에 그건 방송사에서 결정할 일이지 카메라맨이 이러쿵저러쿵할 일이 아니다고 했더니, 그날 수간디가 방송사 국장과 만났다. 당시 < TVRI >에서는 얼마 동안 방송을 계속했나. 수반드리오 총리 보좌관이 방송을 멈추게 할 때까지 3일 동안 계속 틀었다. 나는 그 필름이 당시 수반드리오와 군 사이에 분쟁을 일으킨 방아쇠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입누 수브로토 준장 책임 아래 육군공보부가 보관하는 게 좋겠다고 제의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수브로토 준장은 사망했다. 그 뒤로는 모든 게 묻히고 말았다.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ㅣ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사진/ (아흐마드 타우픽)
수하르토가 올 때까지 기다렸으니, 오후 들어서였다. 그는 몇몇 기자들을 대동하고 왔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주검들을 촬영했나. 한 3m쯤 되지 않았나 싶은데…. 당시 주검들 상태를 정확히 묘사해줄 수 있는가. 살해당하고 4일이 지난 뒤였다. 주검의 상태는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들었다. 만약 담뱃불로 살갗을 태웠다면 주검이 급격히 부풀어올랐을 것이고, 때리거나 고문을 했다면 주검에서 육안으로도 잡히는 부분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었는데…. 당신이 본 걸 정확하게 말해보자. 관에 담기 전에. 내가 본 바로는 고문당했거나 절단당한 흔적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주검을 직접 다룬 부검의들이 정확했을 수도 있겠지만. 수하르토 정권은 G30S에 대해서 인도시네아 공산당(PKI)이 장군들을 난도질해서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모든 출판물에 공식적으로 기록해왔는데, 당신이 본 결과는 다르다는 뜻인가. 공식적인 발표와 달리 고문이나 신체를 절단한 흔적을 나는 결코 본 적이 없다. 총상이었다는 결론이다. 앞서 말했듯이 고문이나 절단 같은 건 외관상으로 구분이 된다. 당시 3분 정도밖에 촬영시간을 주지 않아서 주검을 구석구석 확인할 수는 없었다 치더라도. 3분이라, 그 3분 동안 본 걸로 확신할 수 있겠나. 거듭 말하지만 주검 7개 중에 절단당한 부분이나 고문당한 흔적 같은 건 볼 수 없었다. 공식적인 기록이라며, 주검들 성기도 잘려나갔다고 시민들은 배워왔는데. 절대 아니다. 주검들이 모두 발가벗겨져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절단 같은 건 없었다. 수하르토 시절, 해마다 9월30일 밤이면 ‘G30S/PKI의 배반’이라는 기록필름을 상영했는데, 당신이 찍은 현장기록들이 진실하게 전해지긴 했는가. 분명 이상한 일이다. 당시 현장을 찍은 카메라맨은 나뿐이었는데…. 나뿐이었다. 그 필름을 아직 당신이 갖고 있는가. 모든 필름은 < TVRI > 소유다. 복사판도 내겐 없다. 촬영 끝에 방위안보공보 부장 수간디 준장이 “헨드로, 그 필름을 며칠간 계속 틀 수 없나?”고 묻기에 그건 방송사에서 결정할 일이지 카메라맨이 이러쿵저러쿵할 일이 아니다고 했더니, 그날 수간디가 방송사 국장과 만났다. 당시 < TVRI >에서는 얼마 동안 방송을 계속했나. 수반드리오 총리 보좌관이 방송을 멈추게 할 때까지 3일 동안 계속 틀었다. 나는 그 필름이 당시 수반드리오와 군 사이에 분쟁을 일으킨 방아쇠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입누 수브로토 준장 책임 아래 육군공보부가 보관하는 게 좋겠다고 제의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수브로토 준장은 사망했다. 그 뒤로는 모든 게 묻히고 말았다.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ㅣ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