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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설마 공격할까, 설령 공격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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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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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망령을 바라보는 이라크 민심… “미국이 공격해도 변할 것은 없다”

사진/ 경제제재 속에서 자라는 어린아이들. 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누가 지켜줄 것인가?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 공군기는 7월19일 새벽(현지시각) 이라크 남부지역을 공습하여 20여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같은 날 부시 대통령은 아프간 참전 미군 특수부대를 방문하여 대이라크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영국 런던에서는 이라크 반체제 인사들이 모여 후세인 제거 작전 방안을 모색했다. 터키는 미국에 대이라크 공격을 위한 기지를 제공해줄 의사가 있음을 시사하고 11월에 예정된 선거까지 내년 봄으로 연기했다. 이제 이라크를 상대로 미국이 벌일 전쟁은 임박한 듯 보인다. 외신들은 연일 임박한 이라크 공격설로 지면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지금 분위기는 지난해 12월 아프간 전쟁에 이어 이라크 공격설이 대두됐던 때와 유사하다. 중동에서는 이제 이라크 전쟁 뉴스가 인티파다에 밀렸던 관심 순위 1위 자리를 꿰차게 되는 모양이다.

12년이나 겪은 전쟁, 뭐가 새로운가

사진/ “전쟁 그것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설을 보도한 신문을 보고 있는 암만의 이라크인들.
이라크 밖에서 설전이 벌어지는 것과는 달리 이라크 민심은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고 올 것이 왔다는 비장함도 보이지 않는다. 암만에서 만난 이라크인 아부 유수프(40)는 “이미 12년이나 겪은 전쟁이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어차피 미국은 중동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야만 하는 것 아닌가. 다른 이유는 없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다. 이라크 내부의 동요도 전혀 없다. 이라크 바그다드 무역관의 정종래(40) 무역관장도 “최근 고조되는 전쟁위기설과 관련한 민심의 파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라크 정부가 여론을 통제하고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라크 밖에서 전쟁론을 제기하고 이라크 남부지역에 대한 영국·미국의 공습이 있던 시기, 이라크에 머물다 돌아온 전영창(34)씨는 “바스라 지역에 미국의 공습이 있었지만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미국이 전쟁을 걸어오면 맞대응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는 덤덤한 반응이 전부였다”며 이라크 분위기를 전해준다. 사실 이라크 남부지역이 미국의 공습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확전설이 피어오른 것도 벌써 오래된 이야기다. 알 것을 다 알지만 덤덤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암만에 체류 중인 이라크인들. 매주 금요일 만남의 장소에서 서로의 안부를 교환한다. 이들에게 이라크 전쟁은 이슈도 되지 않는다.
“미국이 감히 이라크를 공격해요? 다 빈말이고 말장난일 뿐입니다. 감히….” 미국의 이라크 공격설에 대해 말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첫 번째 반응들이다. 많은 이라크인들에게 미국의 올 가을 공격설은 하나의 허풍일 뿐이다. 이라크인 아부 사미르(40)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미국은 ‘감히’ 이라크를 공격할 수 없어요. 미국이 승산이 없는 싸움을 걸어올 리 만무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98년 이래로 계속 전쟁설이 나돌았지만, 실제로 터진 적은 없었다. 지난해에도 미국이 여러 차례 테러와의 전쟁을 이라크 전선으로 이동시킬 것처럼 떠들었지만 말뿐이었다.

공격한다면 맞을 수밖에

사진/ 암만 곳곳에 좌판을 벌여놓고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애쓰는 이라크인들. 이들에게 요르단은 꿈의 발판이 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서둘러 칠 리 없다는 반응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설마’ 하며 이라크 공격설에 신뢰감을 두지 않는 이들이 다수를 이룬다. 그래서 오늘도 어제처럼 하루 1천∼1500여명 안팎의 이라크인들이 요르단 암만과 이라크 접경지대인 루웨이쉐드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암만의 국경차량 터미널인 바그다드 터미널을 비롯한 곳곳에서 택시와 버스로 국경을 오가는 이라크인들에게서 전쟁설과 관련한 어떤 변화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언젠가는 미국이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설령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고 한들 이라크 민심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벌써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이라크인들은 전쟁 속에 살아왔죠. 걸프전은 끝난 적이 없어요. 지금도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공습을 감행하고 있잖아요? 이 판에 확전이 된들 뭐가 달라지겠어요?” 항공기 관제사로 일하다가 경제제재로 일자리를 잃고 국경 택시를 모는 칼리드는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낸다. 이라크인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는 ‘전면전이 터질 경우의 행동수칙’이 있다. “전쟁이 터지면 밖에 나돌아다니지 말라. 괜히 미국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 방공호도 대피소가 될 수 없다. 집이 제일이다. 미국의 정밀한 레이더망에 의해 이미 공격목표가 정해져 있다. 미국도 이라크의 파멸을 바라지 않기에 정해진 목표물 중심으로 공격할 것이다.” 이런 식이다. 일부는 전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위대한 영도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함께 침략자들을 섬멸할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을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충성부대는 이라크에서도 그리 큰 비중을 갖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긴 터널을 벗어나고 싶은 갈망

이라크 민심이 동요하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이라크군은 경제제재로 발목이 묶인 이래 특수부대 일부를 제외하면 오합지졸이다. 전문가들은 무기도 구식이고 제대로 훈련도 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미국이 공격하면 맞을 수밖에 없다. 달리 방도가 있겠는가? 286과 슈퍼컴퓨터의 대결이 아니겠나.” 그래서 이라크 사람들은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자포자기의 심정일 뿐이다. 맞을 매니 빨리 맞고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사람들…. 일부에서는 겉으로 태연한 척하며 전의를 불사르고 있는 이라크 지도부가 명예로운 투항을 준비 중이라는 유비통신도 번져간다. 이라크를 등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온 난민 신청자들도 전쟁이 터지면 이라크가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도 친미는 아니다. “반체제 인사들이 사담 후세인 제거를 이야기하지만 다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정치 협잡꾼들일 뿐 믿을 만한 인물이 없어요.” 난민 신청 중인 자밀 아흐마드(42)는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반체제 주요 인사들을 차기 사담 후세인으로 세우려는 것은 미국식의 또 다른 폭거라고 말한다.

지금 미국 부시 행정부와 후세인 정권은 분주하다. 10월15일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이미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바스당은 신임 투표를 위해 민심 추스리기에 나섰다. 11월에는 미국의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부시 행정부는 아랍 국가들한테 당근과 채찍을 들고 군사·외교 정지작업에 열중이다. 성과도 있었다. 미국에 기지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터키는 11월 선거를 내년 봄으로 연기했다. 11월 설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그동안의 현지 취재 결과 미국의 대이라크 침공은 10월15일 이후 11월 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최악의 지도자가 최악의 무기를 보유하고 미국과 우방을 위협하는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 사담 후세인 체제를 축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할 것이다”고 부시가 도전장을 내밀자 “이라크 영공과 영토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방어할 충분한 준비가 돼 있다”며 사담 후세인은 응전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제 미국은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대이라크 전면 공격의 D-데이가 잡힐 것이다. 명분 없는 긴 전쟁의 터널을 하루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것은 이라크인들 모두의 갈망이다.

암만=글·사진 김동문 통신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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