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구제불능의 South Korea?

420
등록 : 2002-07-31 00:00 수정 :

크게 작게

서구 외신이 현대판 오리엔탈리즘 렌즈를 통해서 본 한국은 ‘문명세계의 타자(他者)’

외국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면서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외신’이라는 한국 관련 기사를 되도록 빠짐없이 읽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구인들의 한국 인식을 만들어내는 정보원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관련된 외신 보도를 읽을수록 일종의 절망감에 빠진다.관련 기사의 ‘South Korea’와 내가 아는 한국은 비슷하지도 않은 두개의 다른 천지로 보이는 탓이다. 그래서 한국 자료를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2∼3년간 서구 외신 정보에 의존하는 젊은 한국학 학도들이 어떤 편견과 환상을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두렵기만 하다.

반쪽 진실만 알려주는 기사

한국 군대의 '기합' 풍토엔 미군의 책임이 있다거나, 군대문화의 싹은 친미 권위주의 정권이 키웠다는 사실은 외신에서 보도되지 않는다. 신병훈련 모습. (사진/ 이정용 기자)
주요 외신들의 한국 관련 보도는 대체로 사실에 입각하지만, 문제는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상당 부분의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데 있다. 결국 반쪽 진실만 반영하는 기사는 독자의 한국관(觀)을 그릇되게 한다. 예를 들면 월드컵을 앞둔 지난 5월13일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팬들의 찢어진 월드컵: 군대에 끌려갈 위험. 일부는 한국행 포기’라는,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의 주인공은 월드컵 현장에 가서 응원하고 싶어도 군대에 끌려갈 위험 때문에 망설이는 20대 재미 한국인 축구 팬들이었다. 그리운 조국에 가고 싶어도 공항에서 검사에 걸려- 그들의 표현대로- 쓸데없이 고생하면서 허비하는 일이 생길까 고심하는 그들의 마음고생을 생생하게 그렸다.


그러나 기사에는 젊은 재미 한국인들이 왜 이토록 군대를 기피하려는지 일언반구의 설명조차 없다. 한국 현실에 대한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미국·서구 독자라면 ‘공적 의무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을 한국인의 민족적 특성으로까지 취급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 있는 20대 한국 남성들의 병역 기피 의식 저변에는 정당한 월급 없이 구타나 비인간적 대우로 군대에서 연간 4천∼5천명이 건강을 잃는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것을, 일반 서구 독자가 어떻게 알겠는가.

사실 그러한 종류의 기사를 쓰려면 한국 군대를 창설했을 때 한국인의 정신적 노예화를 목적으로 일본군의 한국인 친일파 장교를 고용해 일본의 ‘기합’ 풍토를 그대로 존속시킨 미군의 책임 문제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보통 걸림돌이 아닌 것이다. 동시에 재미 한국인 젊은이들 가운데는 병역을 ‘빈민들의 부역’으로 인식하는 특권층이 많은 사실도 기사에서 읽을 수 없다. 한국과 관련된 거의 모든 보도들이 한국 군대 내 폭력적 풍토나 극심한 계급 간 장벽, ‘사회 귀족’들의 무한한 오만 등 껄끄러운 문제들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지옥과 같은 공산 국가 북한, 미국의 도움으로 아시아 자본주의의 총아(寵兒)가 된 남한”이라는 신화를 그토록 깨뜨리기 싫은가.

아들문제에 관해 사과하는 김대중 대통령.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 관련 보도에서 자주 드러나는 또 하나의 수법은, 일종의 ‘현대판 오리엔탈리즘’의 색채가 짙은 고정관념들을 동원하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과거의 고전적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인의 타자인 동양인의 본질적 낙후성과 정체성, 타율성, 타락된 모습을 강조하는 제국주의적 세계관이었다. 현대판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주의적 스테레오타입들을 전체적으로 재현하지 않지만, 세계의 중심부로부터 통제와 착취를 당하는 주변부 문제들을 ‘문화적 본질’ 등의 ‘불가피한 문명적 장애’에 돌림으로써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를 합리화한다. 이는 고전적 오리엔탈리즘과 일맥상통한다. 예컨대 고전적 오리엔탈리즘이 아랍세계의 후진성을 ‘아랍인들의 타고난 나태와 발전 능력 부재’로 설명한다면, 현대판 오리엔탈리즘은 그 원인을 ‘이슬람 문화와 근대성의 호환성 결여’로 돌려버린다. 즉 고전적인 오리엔탈리즘의 노골적 인종주의가 미국의 극우 논객 새뮤얼 헌팅턴 식의 ‘문화인종주의’, ‘종교·문화·전통 결정론’으로 대체된 셈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왜 언급하지 않는가

한국에서 취재 중인 외신기자들. 그들의 한국 관련 보도는 대체로 사실에 입각하지만,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상당부분의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사진/ 김종수 기자)
현대판 오리엔탈리즘의 렌즈를 통해서 본 한국은 ‘구제 불능의 유교 문화로 인해 어찌할 수 없이 가부장제 국가체제와 부패·금권 정치를 재생산하는 사회’로 보인다. 그들이 <논어>를 한번이라도 읽었을까? 현대 한국에 있는 ‘부패문화’의 싹을, 나라를 군벌의 소유물로 만든 친미 권위주의 정권이 키웠다는 사실은 그러한 보도에서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최근 인구에 회자하는 아시아 경제 권위지인 주간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ar Eastern Economic Review) 7월25일치 ‘아들들의 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자.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를 주제로 다룬 이 기사를 보면, 비리 사건으로 인한 민주당 인기 하락은 ‘지도자들을 자식 잘 다스리는 유교적 가부장으로 보는 한국 사회 유교적 의식의 특성’과 연결되는 것이다. 같은 일이 유교와 무관한 중·남미 국가에서 일어났으면 과연 대중의 반응이 달랐을까?

한국과 미국 전문가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김대중을 한국적인 결함이 있는 대표적 한국 정치인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우·보수 정치와 재벌 경제의 유착이 키운 지배층과 민중 사이의 메울 수 없는 엄청난 갭, 그로 인한 불신의 풍토를 ‘한국인 정치가의 본질적인 결함’으로 돌려버려도 되는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패권 다툼을 한국 정치의 모두인 것처럼 다루는 이 기사에서 진보 정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리고 “53년간의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권위주의와 무능, 부패로 오염됐다”는 이야기로 기사의 시작 부분을 장식한 기자는, 53년간의 권위주의와 미국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한국 정치인으로서 부패할 수밖에 없는’ 한국 권력자와 그들에게 ‘친인척 단속’을 요구하는 ‘유교 문화’ 탓이라면 한국 권위주의의 외생적인 뿌리나 외연들을 따질 필요조차 없다.

특히 북한에 대한 보도에서 고질적으로 이용되는 수법은, 서구·미국의 도덕적 우월성, 중심적 위치와 서술 대상의 주변성, 열등성, 비정상적 상태를 시사하는 수사법을 마구 쓰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정치계의 온건파로 분류되는 클린턴 정권의 대북 담당자 가운데 한명인 웬디 셔먼(Wendy Sherman)의 최근 북한 관련 논설(<뉴욕타임스>, 7월18일치)은 제목부터가 ‘독재자들과의 거래’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수사적이며 공격적이다.

저주에 가득 찬 ‘주문’들

미국의 무조건적 우월성에 대한 셔먼의 확신은 너무 강한 것 같다. 협상 상대자인 북한 지도부의 최종 목적이 ‘대중 봉기와 통제력 상실을 면해 생존하는 것’이라고 본 셔먼은 “북한 지도자가 문명 세계로 진출하여 외화와 외부로부터의 인정을 얻으려고 한다”고 진단한다. 정치적 생존에 목적을 두지 않은 정치인이 있는가? 바깥 세계를 문명 세계라고 하면 북한이 야만국인가? 북한과의 협상과 관계 개선을 주장하기 위해 이 기사를 쓴 비둘기파 셔먼이 이 정도의 수사법을 쓴다면, 매파의 북한 서술 태도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서술’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득 찬 일종의 주문(呪文)에 가까울 것이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설파하는 그들의 끔찍한 텍스트들에 비하면 ‘기괴하고 침울한’ 북한에 대한 비웃음을 주된 태도로 간직하는 영국의 자유주의적 신문들(<가디언> <인디펜던트> 등)은 신사쯤으로 보인다.

독재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야만적으로’ 다스리는 ‘기괴한’ 북한… 타고난 유교주의자이면서도 다들 공적 의무를 멀리하려 하고, 태생적으로 부패한 한국인 정치가들을 혐오하는 남한 사람들…. 미국·서구 기자들이 인식하고 기술하는 한반도는 아직까지 ‘정상적인 문명 세계’의 ‘타자’로 낙인찍혀 있다. 서구 중심주의적·패권주의적 담론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본인들의 타고난 특권을 존속하려는 구미 언론인들은 아직까지 이국 정취가 풍부한 ‘타자의 그림 그리기’ 악습을 제대로 고치지 못했다. 그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국내외 진보적 전문가와 언론인들이 체계적이면서 깊이 있게 한국 관련 외신 보도의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