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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개방적 문화, 아버지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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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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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 마리나 마하티르

사진/ 마리나는 말레이시아에이즈협회 의장으로 일하면서 취약한 여성 인권의 대변자로 폭넓은 지지세력을 구축해왔다(앞줄 왼쪽이 마리나). (유니스 리오)
바깥에서 바라본 4층짜리 허름한 말레이시아에이즈협회(MAC) 건물은 창고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내부는 호화로운 실내장식과 에이즈 홍보 포스트들로 멋지게 꾸며져 방문객의 눈을 번쩍 띄게 했다. 소매 없는 분홍 셔츠 위에 투피스를 걸친 마리나는 말레이시아의 사회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를 토해냈다. 마리나는 자신이 마하티르 총리의 딸이라는 정치적 마일리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쓸데없이 마하티르화된 데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슬람은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

이슬람은 단지 종교다. 힘을 쏟게 하고 근심을 없애주는. 그런데 남성들이 이를 제멋대로 해석하면서 편협하고 가부장적인 성격으로 바꿔버렸다. 가장 중요한 원리는 절대로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강요하는 모든 것은 비이슬람적이라 믿는다. 내가 몸을 가리지 않았다고 “아하, 마리나는 자유주의자고 훌륭한 이슬람이 아니군” 하고 단정해버리는 식 말이다. 우리 가족은 이슬람이지만 개방적이고, 부모님은 날 어릴 적부터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멀리 던져버렸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억해라. 네가 누구고 네가 어디서부터 왔다는걸. 넌 다른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다른 가치를 배울 것이다.”

왜 당신은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의 확장을 염려하는가.


여성에 대한 태도 탓이다. 모든 것을 성의 차별에서부터 출발하는 이들이다. 슈퍼마켓에서 여성을 다른 줄에 세우고, 극장에서 불을 끄지 않는 정신나간 현상들이 PAS가 승리한 켈라탄주의 현실인데, 난 절대로 내 딸을 켈라탄주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머릿 속에는 온통 섹스뿐인지… 슈퍼마켓에서도 사람들이 섹스를 하고, 불만 꺼진 곳이면 모두 섹스를 한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당신은 칼럼에서 말레이시아의 왜곡된 사법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해왔는데, 안와르의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심없다(흥분하며). 그 점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첫째 난 정치가가 아니다. 둘째 관심도 없고 별로 아는 바도 없기 때문이다.

예민한 질문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다시 이야기해보자.

예민할 것도 없다. 처음 그 사건(안와르를 동성애 혐의로 구속한 사건)이 불거지자, 난 국제사회의 게이그룹으로부터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받았고, 그들은 ‘아시아퍼시픽에이즈컨퍼런스’를 보이콧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게 바로 문화적 환경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그래서 난 이 국제적인 바보들에게 말했다. “만약 당신들이 안와르를 죽이고 싶다면 콸라룸프르에 와서 시위해라.” 내겐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말레이시아 정부를 두둔할 이유도 없지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당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양성 반응자들 사안을 들고 인터뷰하겠다고 온 오스트레일리아 언론으로부터 나는 안와르건으로 기습당했다. 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 사나이(안와르) 문제를 고민할 만한 여유가 없다. 나는 4만명이 넘는 HIV 양성 반응자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안와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그를 잘 모른다. 책을 만들 때 잠시 그와 일했을 뿐이다. 그가 지적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는 정도가 기억의 전부다.

당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가.

세달에 한번 정도 아버지를 만나는 게 다다. 내가 장녀이다 보니, 아시아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와 장녀의 관계 같은 게 우리 사이의 모습이라고 여겨진다. 매우 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그래도 서로를 존중하는 건강한 관계다.

마리나 마하티르(Marina Mahathir)


1957년 6월9일생. 마하티르 총리와 말레이시아의 제2호 여성박사인 시티 하스마 아리 사이에 장녀로 태어나 아래로 두 남동생을 두었다. 영국의 서섹스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뒤 10년째 말레이시아에이즈협회를 이끌고 있다. 한편으로는 여성문제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모사퀴 코뮤니케이션의 프로듀서로 활약하고 있다. 38살 때 프랑스인 남편과 이혼한 뒤 41살에 다시 인도네시아인과 결혼해 두 딸과 입양한 아들 하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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