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와 안와르의 딸, 결국 한쪽은 붕괴하고 말 말레이시아의 쌍둥이 빌딩
제국의 흥망사에는 어김없이 요정 같은 공주 이야기가 등장했다. 말레이시아 현대사에도 두명의 요정이 있다. 전 부총리이자 현재 정치범으로 수감 중인 안와르 이브라힘의 큰딸 누룰아 이자 안와르(21)가 개혁운동의 공주라면, 여성운동 주창자들과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양성 반응자들에게는 마하티르 총리의 큰딸 마리나 마하티르(45)가 아시아판 다이애나다.
비슷하면서 다른 두 사람
한쪽은 기품 있는 정치가에서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아버지의 비극을, 다른 한쪽은 말레이시아를 서구식 근대국가로 이끈 아버지의 명성을 각각 업고 대중 속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두 딸은 나름대로 적극적인 행동주의로 추종자들을 확보했다. 이자는 아버지 안와르의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정치적 탄압과 부정·부패 추방을 외치는 양심적인 소리의 대변자로, 마리나는 지난 10년 동안 말레이시아에이즈협회(MAC) 의장으로 일하면서 취약한 여성인권의 대변자로 폭넓은 지지세력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두 요정의 지원자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이자와 마리나는 아버지들에게 있는 서로 간의 정치적 적개심처럼, 말레이시아 정치를 조망하는 이념에서도 확실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이자는 정교분리를 내건 마하티르 정부를 맹공격하고 있는 이슬람근본주의 정당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의 입장에 서있다. 그는 부패하고 부도덕한 현실정치의 대안으로 이슬람근본주의의 영역을 넓히려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마리나는 자유주의의 상징처럼 정교분리라는 현실정치를 옹호해왔다. 두명 모두 서양문학과 서양음악을 즐기고 친여성적인 정책을 강조하며 말레이어보다는 영어로 말하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자가 투동(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을 상용하는 반면 거리낌없이 반바지차림으로 나서는 마리나의 모습에서 둘 사이의 차별적인 정치적 이념을 간파할 수 있다. 둘 사이의 대조적인 의식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눈길 또는 PAS가 장악한 일부 주 의회에서 통과시킨 후두드(이슬람의 형법에 해당) 법안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연히 갈린다. “동성애는 절대적으로 종교에 위배된다”는 이자의 반대쪽에 “동성애는 개인의 권리와 같은 선택의 문제”라는 마리나가 서 있다. “이슬람 형법은 여성에게 특히 부당하다. 즉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인 여성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4명의 남성 증인을 확보해야 하는데, 만약 실패하면 무고죄로 오히려 처벌받아야 하고, 게다가 임신이라도 하면 돌로 맞아 죽어야 한다”는 마리나의 주장은 특히 심각한 파장을 몰고왔다. 마리나는 “여성들이 들고일어나 이슬람 형법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PAS에 대해서는 대놓고 공격을 했다. “딸 가진 어머니로서, 우리 모두는 테렝가누(PAS가 집권한 주)에 가지도 말아야 해. 거기서 만약 성폭행이라도 당하면… 정당한 재판도 받을 수 없지 않느냐!” 이슬람 근본주의의 부활과 질주
이자는 이 주제를 놓고 좀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후두드에 대해 신뢰할 만한 사회 각 집단들이 공개적으로 대화를 해서 건설적인 판단을 내렸으면 한다. 이것을 말레이시아연합민족기구(UMNO·현 집권당) 대 PAS의 정치적 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다.”는 것이 이자의 입장이다.
정교분리와 근대화를 내걸고 성공한 정치가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은 전형적인 지식인 여성이라고 자부하는 마리나는 자신의 책()에서 석기시대에나 어울리는 교조주의의 월권행위에 대항해 싸울 것을 강조해왔다. 그는 사회적으로 무시당한 여성과 HIV 양성 반응자들의 속박탈출이라든지, ‘가위질’ 없는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개인의 권리 같은 사안을 이성에 호소해온 터라,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팽창하는 이슬람근본주의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근본주의는 1997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와 경찰의 무자비한 개혁운동 탄압, 그리고 세상을 휩쓸고 다니는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세계화의 바람에 대해 종교에서 해답을 찾자는 기운을 끌어들여 자가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슬람근본주의의 부활은 비단 늙다리 보수진영만의 화두가 아니라 이자처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급속히 세를 늘려가고 있다. 지난 7월9일 이자를 두 번째 만난 날은 안와르의 상고심이 열리기 전날 저녁이었다. 이날은 이자의 집에서는 안와르의 석방을 염원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내일을 생각하면 맥이 빠진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바람이다. 독일로 가서 아버지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지난주 아버지가 허리통증을 심각하게 호소했는데….” 이자의 눈빛에서는 외로움과 적개심 같은 것들이 함께 묻어났다. “신의 시험이라 믿고 싶다. 어떻게 시련을 견디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느냐는. 난 아직 어리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늘 신이 함께 한다는 것을 느꼈고, 이런 시련을 통해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전기공학을 전공하며 ‘시시껄렁한’ 음악을 즐겨듣는다는 이자는 현장의 종교적 분위기가 혹시 방문객에게 뭔가 오해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이 스카프를 착용한다는 게 결코 합리적인 사고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자신의 머리를 감싼 스카프를 만지며 말꼬리를 돌렸다.
마리나의 종교주의적 여성운동 비판
이자와 함께 있는 친구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자나 우리 모두는 교조주의 광신자들을 비판해왔다. 이자가 바라는 것은 종교에 있는 근본적인 도덕과 선, 예컨대 정의와 평등, 박애 같은 것을 존중하는 원칙 있는 사회다.” 비록 마하티르 정부의 주도 아래 말레이시아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지만 정치가와 그 족벌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동안 시민들은 쥐꼬리만한 수입에 눈칫밥을 먹어왔다는 것이 이자와 그의 친구들이 가진 분노였다.
마하티르와 안와르는 모두 경제개발과 교육을 통해 이슬람 형제들을 가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현실로 일궈냈지만 경제 활황과 동시에 만연한 부패를 제어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다가 다시 경제위기가 닥치자 마하티르는 개혁보다는 주변 친구들의 부를 보호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것이 결국 둘 사이의 분열을 낳은 문제의 핵이었다고 이자는 설명했다. “종교적 관용이 부패와 도덕적 타락 또는 광신적 태도를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때 좌익 청년 이슬람의 횃불로 셰익스피어와 공자, 코란 그리고 민주주의를 다양하게 인용할 줄 알던 지성적인 안와르- 비록 많은 논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만- 가 주장해온 것처럼 이자는 영락없이 아버지의 이념을 흠모하며 따르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요즘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자처럼 교육받은 이슬람 여성들이 이슬람근본주의를 탐구하는 경향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식인 이슬람 여성들은 경제적 독립을 성취해 이슬람 사회로부터 존경받은 카디자(예언가 무하마드의 아내)의 경우를 연상하며 ‘이슬람의 황금시대’로 회귀하자는 강한 욕망을 보이고 있다.
정교분리주의 여권 운동가 마리나는 이런 종교주의적 여성운동을 가차없이 공격했다. “천진난만한 발상이다. 이슬람근본주의란 건 여성들을 억압하는 갖은 장치를 그럴듯한 수사로 포장한 남성 중심주의자들의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마리나는 자신의 칼럼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한 공세를 취해왔다. “말레이시아 여성들은 최근 자녀를 자신의 호적에 넣을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얻었다. 그러나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유독 이슬람 여성들만은 사회법이 아닌 종교법에 의해 그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한다. 이슬람 여성들은 말레이시아 시민이 아니란 말인가?”
이슬람근본주의 vs 정교분리주의
이자와 마리나는 결국 이슬람 지식인 여권 운동가들 사이에 양분된 시각의 대표선수로서뿐 아니라, 이슬람근본주의 대 정교분리주의라는 사회구성의 대원칙을 놓고 대리전을 펼치는 상징적인 인물로 떠오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이슬람근본주의는 약효가 떨어진 자유주의 대신 본질적인 대답을 요구하며 현 체제 타도를 외치기 시작했고,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상당한 힘을 얻고 있다.
이자는 정교분리와 자유주의로 무장한 현 체제로는 개혁도 진보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먼저 이슬람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슬람은 정의를 찾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이런 진보를 멈추게 하는 건 이슬람의 원리가 아니다.”
자, 이제 어떤 요정이 말레이시아의 미래를 짊어질 것이며, 어느 공주가 말레이시아 사회에 행복을 전파할 것인지 눈여겨볼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마하티르의 퇴진 발표로 후계구도가 들먹이는 가운데 총선이 다가오면서 어떤 형태로든 안와르의 석방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사회를 강타할 것으로 예상되는 폭풍의 진원지에 마리나와 이자가 서 있다.
마리나와 이자는 자신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말레이시아의 쌍둥이 빌딩으로 우뚝 솟아버렸다. 똑같은 건축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한쪽 타워는 정교분리 사회를 향해 또 다른 타워는 회교국가 건설을 향해 각각. 그러나 머지 않아 쌍둥이 빌딩의 한쪽 타워는 붕괴되고 하나만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치 않는, 그래서 요즘 콸라룸푸르의 밤은 심상치 않는 기운에 눌려 있는 모양이다.

사진/ 유니스 라오(Eunice Lau) ㅣ 전 <스트레이츠타임스> 기자

사진/ (유니스 라오, SYGMA)
그러나 두 요정의 지원자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이자와 마리나는 아버지들에게 있는 서로 간의 정치적 적개심처럼, 말레이시아 정치를 조망하는 이념에서도 확실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이자는 정교분리를 내건 마하티르 정부를 맹공격하고 있는 이슬람근본주의 정당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의 입장에 서있다. 그는 부패하고 부도덕한 현실정치의 대안으로 이슬람근본주의의 영역을 넓히려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마리나는 자유주의의 상징처럼 정교분리라는 현실정치를 옹호해왔다. 두명 모두 서양문학과 서양음악을 즐기고 친여성적인 정책을 강조하며 말레이어보다는 영어로 말하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자가 투동(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을 상용하는 반면 거리낌없이 반바지차림으로 나서는 마리나의 모습에서 둘 사이의 차별적인 정치적 이념을 간파할 수 있다. 둘 사이의 대조적인 의식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눈길 또는 PAS가 장악한 일부 주 의회에서 통과시킨 후두드(이슬람의 형법에 해당) 법안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연히 갈린다. “동성애는 절대적으로 종교에 위배된다”는 이자의 반대쪽에 “동성애는 개인의 권리와 같은 선택의 문제”라는 마리나가 서 있다. “이슬람 형법은 여성에게 특히 부당하다. 즉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인 여성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4명의 남성 증인을 확보해야 하는데, 만약 실패하면 무고죄로 오히려 처벌받아야 하고, 게다가 임신이라도 하면 돌로 맞아 죽어야 한다”는 마리나의 주장은 특히 심각한 파장을 몰고왔다. 마리나는 “여성들이 들고일어나 이슬람 형법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PAS에 대해서는 대놓고 공격을 했다. “딸 가진 어머니로서, 우리 모두는 테렝가누(PAS가 집권한 주)에 가지도 말아야 해. 거기서 만약 성폭행이라도 당하면… 정당한 재판도 받을 수 없지 않느냐!” 이슬람 근본주의의 부활과 질주

사진/ 98년 9월 마하티르가 안와르 전 부총리를 체포하자 일어난 말레이시아인들의 대규모 시위. 이자와 마리나는 두 아버지들처럼 말레이시아 정치를 조망하는 이념에서 확실한 차이가 있다. (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