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시작된 필리핀의 진기한 정치실험… 청소년의회가 일궈나가는 민주주의
우리에게 ‘참교육세대’가 있다면, 필리핀에는 청소년의회(Sangguniang Kabataan·SK세대)가 있다. 몬순 기후가 시작된 필리핀에서는 지난 한주간 루손섬 중부지방 3천여 마을 가운데 800여 마을이 물에 잠기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잠시 비가 갠 지난 7월15일, 필리핀 전역에서 바랑가이(우리나라의 동단위 규모) 주민의회 선거가 있었다. 일부 침수지역을 제외하고, 4만2천여 바랑가이에서 주민의회 의장과 7명의 주민의회 의원을 뽑았고, 등록 유권자의 70%가 넘는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기존의 선거연령보다 한살 낮춘 만 18살 이상에게 선거권을 주면서 젊은 층의 적극적 참여가 투표율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친구들의 기부금으로 선거운동
3년마다 치르는 바랑가이 선거에는 필리핀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정치실험, 곧 청소년의회 직접선거가 있다. 바랑가이 주민의회와 같이 의장과 7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청소년의회는 1991년 통합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지방자치의회로 제도화된 것이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아로요 정부가 대표하는 중앙권력에 대한 심판이 있었다면, 이번 바랑가이 선거에서는 지역의 살림꾼을 뽑는 바닥정치·생활정치의 현장을 볼 수 있다.
청소년의회는 15∼17살 청소년들이 지역에서 직접 자신을 대표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실시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최근에는 개폐 논란이 있다. 지역문제에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는 계기를 주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높이기 위해 출발했지만, 한편으로는 점차 기성 정치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가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다. 그러나 마약이나 청소년문제에 대해 청소년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면서 ‘청소년 정치문화’는 어른들의 부패·금권정치와 사뭇 다른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국 청소년의회 의장 리처드 나루브바에 의하면 이번 선거에서 500만명 청소년 유권자 가운데 250만여명이 선거인단에 등록했다. 이 가운데 약 75%가 투표에 참여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퀘손시의 한 바랑가이 청소년의회 의장후보에 뛰어든 시나(15·여)는 선거 캠페인에 나서면서 “어른들의 정치로 사회가 부패했다면 미래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청소년의회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러닝메이트인 7명의 의회 후보자들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거리 캠페인을 벌이면서 지역 청소년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잠시 쉬는 틈을 타 휴대폰으로 문자 메세지 보내기 선거운동을 하느라 분주했다. 바랑가이 주민의회와 마찬가지로 후보등록 공탁금이 없어 부담없이 누구나 후보로 등록할 수 있으며, 홍보물에 드는 선거자금은 친구들의 자원봉사와 모금을 통해 해결한다. 바랑가이 선거운동 기간은 10일간이며 후보자에게 정치헌금을 제공한 사람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선거자금은 선거구 등록 유권자 1인당 3페소(약 80원)를 초과 기부할 수 없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당선된 청소년의회 의장과 의원들은 바랑가이 운영과 결정에서 단순한 ‘거수기’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주위 어른들의 자문을 받아가며 3년간 지역사회 발전과 청소년문제 해결을 위해 봉사한다. 바랑가이는 중앙정부기구인 내무자치부에서 예산을 지원받는다. 일반 사업비 지출 이외에도 연간 예산 가운데 20%는 바랑가이 의장과 의원들이 주도하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에 사용되며, 10%는 청소년의회가 진행하는 지역 청소년문제나 교육과 관련된 여러 활동에 쓰인다. 필리핀 정당정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가운데에는 “소수 정치지도자들이 좌우하는 엘리트 정당들이 대중의 인기도에 따라 이합집산을 일삼는다”는 지적이 많다. 바닥정치의 힘이 상승할 정당구조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점차 줄어들었지만 선거기간에 일어나는 폭행사건도 큰 문젯거리다. 이번 선거에도 전국에서 130여명의 부상자(180건의 폭행)가 발생했다. 필리핀에서 선거기간에 일어나는 불행한 사태의 시작은 마르코스 독재정권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청소년의회가 사회개혁의 주축으로
이른바 3G (Gold· 돈, Guns· 총, Goons· 깡패)로 불리는 부정선거 모습은 마르코스가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한 뒤 권력을 잡기 위해 뿌린 씨앗이다. 바랑가이 의회선거는 마르코스가 중앙권력을 대체하기 위해 전국 바랑가이 단위마다 구축한 마르코스의 말단조직을 이용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독재정권의 의도가 일부 통하기도 했지만 역으로 다양한 재야활동과 바닥운동이 바랑가이 의회 공간을 통해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87년 아키노 정권이 들어서면서 청소년의회라는 새로운 실험이 지방의회 개막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바닥에서부터 시작되는 생활정치의 거대한 실험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났다. 바랑가이 주민들의 직접선거에서 뽑혀 일하는 생활정치 일꾼들의 수는 어림잡아 67만여명에 이른다. 이들의 참여 정치문화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정치·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해가고 있다.
퀘손시 제3구역 선거관리위원장인 로메오(61) 변호사는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은 유권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기권하거나 엉뚱한 사람을 뽑았을 때의 책임은 유권자에게 돌아간다는 매우 평범한 진리를 바랑가이 직접선거를 통해 피부로 느낀다고 한다. 그는 퀘손시 24명의 시의회 의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여성의원이라며 모든 이들에게 동등한 권리와 기회가 주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청소년의회의 참여정치는 일부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를 함께 책임지고 가꾸어야 한다는 청소년 공동체문화를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 세대들이 사회에 배출되면서 사회개혁의 새로운 주춧돌이 되고 있다. 지난해 2월, 에스트라다 부패정권을 물러나게 한 피플파워에 참여한 수많은 20대 청년들도 청소년의회 출신이다. 그들이 필리핀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다.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hotmail.com

사진/ 7월15일 치러진 바랑가이 주민의회 선거. 70%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사진/ 주민의회 후보들의 활발한 선거운동. 선거자금은 자원봉사, 모금으로 해결한다.
청소년의회는 15∼17살 청소년들이 지역에서 직접 자신을 대표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실시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최근에는 개폐 논란이 있다. 지역문제에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는 계기를 주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높이기 위해 출발했지만, 한편으로는 점차 기성 정치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가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다. 그러나 마약이나 청소년문제에 대해 청소년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면서 ‘청소년 정치문화’는 어른들의 부패·금권정치와 사뭇 다른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국 청소년의회 의장 리처드 나루브바에 의하면 이번 선거에서 500만명 청소년 유권자 가운데 250만여명이 선거인단에 등록했다. 이 가운데 약 75%가 투표에 참여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퀘손시의 한 바랑가이 청소년의회 의장후보에 뛰어든 시나(15·여)는 선거 캠페인에 나서면서 “어른들의 정치로 사회가 부패했다면 미래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청소년의회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러닝메이트인 7명의 의회 후보자들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거리 캠페인을 벌이면서 지역 청소년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잠시 쉬는 틈을 타 휴대폰으로 문자 메세지 보내기 선거운동을 하느라 분주했다. 바랑가이 주민의회와 마찬가지로 후보등록 공탁금이 없어 부담없이 누구나 후보로 등록할 수 있으며, 홍보물에 드는 선거자금은 친구들의 자원봉사와 모금을 통해 해결한다. 바랑가이 선거운동 기간은 10일간이며 후보자에게 정치헌금을 제공한 사람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선거자금은 선거구 등록 유권자 1인당 3페소(약 80원)를 초과 기부할 수 없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당선된 청소년의회 의장과 의원들은 바랑가이 운영과 결정에서 단순한 ‘거수기’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주위 어른들의 자문을 받아가며 3년간 지역사회 발전과 청소년문제 해결을 위해 봉사한다. 바랑가이는 중앙정부기구인 내무자치부에서 예산을 지원받는다. 일반 사업비 지출 이외에도 연간 예산 가운데 20%는 바랑가이 의장과 의원들이 주도하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에 사용되며, 10%는 청소년의회가 진행하는 지역 청소년문제나 교육과 관련된 여러 활동에 쓰인다. 필리핀 정당정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가운데에는 “소수 정치지도자들이 좌우하는 엘리트 정당들이 대중의 인기도에 따라 이합집산을 일삼는다”는 지적이 많다. 바닥정치의 힘이 상승할 정당구조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점차 줄어들었지만 선거기간에 일어나는 폭행사건도 큰 문젯거리다. 이번 선거에도 전국에서 130여명의 부상자(180건의 폭행)가 발생했다. 필리핀에서 선거기간에 일어나는 불행한 사태의 시작은 마르코스 독재정권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청소년의회가 사회개혁의 주축으로

사진/ 동료와 토론하고 있는 퀘손시 제3구역 선거관리위원장 로메오 변호사(왼쪽). 그는 여성의원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