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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라파트를 물로 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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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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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그의 사임을 얘기하지 않는다”… 부시의 사퇴요구가 오히려 정치적 기반 강화

사진/ 가자지구에 걸려 있는 아라파트 초상화. 라말라 집무실에 갇혀 “망명도 아니다. 순교자가 되겠다”는 결의에 차 있던 아라파트의 모습.
‘무하마드 압두 아르라우푸 알쿠드와 알후세이니’라는 긴 이름의 주인공이 있다. 사막의 불사조, 9개의 목숨이 있는 고양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 그가 다시 세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를 새삼 세상에 부각시킨 이는 부시 미 대통령이다. 부시는 노골적으로 “그가 없어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충돌이 끝나고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며 오랜만에 팔레스타인을 위한 당근을 던졌다. 부시의 중동평화안이 나오자 일부에서는 그를 두고 권력욕에 집착하여 몽니를 부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다름 아닌 73살의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다.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의 아라파트라는 이름은 그의 전성기, 그러니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의장으로 떠오른 시기에 붙은 이름이다. 아라파트는 현재 사면초가에 몰려 있지만, 안팎의 퇴진 요구에도 쉽게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망할 놈의 인티파다…”

사진/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 도시를 벗어나려면 2∼3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가 되어버렸다.
“아라파트는 무법·부패·불안의 몸통이다. 그는 물러나야 한다.” 인티파다가 장기화하면서 반아라파트 민심은 수직상승하고 있었다. 부시가 아라파트 퇴진을 요구한 시점에 지난 7월1일 4천여명의 반아라파트 시위대가 가자지구의 아라파트 관저로 몰려들었다. “아라파트는 각성하라!” “우리에게 일자리와 먹을 것을 달라!” 이런 장면만을 이어본다면 민심은 아라파트 퇴진으로 기울었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목표를 이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7월3일 가자지구에 5천여명이 모여 아라파트 지지시위를 벌였다. “아라파트 수반을 대신할 자는 없다. 스스로 팔레스타인의 대표라고 나서는 자는 이스라엘의 공모자다. 부시 대통령은 내정간섭을 중단하라.” “여기는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다. 부시는 팔레스타인에서 카르자이를 찾지 못할 것이다.” 사방에서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인티파다가 이스라엘에게 자치지역 봉쇄와 강경한 군사작전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반인티파다 정서가 크게 번져가고 있다. 가자지구 자발리예 난민촌에서 만난 후세인 아부 사이드는 “망할놈의 인티파다가 다 뭡니까? 이 철창 없는 감옥(가자)에 갇혀 호구책도 제대로 세울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 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자살폭탄과 이스라엘의 보복공격 때문이 아닙니까?”라며 목청을 돋웠다. 70만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보안상의 이유로 이스라엘 지역 출입을 통제받고 있다. 다수의 국민은 명분이 아닌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사진/ 베들레헴 지역을 경계하고 있은 이스라엘 군인들. 이스라엘군의 점령과 철수가 반복되면서 팔레스타인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누가 감히 지금 아라파트의 퇴진을 거론한단 말인가? 많은 언론이 아라파트 퇴임을 예측하고 관련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렇지만 거론되는 후보들 어느 누구도 노골적으로 지금 반아라파트 입장을 견지할 수 없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아라파트가 지니는 상징성의 위력 때문이다. 자치정부 대부분의 중진들이 예외없이 부정부패 의혹을 받고 있고, 이스라엘과 미국이 좋아한다는 지브릴 라주브나(전 서안지구 치안대장), 모함마드 다흐랄(아라파트 보좌역)은 둘 다 친미파로 여겨져 지금 당장은 아라파트의 라이벌이 될 수 없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아라파트가 지금 퇴진하는 것은 적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라파트의 패배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패배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부시의 아라파트 교체 의지 표명은 역으로 그에 대한 동정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아라파트는 사퇴는 없다고 강경하게 반발하면서 내년 1월 대선출마를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예전처럼 그를 대통령병 환자로 몰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아라파트의 입장이 무모한 것으로만 비치지 않는다.

부시의 내정간섭이 아랍 민심 자극

사진/ 라말라 지역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라말라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은 창살 없는 감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 선출은 팔레스타인의 독자적인 문제다”라며 부시 대통령의 주장을 일축하는 아라파트. 이런 아라파트의 또 다른 정당성은 그에게 동정적인 아랍 민심이 제공하고 있다. 내년 1월 중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지도자 선출을 위한 선거가 예정된 상태이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자치정부 쪽은 지난 6월26일 미국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치개혁안을 발표했다. 자치정부 수반 선거와 총선거를 내년 1월10일부터 20일 사이에 실시하고, 3월에 지방선거를 치른다는 일정을 담고 있다. “3년이라는 과도기간을 설정해놓고는 반년을 기다려주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주장에 많은 아랍인들이 동조하고 있다. 사실 아랍국들은 부시의 중동평화안을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문제는 “아라파트 교체하라”는 다분히 내정간섭으로 비치는 부분이 민심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이 실질적인 정부개혁을 해내면 3년 뒤 독립국가 창설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수도 있다”는 부시의 말에 귀기울이는 이들은 없다. 그래서 급하게 아라파트를 바꿔치우고 새로운 진용을 갖춰야 할 필요도 절실하지 않다. 종이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뒤집은 경우가 헤아릴수 없을 많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인티파다 직전 독립선포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어이없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대표적 투쟁조직이며 아라파트의 대표적 정적인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 등도 반아라파트 투쟁에 떨쳐나서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라파트의 용퇴를 둘러싼 투쟁으로 팔레스타인 내부가 극도의 혼란과 분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 와중에 아라파트가 세에 밀려 물러날 것으로 예측하면서. 하지만 팔레스타인 내부세력 간의 충돌이나 내분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깔려 있는 무기라고는 수만정의 총기류가 고작이다. 이 가운데 수백정 정도만이 이들 투쟁조직에 있고, 나머지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가 장악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투쟁조직 간의 갈등 가능성을 희박하게 한다. 최근에 해임된 서안지구 치안대장 지브릴 라주브나도 아라파트 수반의 권위에 정면도전할 의사가 없다. 그래서 아라파트의 용퇴는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팔레스타인의 역사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위기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서

“우리는 여기 예리코에서부터 헤브론, 나블루스, 제닌, 툴카름, 칼킬리야, 베들레헴, 라말라까지 그리고 마침내는 곧바로 알쿠드스(예루살렘)까지 전진할 것입니다. 그 알쿠드스에서 기도를 올릴 것입니다.” 1994년 7월, 27년간의 망명생활을 접고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그가 돌아왔다. 그의 변신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러나 사실 그의 공약은 하나씩 실현되었다. 자치도시들이 늘어갔고 독립선언이 임박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치도시들은 다시금 이스라엘군의 무장병력들에 의해 점령과 철군이 반복되는 신세가 되었다. 아라파트 자신도 알쿠드스 가까운 라말라에 다시금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스스로를 불사조라고 했다. 지난 봄 꺼질 뻔한 그의 정치력에 다시 불을 붙여준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제 다시 부시의 중동평화안으로 아라파트의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금 아라파트가 이어가는 ‘오뚝이 신화’를 지탱해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라파트를 매우 싫어하는 부시다. 중동평화 문제는 그래서 복잡하다.

암만=글·사진 김동문 통신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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