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정상회담에 초대된 알제리·세네갈·나이지리아·남아공은 왜 아프리카를 대표하나
6월26일 캐나다에서 열린 G8정상회담에, 아프리카판 마셜 계획이라고 하는 NEPAD(아프리카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동반자 관계) 계획을 협의하기 위해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세네갈의 와드, 나이지리아의 오바산조,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움베키 대통령이 참가했다. 어떻게 네 나라 정상들이 아프리카 53개국을 대표하게 됐을까.
대부분 생소한 국가 이름을 접할 경우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인구, 면적, 1인당 국민소득 등일 것이다. 아프리카 최대 인구대국은 1억4700만명인 나이지리아다. 남아공은 4500만명, 알제리는 3200만명이니, 나이지리아·남아공·알제리는 인구 측면에서 아프리카를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
‘소국’ 세네갈의 국제적 지명도
국토면적에서는 250만5810㎢ 로 한국(남한 한반도??)의 25배에 해당하는 수단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이지만 아프리카 2위의 알제리(238만1740㎢, 한국의 24배)가 G8정상 회담에서 아프리카를 대표했다. 르완다에 비해 면적에서 89배, 인구에서 7배나 큰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가 모부투 대통령이 몰락한 뒤 이웃 르완다에 국토까지 점령당하는 것을 보면 아프리카에서 국토면적은 국가비교 기준에서 큰 변수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국민총생산을 비교해볼 때 아프리카 1위인 남아공은 3690억 달러로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다. 세계 기준으로 보았을 때 23위로 그리 못사는 나라는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 1위는 1만400달러인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다. 아프리카 관광대국이자 설탕수출국으로 높은 경제수준을 자랑한다. 인구·국토면적·국민소득을 비교했을 때 알제리·나이지리아·남아공이 아프리카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세네갈이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데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세네갈은 인구 1천만명에 국토면적도 알제리의 1/12밖에 안 되는 빈국이다. 와드 대통령의 지극한 ‘축구사랑’에 감동받은 서구 정상들이 G8정상회담에 그를 초청했을까? 세네갈이 아프리카 대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세네갈의 국가 이미지와 대통령의 국제적 지명도 때문이다.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는 ‘아프리카의 파리’라고 할 정도로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이 아주 강하다.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인 레오폴드 생고르는 프랑스 학술원(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프랑스 문화의 대변자로 존경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도 아프리카의 고질병인 쿠데타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아,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착한 정치문화를 보여주었다. 와드 현 세네갈 대통령은 법학자이자 변호사로서 1974년 아프리카 최초의 야당인 세네갈 민주당(PDS)을 창당했고 5번 만의 대선도전 끝에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지역의 정치원로로 마다가스카르 사태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아프리카 민주화의 지도자들 와드 대통령 이외에 부테플리카·오바산조·움베키는 어떤 지도자의 역량을 갖춘지도 관심사다.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전에 세계 최연소 외무장관(당시 26살)으로 취임했다. 그는 막대한 석유수입을 기반으로 1960∼70년대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현 아프리카 지도자 중에서 독립운동 기간 중 알제리의 군사·재정지원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알제리의 외교적 영향력은 아직까지 막강하다.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말리의 투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평화적으로 민간정부에 정권을 이양해 칭송을 받았다. 79년 정권을 민간정부에 이양하고 하야했지만 신군사정권 때문에 옥살이를 하는 등 정치적 핍박을 받다가 당시 독재자인 아바샤 장군의 급작스런 사망(인도 매춘부와 성관계중 비아그라 과다복용으로 죽음)으로 대통령에 재취임했다. 움베키 남아공 대통령은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인종차별철폐운동을 한 고반 움베키의 아들이다. 아버지 고반 움베키가 만델라와 함께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영국으로 유학해 석세스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적 열정, 행동주의보다는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우는 등 사색적인 영국신사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비판을 받기도 한다. 튀니스(튀니지)=김병국 통신원 ibnkim@yahoo.com

사진/ G8 회담에 참석한 아프리카 지도자들. 앞줄 맨 왼쪽이 음베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오바산조,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부테플리카, 맨 오른쪽이 와데 대통령이다. (GAMMA)
국토면적에서는 250만5810㎢ 로 한국(남한 한반도??)의 25배에 해당하는 수단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이지만 아프리카 2위의 알제리(238만1740㎢, 한국의 24배)가 G8정상 회담에서 아프리카를 대표했다. 르완다에 비해 면적에서 89배, 인구에서 7배나 큰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가 모부투 대통령이 몰락한 뒤 이웃 르완다에 국토까지 점령당하는 것을 보면 아프리카에서 국토면적은 국가비교 기준에서 큰 변수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국민총생산을 비교해볼 때 아프리카 1위인 남아공은 3690억 달러로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다. 세계 기준으로 보았을 때 23위로 그리 못사는 나라는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 1위는 1만400달러인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다. 아프리카 관광대국이자 설탕수출국으로 높은 경제수준을 자랑한다. 인구·국토면적·국민소득을 비교했을 때 알제리·나이지리아·남아공이 아프리카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세네갈이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데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세네갈은 인구 1천만명에 국토면적도 알제리의 1/12밖에 안 되는 빈국이다. 와드 대통령의 지극한 ‘축구사랑’에 감동받은 서구 정상들이 G8정상회담에 그를 초청했을까? 세네갈이 아프리카 대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세네갈의 국가 이미지와 대통령의 국제적 지명도 때문이다.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는 ‘아프리카의 파리’라고 할 정도로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이 아주 강하다.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인 레오폴드 생고르는 프랑스 학술원(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프랑스 문화의 대변자로 존경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도 아프리카의 고질병인 쿠데타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아,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착한 정치문화를 보여주었다. 와드 현 세네갈 대통령은 법학자이자 변호사로서 1974년 아프리카 최초의 야당인 세네갈 민주당(PDS)을 창당했고 5번 만의 대선도전 끝에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지역의 정치원로로 마다가스카르 사태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아프리카 민주화의 지도자들 와드 대통령 이외에 부테플리카·오바산조·움베키는 어떤 지도자의 역량을 갖춘지도 관심사다.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전에 세계 최연소 외무장관(당시 26살)으로 취임했다. 그는 막대한 석유수입을 기반으로 1960∼70년대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현 아프리카 지도자 중에서 독립운동 기간 중 알제리의 군사·재정지원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알제리의 외교적 영향력은 아직까지 막강하다.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말리의 투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평화적으로 민간정부에 정권을 이양해 칭송을 받았다. 79년 정권을 민간정부에 이양하고 하야했지만 신군사정권 때문에 옥살이를 하는 등 정치적 핍박을 받다가 당시 독재자인 아바샤 장군의 급작스런 사망(인도 매춘부와 성관계중 비아그라 과다복용으로 죽음)으로 대통령에 재취임했다. 움베키 남아공 대통령은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인종차별철폐운동을 한 고반 움베키의 아들이다. 아버지 고반 움베키가 만델라와 함께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영국으로 유학해 석세스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적 열정, 행동주의보다는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우는 등 사색적인 영국신사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비판을 받기도 한다. 튀니스(튀니지)=김병국 통신원 ibnkim@yah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