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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뉴욕을 흔든 화려한 말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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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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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을 위한 선언’으로 끝난 밀레니엄 정상회의…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 역할 강화 제기

(사진/“말뿐인 세계 평화는 싫다”사흘동안의 밀레니엄정상회의 동안 유엔본부 건너편 길은 시위대로 몸살을 앓았다)
화려한 말잔치. 선언적 의미. 전세계 147개국 국가원수 및 정부수반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9월6일부터 사흘 동안 미국 뉴욕에서 열린 새천년(밀레니엄)정상회의는 한마디로 ‘화려한 말잔치로 끝났다’고 보면 틀림없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단지 사흘의 국제회의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세부사항을 놓고 진지한 토론을 거친 다음 구체적 합의를 끌어내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폐막 당일(9월8일)에 나온 ‘밀레니엄 선언문’은 말 그대로 선언적 의미를 지닐 뿐이다. 전쟁과 굶주림, 질병과 공해에서 인류가 벗어나도록 유엔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 노력하자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빅5’는 영원하다?

굳이 성과를 찾는다면, 각국 정상들이 21세기의 문턱에서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세계평화를 위해 유엔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합의를 보았다는 정도다. 그러나 각론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각국의 사정에 따른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야 다들 세계평화를 말한다. 그러나 이를테면 만성적인 분쟁지역인 중동과 아프리카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놓고는, 선언문의 문구대로 “전쟁의 비참함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선에서 몇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밀레니엄정상회담의 말잔치는 지구촌 곳곳에 퍼져 있는 절대빈민들을 위한 몇 가지 목표 설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각국 정상들은 마지막 날 선언문을 통해 △2015년까지 하루 1달러를 못 버는 절대 빈곤층과 굶주리는 사람들, 그리고 안전한 식수를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의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2015년까지 전세계 모든 어린이들이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2015년까지 유아 사망률을 75% 줄이고 △2015년부터는 HIV/AIDS와 말라리아를 비롯한 주요질병들 증가를 멈추게 하고 △2020년까지 적어도 1억 도시빈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빈민가 없는 도시들을 만들어 나가자고 결의했다. 그러나 이것들도 구체적으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에 대한 청사진이 뒷받침된 것은 아니다.

유엔의 위상 재정립과 관련한 합의도 말 그대로 공허한 선언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선언문은 유엔총회가 유엔의 중심 정책결정기구이자 대표기구임을 거듭 확인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포괄적인 개혁을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유엔의 중요결의사항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지닌 5대 강국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에 대한 다수국가들의 불만과 개혁요구에서 비롯됐다. 안보리의 정원을 15개국에서 20개국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도 논란거리지만, 유엔총회를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그 위상을 되살리자는 합의는 현실성이 약하다. 무게중심은 아무래도 5개 강국들이 버티는 유엔 안보리쪽에 실려 있다. 힘의 논리가 현실정치에 반영되는 한, 유엔에서 이른바 ‘빅5’의 기득권이 훼손되는 쪽으로 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브라히미보고서’의 외침

(사진/유엔밀레니엄정상회의 참석자들)
가난 추방, 환경보호, 인권문제 등이 거론되긴 했지만, 사실상 이번 밀레니엄정상회담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뤄진 주제는 평화유지와 관련한 유엔의 개혁과 역할강화였다. 지난 10년 동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500만명을 넘는다. 그동안 유엔은 이런 희생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번 밀레니엄정상회담 동안 따로 이뤄진 15개 안보리 이사국 정상들 모임에서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유엔은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데 신뢰성의 위기에 부딪혔다”며 자탄하면서, “이런 현실은 결의안이나 성명서로 바뀔 수 없다”고 지적했다. 97년 1월 사무차장에서 사무총장에 뽑힌 이래 코피 아난이 여러 각도에서 유엔의 평화유지활동 강화방안을 검토해온 것도 이런 인식에 바탕해서다. 올해 8월에 발표된 유엔 평화유지활동연구위의 보고서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평소소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알제리 전 외무장관 라크다르 브라히미를 위원장으로 한 10명의 전문가들이 작성한 이 보고서의 제목은 위원장 브라히미의 이름을 딴 ‘브라히미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이 일시적인 책임(temporary responsibility)에서가 아니라 유엔의 핵심활동(core activity)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 아래 △여단 규모의 다국적 평화유지군 창설(상비군은 아님) △유엔평화유지군 신속 배치(소규모 30일 이내, 대규모 90일 이내) △유엔사무총장의 평화유지군 파병결정 재량 강화 △매건마다 안보리 심의를 거쳐야 하는 지원계정(support account)이 아닌 유엔 정규예산에서의 파병 재원 확보 등이 뼈대를 이룬다. 이 보고서는 아울러 효과적인 분쟁억지전략과 평화조성전략의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건의들은 9월7일 15개 안보리 이사국 정상들 모임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어지는 가을 유엔총회에서 구체적인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유엔평화유지군의 활동범위를 놓고 강국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달라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미국, 영국 등은 지금까지의 유엔평화유지활동의 범위를 좀더 넓히려는 입장인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소극적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유엔평화유지군은 신속배치능력과 무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코피 아난의 손을 들어준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평화유지활동에 대해 “국제법의 원칙과 목적이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가 말하는 국제법의 원칙이란 주권국가의 영토적 통합과 정치적 독립, 내정불간섭을 가리킨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도 “인도주의라는 이름으로 주권국의 내정에 자의적으로 무력간섭할 수도 있다”며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입장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평화유지문제에 소극적인 배경에는 체첸과 티베트를 비롯해 자국 내 분리주의자들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허수아비 평화유지군의 현실

(사진/알바니아계의 보복에 대비해 세르비아교회를 지키는 코소보평화유지군(KFOR)소속 독일군 병사들)
유엔이 전세계 분쟁지역에 평화유지활동을 펴온 것은 지난 1948년부터다. 그때부터 지금껏 53곳의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이 파병됐고, 쓰인 예산만도 207억달러쯤이다(현재 14곳, 89개 국가에서 차출된 3만7천명의 병력이 평화유지군으로 활동중- 도표 참조). 그동안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밀레니엄정상회의에서 지적한대로 “유엔이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왔다”는 것은 시에라리온 사태에서 바로 찾을 수 있다. 9년 넘게 내전에 시달려온 시에라리온에는 1999년 로메평화협정에 따라 유엔평화유지군이 진주한 곳이다. 그러나 잠비아, 인도, 방글라데시, 케냐군이 주축이 된 평화유지군은 통신 등 기본장비면에서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밀림을 근거지로 다이아몬드 밀수출에 재미를 보는 1만5천명 규모의 반군 혁명연합전선(RUF)을 제대로 통제하기는커녕, 지난 5월에는 500명의 잠비아군이 반군에게 인질로 잡혔다 풀려나는 수모까지 겪었다. “무장수준도 형편없지만, 무엇보다 통신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데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게 호산 자키 유엔평화유지활동(KPO) 특위 보고관의 지적이었다.

필자가 지난 4월 시에라리온에 갔을 때 겪은 일 하나. 반군지도자 포데이 산코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한 반군사령관은 “말이 유엔군이지, 우리보다 전투를 잘하나, 훈련이 잘 돼 있나. 장비도 형편없더라. 우리가 맘만 먹으면 저들은 하룻거리도 안 될 것”이라며 큰소리쳤다. 그후 사태 진전으로 미뤄본다면, 그의 말이 전혀 과장된 것은 아니다. 현재 시에라리온에는 전세계 유엔평화유지군의 3분의 1 규모인 1만2500명의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다. 숫자는 적지 않아도 이들이 RUF반군을 압도하는 것은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다. 1만5천 RUF반군들은 9년 내전의 경험에다, 밀수출한 다이아몬드로 맞바꾼 강력한 화기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최근 유엔안보리에 시에라리온 평화유지군을 2만명으로 늘릴 것을 신청해 9월 안으로 이와 관련한 안보리 결의안이 나올 예정이다. 그러나 요점은 증원군의 숫자가 아니라 질에 있다. 지난 5월 시에라리온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긴급파견된 영국군 공수부대는 겨우 몇백명이었지만, 수도 프리타운을 넘보는 반군을 넉넉히 제압해왔다. 최근 11명의 영국군인들이 인질로 정글에 억류됐다가 기습작전으로 풀려난 사건이 있었지만, 이들은 일부 무뢰한들의 속임수에 따른 것이지 반군과의 전투에서 패해 잡혀간 포로들은 아니었다.

상비군 창설에 힘을 모아라!

(사진/프리타운은 9년 내전으로 이처럼 불탄 채 버려진 건물들이 즐비하다.사진은 RUF반군과의 시가전에서 불탄 교회)
문제는 유엔이 자체 보유한 신속배치군이 없는 마당에, 전투력이 막강한 선진강국들이 지구촌 평화유지에 선뜻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 식민지 종주국으로 시에라리온 사태에 나름의 이해관계와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있는 영국마저도 본격적인 무력개입을 통해 시에라리온 사태에 깊이 빠져드는 걸 원치 않는다. ‘세계의 경찰’을 자부하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쿠웨이트의 석유가 걸린 이라크침공 사태 같은 민감한 이해관계가 없는 곳에 미국이 병력을 보낼 이유가 없다. 코소보전쟁의 경우도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막판까지 협상에 매달리다 마지 못해 무력개입했고, 그것도 공중폭격으로 일관했던 미국이었다. 코소보도 쿠웨이트와는 달리 미국으로선 이렇다할 이해관계가 없는 곳이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 주도 아래 ‘브라히미보고서’가 나오게 된 또다른 배경이 있다. 르완다내전과 보스니아내전 당시 유엔이 올바른 조치를 빨리 하지 못한 탓에 대량학살이 일어났다는 드센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코피 아난은 유엔사무차장보로 평화유지 업무를 맡고 있었기에, 그같은 비판은 지금까지 그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르완다에선 1994년 4월부터 6월까지 불과 두세달 사이에 50만에서 80만명에 이르는 투치족이 후투족에게 인종청소를 당했다. 당시 르완다에는 1993년에 파병된 유엔평화유지군(UNAMIR, 1993년 파병)이 있었지만, 400명밖에 안 되는, 그것도 경무장부대였다. 그들은 대량학살을 저지할 만한 물리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지켜볼 뿐이었다. 유엔이 추가병력을 보낸 것은 학살의 바람이 불고 지나간 뒤였다.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일어난 세르비아계에 의한 회교도 집단학살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소말리아에서 미국해병 18명을 포함한 154명의 평화유지군이 목숨을 잃은 것도 현지 무장집단들을 제압할 만한 병력을 제때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들은 유엔이 더이상 지구촌 평화유지의 중심기구로서 자리매김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초점은 유엔이 언제든 분쟁지역에 긴급 투입할 수 있고 막강화력을 지닌 신속배치군을 자체 보유하는 데로 모아진다. 이른바 상비군이다. 9월 밀레니엄정상회담에 상정된 유엔평화유지활동연구위의 보고서(브라히미보고서)에는 그러나 상비군 항목이 들어 있지 않다. 코피 아난이 97년 사무총장이 된 이래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이 항목이 빠진 것은 현실적으로 강대국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게 어렵다는 판단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지난 5월 시에라리온 사태가 악화되자,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신속배치군 얘길 꺼내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파병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바 있다.


평화유지기관 유엔의 향방은…

‘브라히미보고서’에서는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내야 할 절실하고 마땅한 요구가 생겨났을 경우 파병준비 시한(30일 또는 90일)을 정하는 등 몇 가지 보완책이 마련되긴 했다. 그러나 유엔 자체의 평화유지상비군이 없는 한 지구촌 평화유지에 유엔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때그때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유엔사무총장은 미국, 영국 등 힘있는 나라들에 손을 벌려야 하기 때문이다. 유엔을 좀더 효과적인 평화유지기관으로 만들려면, 분쟁예방, 분쟁의 평화적 해결, 평화유지, 분쟁 뒤 평화조성과 재건에 필요한 자원과 도구들을 갖추도록 해야한다. 이런 맥락에서 9월5일 막을 연 제55차 유엔총회를 통해 ‘브라히미보고서’의 건의들이 어떤 형태로 제도화될지 두고 볼 일이다.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이름

지역

주둔
시점

인원
(군인)

예산(100만달러)

개요

  ①UNTAET

동티모르

1999년

8,084명

584

동티로르 독립투표 과정에서 유혈사태

  ②UNMOGIP

인도/파키스탄

1949년

46명

8

캐시미르지역 국경분쟁

  ③UNIKOM

이라크
/쿠웨이트

1991년

1,111명

52

쿠웨이트/이라크 국경감시

  ④UNOMIG

조지아

1993년

102명

30

아브카지아 지역 분리주의자들의 무장투쟁

  ⑤UNTSO

중동

1948년

143명

23

중동협정 위반감시

  ⑥UNIFIL

레바논

1978년

5,619명

146

레바논/이스라엘 접경감시

  ⑦UNDOF

중동

1974년

1,035명

37

이집트/이스라엘 접경감시

  ⑧UNFICYP

사이프러스

1964년

1,219명

43

터키계/그리이스계 분쟁

  ⑨UNMOP

프레블라카

1996년

27명

-

프레블라카반도 분쟁

  ⑩UNMIBH

보스니아

1995년

1,644명

158

보스니아 내전

  ⑪UNMIK

코소보

1999년

4718명

461

세르비아/알바니아계 분쟁

  ⑫MINURSO

서부 사하라

1991년

231명

49

서부 사하라지역 선거감시

  ⑬MONUC

콩고

1999년

5,537명

141

콩고내전

  ⑭UNAMSIL

시에라리온

1999년

12,447명

504

반군 무장해제

  ⑮UNMEE
     (예정)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2000년

4,200명

-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국경분쟁감시

합계

 

 

37,350명

22억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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