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가톨릭 사제 성추행 파문… 신부 독신주의 폐지로 이어질까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된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파문은 곧 미국 전역으로 번졌고, 아일랜드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홍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올 부활절 직전에는 미국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소환당해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하기도 했다. 지는 6월14일에는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미국 전체 주교들이 모여서 성범죄와 연관된 사제들을 강력하게 처벌한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천명했다.
현재 전 세계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파문은 가톨릭 교회의 기초를 흔들 정도로 심각하다. 보스턴 대교구만 보더라도 전체 사제 930명 중 성범죄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사제들은 90명 이상이나 된다. 미국 전체로 본다면 4명의 주교를 포함한 약 250명의 사제들이 성문제로 인한 스캔들로 사임했거나 정직상태에 있다. 더욱이 미국의 저명한 가톨릭계의 지도자이자 차기 교황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버나드 로 추기경마저도 사제들의 성범죄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하고 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고소된 상태다.
피해자 공동대처로 진실 밝혀
현재 25살인 크리스토퍼 팔치노는 13살 때 당시 주임신부인 존 조간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그는 사건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추기경을 고소했다. 조간 신부는 이미 80건 이상의 고소·고발을 당한 상태이며 그에게 강간이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130명을 넘어섰다. 고소장에서 팔치노는 로 추기경이 조간 신부의 비행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에게 파문 등의 중징계를 내리기보다는 ‘다른 교구로의 전출’이라는 형식적인 징계를 내리는 바람에 더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피해자들과 가족들, 인권단체의 활동가들은 추기경에게 사임을 요구하면서 그의 교회 앞에서 정기적인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스캔들이 보스턴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난 까닭은 피해자들이 ‘생존자네트워크’ 같은 조직을 통해 공동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개인이 피해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막강한 가톨릭 교회를 상대로 한 법적인 대응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설령 재판까지 간다 하더라도 피해자 개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손가락질밖에 없었다. 강간이나 성추행 같은 성범죄는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증인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당연히 법정에서는 교회에서 선임된 노련한 변호사들이 사건을 흐지부지 얼버무리고 만다. 그 밖에도 성범죄 문제가 시끄러워지면 교회에서 피해자들에게 치료비 명목의 거금을 주고서 무마했고, 교구에서는 기껏해야 문제의 사제들을 전출시키는 정도의 형식적인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조직을 중심으로 뭉친 피해자들의 법적 대응, 조직적인 시위와 항의는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켈리 신부에게 어릴 때 강간당한 한 소녀는 수차례나 재판을 치렀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그러나 켈리 신부에게 같은 일을 당한 소녀들이 계속 나타나자 재판에서 승소하였다. 피해를 당한 사람이 많자 범죄를 저지른 사제는 더 이상 자신의 행위를 부인하기 힘들었다. 켈리 신부는 재판정에서 50∼100명의 소녀들을 성추행했다고 말했다.
또한 보스턴 대교구의 지도자들이 사건에 대처한 방식이 밝혀지면서 대중들로부터 비도덕적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사제들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당한 신자 1인당 20만달러라는 거액을 치료비 명목으로 지급하면서 사건을 잠재우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교회의 재정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그러한 행위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보상을 받지 못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사례를 집단적으로 언론에 터뜨렸다.
현재 보스턴 대교구에서만 1억달러 이상이 치료비 명목으로 지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전체의 가톨릭 교회가 성추행 파문을 무마하기 위해 지출한 돈은 무려 10억달러에 이른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수많은 성범죄와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존 조간 신부 한 사람을 위해 보스턴 대교구에서 뿌린 돈만 해도 무려 수백만달러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확대된 원인 중 다른 하나는 바로 가톨릭 교회의 물질만능주의적인 대처방식이다. 다니던 교회를 영혼의 안식처로, 사제를 영혼의 안내자로 믿어온 교회 신자들에게 교회 지도자들이 보여준 물질만능주의적인 해결방식은 신자들이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연히 대중이라는 방어벽이 사라지자 교회 지도자들은 일시에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수의 가톨릭 사제들은 “돈이 주요 동기”라는 의혹의 눈으로 피해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바티칸 대사관의 폴 신부는 “20년 전의 일을 현 시점에서 터뜨리는 이유는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모두 당시엔 어린 나이였고 어떻게 할 수조차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의 인생을 망친 사제가 지금도 여전히 성직자, 사회의 지도자로서 행세하고 있다는 데 더 화가 난다”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은다. 피해 보상과 더불어 성추행을 저지른 사제에 대한 법적 처벌이 피해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피나는 개혁만이 살길”
최근에 가톨릭교계의 신자들은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을 근절하기 위한 해결책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 한 예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성공회 교회에 다니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미사 뒤 경찰이 상황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했다. 다른 해결책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바로 가톨릭 사제 독신주의의 폐지안이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파문이 일어날 때마다 사제들의 독신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강력하게 대두됐다. 독신주의가 성범죄를 불러일으키는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3월17일 성목요일편지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사제들에 대해 ‘악’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비난했지만, 독신주의에 대한 입장에서는 한치의 변화도 없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제들은 독신주의에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서거한 전임교황 바오로 6세는 1967년 “교회에서 독신주의와 성직자를 연결하는 띠를 끊을 시기가 되지 않았는가?”라는 충격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브라질의 추기경 파울루 안은 성추행 파문이 확대되자 과의 인터뷰에서 “사제들의 독신주의는 필수적인 요건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돼야 한다”고 밝혀 바티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입장을 표명했다. 아테네 성당의 알투르 포하스 신부(41)도 독신주의의 역사적 배경까지 설명하면서 “독신주의는 성경적이 아니라 어느 한 교황이 강제한 것이므로 개정되어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가톨릭 사제들의 성범죄 파문은 일반시민들까지 성직자를 범죄자와 동일시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가톨릭 교회가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은 개혁을 위한 피나는 노력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교회 모퉁이의 작은 기도실로 향하는 포하스 신부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 보인다.
아테네=글·사진 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사진/ 보스턴 대교구의 버나드 로 추기경. 그는 사제들의 범죄사실을 은폐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했다.

사진/ 성추행의 희생자인 데이비드 페터란드의 기자회견 모습. 피해자들은 물질적 보상 외에 법적 처벌도 요구하고 있다.

사진/ 보스턴 성당의 미사 장면. 보스턴 대교구의 전체 사제 930명 중 성범죄로 재판을 기다리는 사제들은 90명 이상이나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