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의 ‘과격한’ 방재훈련
등록 : 2000-09-21 00:00 수정 :
지난 9월3일 도쿄도에서는 ‘자위대’를 동원해, 혹시 있을지도 모를 ‘3국인’(식민지 시기 조선인, 중국인 지칭) 소요에 대비한 대규모 훈련이 벌어졌다. 공식 명칭은 ‘도쿄 종합 방재훈련 -빅 레스큐 도쿄2000’. 훈련에 참여한 육·해·공 자위대는 모두 7100명이다. 대전차 헬리콥터를 비롯한 82대의 항공기, 장갑차 등 1090대의 차량, 그리고 함대함 미사일과 어뢰를 장착한 호위함 등 5척의 함정이 동원됐다. 도쿄 중심 긴자 네거리엔 라이트를 켠 무장 지프와 장갑차가 등장했고, 하늘엔 무장헬기가 떴다. 지난 95년 고베 대지진과 같은 규모의 대지진에 대비한 훈련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대규모 병력이었다. 이날 훈련의 주역 역시 소방청이나 경시청이 아닌 자위대였다.
물론 긴자에만 자위대가 출동한 것은 아니다. 에도가와 부근에서는 적이 다리를 파괴할 때 사용할 부교 설치 및 도하훈련이, 하루미 여객선터미널 인근에선 공격형 대형함선에서 시작된 장갑차 상륙작전이 전개됐다. ‘오오스미’라는 이름의 이 함정은 유엔평화유지군(PKO)의 해상기지로도 사용될 만큼 큰 대형함선이다.
이날 훈련의 총사령관격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장갑차에 올라탔으며, 훈련을 격려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전력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제9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평소 그의 소신대로, ‘자위대’라는 명칭 대신 ‘3군’이라는 명칭을 그는 사용했다. 훈련에 대한 강평에서도 “예상치 못한 외국의 침범에도 일본인의 긍지를 가지고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염을 토했다. 지난 4월 육상 자위대 부대창설식에서 “대규모 재난시 자위대를 동원해 3국인의 소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해 물의를 빚은 바 있는 이른바 ‘3국인 발언’이 이번 훈련의 진짜 의도였음을 자인한 것이다. 리히터 규모 7.2의 지진 상황에선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지하철’로 육상 자위대가 이동한 것만 보더라도, 이번 훈련이 단순한 방재훈련만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시민단체들은 그들이 통과하는 역 앞에서 “방재에 편승한 군사연습 중단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한편 종합방재훈련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9월2일 도쿄 신주쿠 조엔지에서는 ‘이시하라 중지 네트워크’ 등이 주관한 ‘다문화 공생 방재실험’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어, 중국어, 타이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 재해 대피 구내 방송과 방재 실험, 그리고 오오사카 가수 기나쇼기치의 노래 <꽃>을 여러 나라 언어로 함께 부르는 콘서트 등이 열렸다. 이시하라의 저서
을 패러디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들’의 모임인 셈이다. 방재훈련을 빌미로 주변국 대상의 군사훈련을 꾀한 이시하라 도지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들은 방재훈련을 계기로 외국인과의 공생을 도모했던 것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신숙옥(재일한국인 3세)씨는 어린이들을 꾀어 사라지게 만든다는 동화 <하메룬의 나팔>을 빗대어 이시하라 도지사를 비판하는 글을 <주간 금요일>에 기고하기도 했다.
도쿄=신명직 통신원mjshin59@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