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기대 교차하는 팔레스타인 현지 르포… 방법론 둘러싼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지역갈등도
“검문소 통과에 걸리는 시간이 하루 8시간이나 되지만 지금이 더 나아요….”
“독립선언 연기? 뭐 새삼스러울 것이 있나요? 늘 그래왔잖아요….”
9월13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 예정일이 아무런 이슈도 없이 지나갔다. 지난 11일 독립 선언 예정일을 앞두고 가자지구를 들어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아라파트 진영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고, 독립 연기 결정에도 강한 분노를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절망감의 주름이 늘어가고 있었다.
보석금으로 자유를 사다
“그래도 이번에는 뭔가 이뤄지겠지”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독립된 국가의 자주민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꿈은 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특히 80여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고통은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략 110만명. 이 중 80만명을 넘는 이들이 1948년 전쟁 이후에 서안지구 등에서 고향을 등지고 쫓겨나거나 도망쳐나온 난민들이다. 이들은 가자에 들어온 이후 한번도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지역과 가자지구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 에레즈 검문소 안팎에는 이스라엘 경비병들의 검문을 기다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가자지구를 벗어나려면 4시간 안팎을, 돌아갈 때면 족히 2∼3시간 정도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 가자 주민들이 가자를 벗어나 서안 점령지구나 텔아비브 등 인근 이스라엘지역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당국의 노동허가를 받아야 한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3개월 유효한 노동허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월 200∼300달러가 들어간다. 그럼에도 이들은 적응이 되어 있는 듯 그리 지쳐 있지만은 않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20대 후반의 한 가자인 건축노동자는 “번거로운 것은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서안지구에서만 일을 해도 이곳 가자보다 3배는 더 받는다. 가자에서는 일자리도 없고 임금도 열악하다.” 그는 이전에 비하면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해 11월 안전도로(safe passage)가 가자와 서안지구 헤브론을 이어주기 전까지는 가자 주민들은 창살없는 감옥에 수용된 장기수들이었다. 지금은 제한은 있지만 그곳을 벗어날 수가 있다. 가자 주민들은 마치 보석금으로 자유를 사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에레즈 검문소는 이스라엘지역에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귀가하는 수천명의 사람들로 온통 북새통을 이루었다. 94년부터 베들레헴, 여리고, 가자지구 등 일부 이스라엘 점령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의 자치가 시작되었다. 하루 평균 2만명 안팎이 가자지구를 드나든다. 가자지구 12만여명의 주민들은 여전히 매일 까다로운 검문검색을 감수하며 이스라엘 땅을 밟는다. 자치지역에서는 일거리를 찾을 수도 없거니와 임금이 이스라엘의 3분의 1도 안 된다. 가자지구 노동자들의 출퇴근 문화는 색다르다. 에레즈 검문소 문이 열리는 시각은 아침 7시나 8시. 그런데도 일터로 가는 주민들은 대부분 밤이 깊은 시각인 새벽 3시∼4시에 에레즈 검문소에 도착한다. 검문소 통과에 4시간 정도씩 기다릴 것을 고려한 ‘생활의 지혜’이다. 이스라엘지역을 오가는 이들은 2만여명 안팎이고, 서안지구를 오가는 이들은 500명 안팎이다.
자치 이후 성장하는 가자지구
대다수의 일반 가자 주민들은 6년 전 자치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당한 발전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스라엘군이 물러나면서 범죄도 줄고 경제 상황도 호전되었다. 길이 닦이고, 새로운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다. 수입도 매년 짭짤해지고 있다.” 지역주민 후쌈의 말이다. 예전엔 가자지구에는 시간이 정지해 있다고들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 가자의 시계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재개발과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다. 인터넷 PC방(카페)도 2년 사이 10개 안팎으로 늘어났다. 웬만한 집안에는 위성 수신 안테나가 달려 있다. 지중해변을 끼고서 10개 안팎의 고급 호텔들이 마무리 공사에 한창이다. 또한 일본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단체 관광객들도 늘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가자지구의 환경은 천연의 관광도시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 선언이 연기된 이후에도 여전히 대다수의 가자지구 주민들은 아라파트의 협상 노선에 대해 동조하고 있었다. 어차피 완전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0% 안팎의 가자 주민들은 아라파트 노선에 반대를 표시하고 있다. “아라파트는 돈 되는 곳만 찾아다니지 동포들의 권익에는 관심이 없다. 평화협상 자체에 애초 아무 기대도 걸지 않고 있다.” 서안지구를 오가면서 막노동을 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아부 알리의 냉담한 반응이다.
일련의 평화 협정 과정이나 아라파트의 노선과 정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여론은 지역감정이 짙게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대체적으로 가자지구 사람들이 친아라파트 노선에 타협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사뭇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카미쓰(42)는 아라파트의 타협적 노선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독립 선언 예정일을 앞둔 지난 9월 초 비르제이트대학의 여론조사에서도 서안지구 사람 중 57%가 즉각적인 독립선포를 주장한 반면 가자지구는 절반을 조금 넘는 수치였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가자지구의 63% 정도가 희망적으로 보았다면 서안지구는 56% 정도로 조금 차이가 있다. 아라파트에 대한 지지율도 가자가 42.5%인 반면 서안지구는 36%에 그치고 있다.
서안지구 “자치정부에 짜증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무부 차관보(동아시아 국장) 왈리드 시암은 “단계와 절차를 따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세계의 지지를 받으면서 독립 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일련의 이스라엘과의 협상 과정은 하마스 진영 등 일부를 제외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독립 선언 연기 이후의 일정을 밝혔다.
서안지구 사람들, 특히 동예루살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찾아 서예루살렘을 오간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이스라엘 사람들과의 공존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정치이다. 서예루살렘의 작은 호텔에서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는 아부 와하(30)은 잘라 말한다. “정의에 바탕하지 않은 평화와 공존은 불가능하다. 그 정의는 빼앗아간 땅을 돌려주는 것이다. 정의없는 평화는 말잔치일 뿐이다. 평화를 원하기에,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싶다.” 아부 와하의 말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딘 평화의 길보다 헤즈볼라처럼 힘으로 잃어버린 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치정부가 들어선 지 6년이 지났지만 가자지구 사람들과는 달리 오히려 서안지구 사람들은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악화되었다고 말한다. 동예루살렘 거주자 파투하 테르야키(34)는 “자치정부가 들어선 이후 있지도 않았던 노동 허가를 받아야 하고, 적잖은 세금이 부과된다”고 불평했다. 이스라엘지역에서의 노동허가를 받는 데 3개월 기준으로 40여만원이 들어가는데 이것은 자치정부 이전에는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물가는 오르는데 수입의 증가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누군들 전쟁을 원하겠는가? 그렇지만 말로 안 된다면 어찌할 수 있는가. 어떻게 유대인과 말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말의 성찬이 있었지만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또 시간만 끌어야 하는가?” 동예루살렘 주민 하팀(31)의 반문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지역적 의견차와 독립 국가 실현 방법론상의 차이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이후 해방 정국의 혼란상을 예견케 한다. 이념적 차이와 지역 감정이 돌출될 가능성이 현실화된다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향배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자·서안지구=글·사진 김동문 통신원yahiya@hanimail.com

(사진/가자지구 에레즈 검문소 앞에서 서안지구에서 가자지구로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지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잇는 길을 '안전로'라고 부른다)
“그래도 이번에는 뭔가 이뤄지겠지”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독립된 국가의 자주민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꿈은 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특히 80여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고통은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략 110만명. 이 중 80만명을 넘는 이들이 1948년 전쟁 이후에 서안지구 등에서 고향을 등지고 쫓겨나거나 도망쳐나온 난민들이다. 이들은 가자에 들어온 이후 한번도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지역과 가자지구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 에레즈 검문소 안팎에는 이스라엘 경비병들의 검문을 기다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가자지구를 벗어나려면 4시간 안팎을, 돌아갈 때면 족히 2∼3시간 정도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 가자 주민들이 가자를 벗어나 서안 점령지구나 텔아비브 등 인근 이스라엘지역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당국의 노동허가를 받아야 한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3개월 유효한 노동허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월 200∼300달러가 들어간다. 그럼에도 이들은 적응이 되어 있는 듯 그리 지쳐 있지만은 않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20대 후반의 한 가자인 건축노동자는 “번거로운 것은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서안지구에서만 일을 해도 이곳 가자보다 3배는 더 받는다. 가자에서는 일자리도 없고 임금도 열악하다.” 그는 이전에 비하면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해 11월 안전도로(safe passage)가 가자와 서안지구 헤브론을 이어주기 전까지는 가자 주민들은 창살없는 감옥에 수용된 장기수들이었다. 지금은 제한은 있지만 그곳을 벗어날 수가 있다. 가자 주민들은 마치 보석금으로 자유를 사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사진/개축 공사중인 1급 호텔 앞에서 팔레스타인 해안경비대원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가지지구에 있는 자빌리야 남민촌의 아이들은 생활이 어려워 제대로 된 신발조차 신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그러나 승리를 표시하는 해맑은 얼굴들에는 팔레스타인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진/자치 이후 가자지구의 경제상황은 점차 호전되고 있다.가자지구 자빌리야 남민촌 외곽도로를 달리고 있는 낡은 자동차와 나귀수레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