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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탈리아, 해도 너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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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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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월드컵 - 이탈리아

언론의 왜곡보도 사그라지지 않아… 한국인에게 침 뱉거나 욕설 퍼붓는 이탈리아인들

사진/ 이탈리아의 패배에 경악하는 이탈리아인들. 시간이 지나도 이들의 한국에 대한 악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GAMMA)
말 많던 월드컵, 축구 강국들의 잇단 탈락과 맞물려 모처럼 물만난 고기처럼 승승장구하던 한국팀에게 시선이 모아진 것은 당연하다. 다크호스에 대한 경외감이든, 무언가 부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눈초리든 한국인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놀라웠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낸 이탈리아의 한국인에게는 더욱 잊지 못할 한달이었다.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연일 한국을 비방하는 언론과 모든 보도를 여과 없이 믿는 이탈리아인들 때문에 큰 소리로 응원할 수도, 이겼다고 자랑할 수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해코지를 염려해 이탈리아전이 끝난 뒤 며칠 동안 외출을 자제하기도 했다.

선수 병역 면제와 대통령 아들 석방?


2002 한·일 월드컵 최고의 화두는 역시 이탈리아의 끈질긴 판정시비일 거다. 불안한 조짐은 포르투갈과의 경기 때부터 보였다. 그 경기에서 승리한 팀과 한판 시합을 벌이게 될 운명 때문이었을까. 지난 두 경기와 다르게 역에서의 열띤 응원전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이탈리아전 때는 만약의 사태를 우려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자택 혹은 묵고 있는 숙소에서 경기를 봐야 했다.

이탈리아전이 있은 며칠 뒤 언짢은 경험담들을 털어놓는 유학생과 여행객을 만나는 일이 늘어났다. 스무명 남짓 용감한 한국인들이 역에서 경기를 지켜보다 음료수병을 집어던지며 욕설을 하는 이탈리아인들과 시비가 붙을 뻔했다는 뉴스, 한국 대사관에 계란 세례를 퍼부었다는 신문기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짜지 않고서는 저럴 수 없다 싶은 언론의 천편일률 한국 비방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피부로 느끼는 이탈리아인들의 분노는 어째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한국 유학생이 사는 집에 사과를 집어던지고, 버스 정류장에 선 한국인에게 침을 뱉고 사라지는 트럭, 창녀라고 욕을 해대는 할아버지와 카푸치노를 시킨 손님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커피잔을 도로 드는 웨이트리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한 예는 다양하기만 하다.

언론의 의도가 시민들을 자극하는 것이었다면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에 돈을 주었을 것이라는 억측이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더 이상 짐작이 아니다. 이미 그렇게 믿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은 “너희가 그렇게 돈이 많은 줄은 몰랐다”며 비아냥거린다. 스페인전으로 더욱 심화된 언론의 비방은 “한국의 승리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작정을 하고 ‘한국 씹기’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 월드컵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개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 부패한 나라라는 보도에 유학생들은 아예 TV 시청을 포기했다. 병역 면제를 받은 선수들에 대해 언급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구속된 아들 이야기를 끼워맞추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선수들 병역 면제와 맞바꾸어 구속된 대통령의 아들이 곧 석방될 것이라는 추측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는 건지. 현지 한국인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요즈음이다.

현지 외국인들도 우리 편은 아니더라

세계 여론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탈리아에 있는 외국인들이 우리 편이 아니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수업하는 어학원의 경우, 경기 결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수업 분위기에 겨우 한둘의 한국 학생들은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다. 언론의 힘은 가히 위대하다. 하나같이 한국을 욕하는 언론 보도에 이탈리아인은 물론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조차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다. “곧 잊어버릴 테니 기다려라. 한달이면 충분할 거다”라고 말하는 이탈리아인도 있기는 하지만 한번 불붙은 분노의 흔적은 꽤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힐 것 같다. 설사 시간이 지나 잠잠해진다 해도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받은 상처는 그리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로마=박혜윤/ 자유기고가 anywhereyo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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