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월드컵 - 네덜란드
히딩크 감독과 브뤼노 메추 감독의 고향을 가다… 한국과 세네갈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유럽인들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명성을 굳힌 한국의 히딩크 감독과 세네갈의 브뤼노 메추 감독은 몇 가지 점에서 유사하다. 히딩크 감독의 조국인 네덜란드는 월드컵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했고 브뤼노 메추 감독의 조국인 프랑스는 졸전을 거듭하며 16강에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또한 선수 시절에는 크게 명성을 떨치지 못했지만 감독으로서 대성한 대표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그들이 이끄는 팀은 초반부터 발군의 실력을 과시하며 걸출한 성과를 거두어 세계축구사에 한획을 그었다. 또한 이들의 향후 거취는 한국과 세네갈 국민은 물론 축구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팀이 결승진출을 놓고 독일과 일전을 벌이던 날 히딩크 감독의 고향인 파르세펠트에는 한국인들이 모여 마을 주민들과 응원전을 펼쳤고 세네갈의 경기가 있던 날 브뤼노 메추 감독의 고향인 프랑스의 당케르크에서는 세네갈인들이 모여 열띤 성원을 보냈다.
“짜증나는 독일 이겨줬으면…”
히딩크 감독의 고향인 파르세펠트는 독일과의 접경지역인 네덜란드 동부의 작은 마을이다. 기차가 두틴헴까지만 운행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가야 한다. 결승진출을 놓고 독일과 일전을 펼치던 6월25일 한국인 150여명이 모여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국팀의 승리를 열렬히 응원했다. 같은 시각 히딩크 감독의 형인 르네 히딩크가 자주 찾는 두틴헴의 더 카르타우어 카페도 문에 태극기를 걸어놓고 한국팀을 응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한 이후 계속된 네덜란드와 독일 간의 해묵은 감정 때문인지 특히 독일과의 경기에서는 한국팀의 승리를 기원했다.
발행 부수 41만부인 중도성향의 신문인 <다흐블라트>는 스포츠란에 “히딩크 파이팅”이란 응원구호를 한글로 실었고 한국과 스페인과의 8강 경기는 무려 270만명의 네덜란드인들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국팀이 경기할 때마다 <더 텔레흐라프> <다흐블라트> <폴크스크란트> 등 주요 일간지들은 경기결과를 상세하게 다루어 네덜란드인들이 한국팀에 거는 기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축구전문 주간지인 <풋발 인테르나치오날>은 26일 발행된 26호에서 히딩크 감독을 표지인물로 싣고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을 열광케 하다”라는 표제 아래 월드컵 열기와 히딩크 신드롬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주한 네덜란드인들로 구성된 하멜클럽(Hamel Club)의 활동상,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한 히딩크 감독의 위상,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에서 한국축구의 성공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의 색이자 일상의 패션으로 자리매김된 붉은악마의 빨간색 티셔츠 등 월드컵이 빚어낸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한국 언론들은 히딩크 감독을 마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의 환생처럼 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히딩크 감독도 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통해 많은 한국민들이 행복과 희열감에 젖어들 수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고 연습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자세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나이 등 사회적 위계질서의 전형적 폐단들이 축구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상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가감 없이 소개했다. 축구 지도자로서 체험한 문화적 차이와 극복의 문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히딩크 감독이 이번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에인트호벤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하기도 했다.
의기소침한 프랑스, 세네갈에 갈채
<엘세비르>란 주간지도 히딩크 감독을 “권위 있는 보통사람”(gewone man met gezag)으로 소개하며 표지인물로 비중 있게 다루었다. 또 지식인층이 애독하는 일간지 <폴크스크란트>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영웅으로 부상한 히딩크 감독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인들에게도 영웅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파급효과가 지구촌 구석구석에 미치는 월드컵을 통하여 네덜란드의 국가 이미지를 극대화하였고 한국에 진출한 네덜란드계 기업들이 히딩크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두틴헴을 떠나 아른헴, 네이메헌, 틸부르크를 거쳐 앤트워프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만난 엘스라는 여학생에게 “이탈리아와 스페인과의 경기가 끝난 뒤 제기된 심판의 오심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이는 전형적인 딴죽걸기이며 유럽중심주의적 사고와 오만함이 표출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아시아·아프리카·남미 출신 심판들의 자질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인종적 차별과 편견이 월드컵이라는 스포츠 행사를 통해서 노정된 것으로 진단하기도 했다. 심판의 자질은 경기규칙의 엄정한 적용과 원활한 경기흐름을 주도하는 능력에서 찾아야지 피부색이나 국적으로 좋고 나쁨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견해다.
한편 세네갈은 월드컵 본선경기에 첫 출전해서 98월드컵, 유로컵,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제패한 ‘트리플 챔피언’ 프랑스를 침몰시켰다. 세네갈은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파죽지세로 8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하여 세네갈인들은 물론 아프리카인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테랑가의 사자들’로 알려진 세네갈의 국가대표팀을 이끈 브뤼노 메추 감독의 부친 장 메츠씨가 사는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당케르크에도 프랑스 거주 세네갈인들이 집결하여 응원전을 벌였다. ‘레블뢰’(프랑스팀의 별명)의 실망스런 경기결과에 의기소침해 있던 많은 프랑스인들도 세네갈팀에 전폭적인 성원을 보냈다. 공식 선수 명단에 포함된 23명의 선수 중 21명이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고 특히 주전으로 맹활약한 파프 부바 디오프, 엘 하지 디우프 선수는 프랑스 북부의 랑스팀에서 뛰고 있어 프랑스 북부의 많은 축구 애호인들은 세네갈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당케르크에 있는 ‘콜레쥐 데 듄’에서 브뤼노 메추 감독과 함께 공부한 샤틀랑은 브뤼노 메추가 성공한 것은 세네갈 사회에 훌륭하게 적응하고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 기량을 향상시킨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비록 4강 진출을 놓고 터키와의 경기에서 석패했지만 8강 진출이라는 눈부신 전과는 의외의 결과가 아니라 착실히 준비된 이변이었다고 분석했다.
월드컵 끝나고 우리의 몸값 올리기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에서의 경이적인 성공을 통해서 한국인들에게 민족적 정체성과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브뤼노 메추 감독도 아프리카인들이 패배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벤이나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팀으로, 브뤼노 메추 감독은 터키의 가지안텝팀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안정환의 몸값은 10배 이상 수직상승했고 세네갈팀의 엘 하지 디우프도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프랑스의 랑스팀을 떠나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뛸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도 들린다. 월드컵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큰 물’에서 활약하게 될 우리의 영웅들을 상품화한 계약, 이전, 임대, 몸값, 주가 등 상품으로서의 축구를 나타내는 말들이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서 확인한 자신감과 축적된 활력을 일상의 공간으로 이적시킬 때다. 그래야 우리의 ‘몸값’도 오르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 축구공 대신 수학책을 사주라고 강조하는 <우간다 모니터>의 주필 찰스 오냥고 오보의 논지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파르세펠트·당케르크=글·사진 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사진/ 히딩크 감독을 표지인물로 다룬 축구전문 주간지 <풋발 인테르나치오날>. 표제는 "히딩크 감독이 한국을 열광케 하다"이다.

사진/ 히딩크의 고향마을 인근 도시인 두틴헴 풍경. 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

진/ 두틴헴 시가지. 고즈넉한 시가지는 전형적인 네덜란드 소도시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