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월드컵 - 필리핀
“월드컵은 어디서 볼 수 있지?” 어찌된 영문인지 케이블방송사 사정으로 실황중계가 취소되면서 우리는 스페인, 이탈리아전의 승전보를 인터넷과 전화로 접해야 했다. 국제전화선을 통해서 형님네 “아파트 지붕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사실 나는 한국팀의 승리만큼이나 붉은악마들의 축제를 즐기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비싼 국제전화에 대고 “지금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어?”, “그 아파트는 조용해?”라고 물었다.
독일전을 보기 위해 시내 카페 ‘체’를 찾았다. 체 게바라의 사진이 가득한 카페 체는 필리핀인들뿐만 아니라 유럽인들, 남미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저녁 노을이 지면서 카페 ‘체’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각종 인종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국이 0 대 1 또는 1 대 2로 질 거라는 필리핀 사람들, 그래도 한국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말은 인사말처럼 꼭 한다.
국제노동기구에서 근무하는 다이얀(34)은 처음부터 독일을 응원했다. 독일팀의 공격이 점차 거세지면서 그의 목소리도 한 옥타브 올라간다. 후반전에 안정환 선수가 뒤에서 독일선수에게 엉덩이를 차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런, 누구야?” 나의 신경질적인 반응과 다르게 그동안 실컷 독일을 응원했던 다이얀이 하는 말, “안종하안, 잘생겼다.” 화면 가득히 보이는 안정환 얼굴에 잠시 매료된 듯한 표정까지 보인다. 사람은 잘생기고 볼 일이다. 독일팀의 골이 터지자 한국인들이 차지한 테이블에서 탄식과 함께 아쉬운 맥주병이 기울고 있었다. 몇몇 독일 응원팀은 환성과 함께 한국인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붉은악마들의 눈물어린 얼굴은 잠시, 다시 힘찬 응원 모습이 보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필리핀 친구들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대단하다. 아시아를 대표해 4강에 오를 만한 팀이다.” 혹시 게임에 져서 붉은악마들이 정말 ‘악마처럼’ 되지 않을까 내심 불안했던 이곳 친구들은 한국인들이 졌으면서도 축제의 함성을 지르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다. 그날 밤, 게임은 끝났지만 사람들의 축제는 계속되었다.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hotmail.com

사진/ 카페 ‘체’에서 한국-독일전을 관람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나효우)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