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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예멘, 남을 위해 피 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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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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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 빌미로 부족 탄압에 앞장서… 미 해병대와 CIA 깊숙이 개입

사진/ 마리브 지역을 방문한 한 일본인 방문자에게 소총 사격을 권하고 있는 예멘의 사복군인들.
변신은 무죄라고 했는가. 예멘은 이른바 ‘깡패국가’, 미국이 테러와의 전면전을 시작한 이후 줄곧 다음 타깃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의 대 테러전쟁 동맹국가의 반열에 섰다. 그 변신과정은 숨막히는 것이었다. “협력자로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많은 중요한 정보들과 새 실마리들을 얻었다”, “살레 대통령은 마리브 등지에서 시행된 대 테러작전에서 훌륭한 정치적 지도력과 비전을 보여줬다” 미 국무부는 예멘을 입이 닳도록 칭찬한다. 예멘의 변신을 느끼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는 마리브다. 그곳엔 예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담겨 있다.

총성이 울리는 시바 여왕의 유적지

고대 솔로몬 왕과의 스캔들의 주인공 시바 여왕 빌키스의 유적지가 있는 마리브 지방은 예멘 최고의 유적지다. 그러나 마리브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돌아가는 힘들고 고단한 여정이었다. 게다가 수많은 검문소와 군사통제선을 지나가야만 했다. 마리브 같은 특수 지역을 가려면 사전에 관광경찰 당국으로부터 여행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담당 경찰은 “마리브는 특별히 민감한 지역”이라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멘의 곳곳은 지방 부족들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아직도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있을 정도다.


마리브주는 부족의 힘이 가장 강한 곳으로 4개의 강력한 부족, 70여개 분파가 장악한 곳이다. 관광경찰은 여행허가증을 발급해주면서 납치사건이 자주 일어나던 곳이니 주의하라고 했다. 1990년 이후 이곳에서 100여명의 외국인이 납치됐다. 수도 사나를 떠나 마리브로 가는 길에는 대략 어림잡아 10여개가 더 되는 검문소가 이어졌고, 마리브주에 들어서는 검문소에서는 무장한 사복 군인들이 동승해야만 했다. 두명의 군인들은 마리브 지역 방문 기간 내내 동승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 충돌지역을 오갈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마리브 지역을 둘러싼 곳곳에는 탱크를 비롯한 중화기부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넓게 닦인 도로, 고대로부터 비옥한 경작지인 들판과 고대 댐, 그리고 시바 여왕의 유적지가 남아 있는 곳. 1984년 그곳에 기름이 발견되면서 마리브는 일약 예멘 최고의 부의 산실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마리브 주민들이 받는 떡고물은 작기만 했다. 그런 마리브에 지금 알카에다 소탕작전이 한창이다.

곳곳에 중무장한 정부군의 경계를 제외한다면 도시 자체는 여느 아랍의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은 전쟁터였다. 지난해 12월18일 희뿌연 먼지들 사이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탱크부대가 밀어닥쳤다. 공중은 헬리콥터의 굉음으로 뒤덮였다. 땅에는 미국의 군사고문관들에게 대 테러진압작전 훈련을 받은 예멘 특수부대원들이 쏘아대는 총성이 가득했다. 1994년 내전이 종결된 이후 정부군과 부족군과의 최대의 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알카에다 소탕작전은 미국과의 합동군사작전이었다. 이튿날에는 살레 대통령의 후계자로 알려진 그의 아들 아흐메드 알리 압둘라 살레 대령의 지휘를 받는 대통령 경호부대가 급파되었다. 작전지역은 마리브 지방과 인근 샤브와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예멘의 관영 일간지 <앗사우라>는 알카에다 조직원 색출을 위한 유혈작전의 성격을 아주 간결하게 정리했다.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예멘 스스로가 테러범 색출에 실패할 경우 외부(미국)의 개입을 초래하여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선이 예멘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살레 정권이 느낀 위기감도 이번 작전에 한몫을 했다. 노골적인 줄서기 강요에 항복하고 채찍보다는 당근을 선택한 것이다.

미, 군사고문단 파견하고 훈련소 설치

사진/ 날품을 팔기 위해 아침부터 대기 중인 예멘 젊은이들.
정부는 이 전투에서 3명의 여성과 9명의 어린이가 포함된 민간인 16명과 정부군 9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알카에다의 조직원 5명을 숨겨준 아비다 부족이 신병인도를 거절했기 때문에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이 같은 정부 발표를 믿지 않았고 사망자들이 알카에다와 연관됐다는 사실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예멘에서는 부족 세력이 중앙 정부를 위협하여 왔는데, 마리브 지역은 유난히 강한 반골 기질을 보여왔다. 주민들은 살레 대통령이 자신의 정권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여타 부족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공격했다고 주장한다. 알카에다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은 이제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와중에 반정부·반체제 세력들이 움직인다면 여지없이 알카에다 조직 연루 혐의를 뒤집어쓸 것이다.

사진/ 예멘의 실업률은 30% 안팎으로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AK 소총을 든 예멘 젊은이들. 통계에 따르면 예멘 안에는 5천만정이나 되는 총기류가 보급되어 있다.
선제공격 이후 예멘 정부군의 알카에다 소탕작전은 강도가 높아졌다. 미국은 미 해병대 병력과 미중앙정보국(CIA)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공동 실무부대 창설을 공식 요청했다. 예멘 정부의 수락 여부 등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향후 상황전개가 주목된다. 지난 1월21일, 예멘 주재 미국 대사관은 “미연방수사국(FBI)이 2000년 10월 예멘의 아덴 항에서 발생한 미국 함정 콜호 폭탄테러사건에 관한 새 실마리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다음 날인 1월22일 오후, 미국 대사가 일시 머물던 예멘 최북단지방 사다의 라바 호텔 인근에서 다이너마이트 몇개가 터지는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예멘 정부의 알카에다 조직원 색출과 이슬람 민병대 단속 작전은 강도높게 이어졌다. 지난 2월 초 예멘 정부는 알카에다 혐의자들에 대한 단속과정에서 구속된 외국인 이슬람권 유학생 115명을 추방했다. 혐의는 불법체류와 국익훼손이었다. 2월13일 저녁, 수도인 사나 교외 사나대학 인근에서 예멘 보안요원과 대치 중이던 예멘인 사미르 모하메드 아흐메드 알하다(25)가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알하다는 미군함 콜호 폭파사건에 연루된 알카에다 조직원으로 알려졌다. 3월 초 미국은 예멘에 해안경비용 함정 15척을 제공하고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해군훈련센터를 설치해 예멘군 2천명을 훈련시키기로 결정했다. 20∼30명의 한조가 되는 미 테러교육 전문요원들이 예멘을 수시로 찾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은 2월 말 미군 파병을 승인했다. 이어 3월15일 사나 주재 미대사관에 수류탄이 투척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예멘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마리브 작전 이후 지금까지 마리브 지방은 특수 보안지역이 되었다. 9·11테러 뒤 새로운 기지를 찾아 지구촌 곳곳으로 달려나온 미국에게, 더욱이 사우디 미군 기지들이 위협에 직면해 있는 미국에게 예멘은 더할 나위 없는 새로운 정착지가 되어주었다. 예멘 관측통들에 따르면 아라비아해의 예멘령 소코트라섬은 미국의 새로운 전진기지로 변모하고 있다. 이미 기지 건설을 위한 기간망 구축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심을 등지고 정권 안정 얻을까

예멘 정부의 ‘대리전’이 성공할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아랍 최빈국의 하나이며 산악과 사막이 태반인 까닭에 ‘작은 아프간’으로 불리는 예멘. 그곳에는 수천년의 부족전통을 이어오는 민병대들이 있다. 인구 1800만명에 AK47 소총 등 무기류가 5천만정 가까이 민간에 퍼져 있어 전 국민은 무장상태다. 무엇보다 아프간 전쟁에서 옛 소련군과 싸운 경험이 있는 민병대들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에 호의적이다. 예멘 남부 하드라마우트는 빈 라덴 조상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부족 민병대들이 친미노선에 선 예멘 정부군에 강력하게 저항할 경우 상당한 희생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살레 대통령이 미국과의 공조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간다면 정권 안정과 경제발전이라는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두려운 대상을 적이 아닌 동맹관계로 변모시키기 위해 민심을 등지고, 정권 안보와 경제부흥이라는 대박을 기대해야 하는 예멘의 현실은 아랍 세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마리브(예멘)=글·사진 김동문 통신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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