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수 배운 ‘독재자퇴치법’… 아직도 한국을 ‘미국 식민지’로 여기는 이들 많아
프라윗 로자나프룩(Pravit Rojanaphruk)
1967년 방콕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필리핀으로 이주했고 필리핀대학에서 지역개발학을 전공한 뒤, 1991년부터 방콕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신문 가운데 하나인 <더 네이션>에서 언론개혁과 노동운동 분야 전문기자로 뛰고 있다. 현재 일요일판의 편집책임을 맡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문제를 고발한 역작 <희망과 거짓말>을 출판하기도 했다.
지난 6월의 남북 정상회담은 타이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당장 통일이 되는 건 아니지만 서로 거리감을 좁힌 참 멋진 소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만남이 반세기 동안 질식상태에 빠져 있던 남북관계의 숨통을 트는 ‘산소’ 같은 것이 되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상회담 소식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이권과 연루된 미국이나 유럽의 언론들을 통해 전해졌고, 그들의 입장만 강조된 ‘외눈박이 뉴스’로 전락해버린 느낌도 없지 않았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그러면 타이 시민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통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재 타이사회는 교육받은 시민들의 각성에 힘입어 냉전기간 내내 ‘미국식 국제질서’라는 ‘미국식 독재’ 아래 눌려왔던 과거를 벗고 조금씩 미국의 ‘패권주의’에 눈떠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시민들은 1997년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아시아의 지역 협력과 상호지원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경제위기를 통해 타이 사람들은 금융시장이든 문화든 정치든 모든 면에서 미국의 총체적인 패권주의가 그동안 아시아를 지배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 셈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타이 정부의 외교정책은 지난 3년 동안 지역안보 문제에 사로잡혀 중국쪽으로 급격히 표류하고 있다. 중국은 과연 미국의 패권주의를 대신할 아시아의 동반자인가. 티베트를 강점해서 인권과 문화를 압살하고 있는 중국, 버마 군사정부를 지원해서 아시아의 민주화에 찬물을 끼얹은 중국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유보적인 상태다. 수하르토 정권이 섬 전체 인구의 30%를 학살하며 강점한 동티모르 침공을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던 사실과 중국 패권주의의 티베트 침공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그리고 최근까지도 의도적으로 이들을 외면해온 아시아, 우리도 ‘미국류’ 또는 ‘중국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국제외교의 미인 기준으로 자리잡은 ‘두개의 얼굴’, 그 이중성이 판을 치는 아시아, 떠오르는 중국과 여전히 군림하는 미국이 버틴 아시아의 역학구조 속에서 장차 통일한국은 타이를 비롯한 아시아지역에서도 순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적어도 아시아의 정신개발과 외교관계에서만큼은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건 한국이 모든 형태의 독재를 거부하며 민주화와 사회정의 획득을 위해 투쟁해온 빛나는 전통을 아시아지역에 투영해서 건설적인 국제관계의 본보기로 작용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동안 한국이 직·간접적으로 아시아의 노동운동과 민주화투쟁에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이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은 이제 자동차나 텔레비전 또는 컴퓨터를 팔아먹는 이상임을 한국인 스스로 깨닫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이제 아시아의 시민들은 한국으로부터 ‘독재자퇴치법’을 배웠듯이, 다시 한국인들이 통일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평화창조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은 아직까지 아시아 시민들 사이에 ‘투쟁’ 이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평균적인 타이 시민들의 인식에는 한국이 대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들만 기펴고 사는 나라라느니 또는 동성애자들을 박해하는 사회라느니 하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좋은 예로 타이에서는, 마시는 차와 차문화만 해도 한국은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상태다. 진부한 국제관계를 혁신할 가능성
만약 한국이 아시아의 일원으로 강한 믿음이 있다면, 아시아로 더욱 강하게 뻗어나와 아시아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 정도로 여기는 아시아인이 제법 많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시아가 한국에서 빛나는 투쟁을 배운 것처럼 한국도 타이와 필리핀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고, 이게 바로 한국의 통일과정과 함께 길을 갈 아시아의 바람이다. 통일한국의 성공적인 정착이 ‘이성’과 ‘연민’을 지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말이기도 하다. 남한과 북한 사이처럼, 아시아와 한국 사이에도. 따라서 이건 두개의 한국이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로 어떻게 뛰쳐나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그러면 타이 시민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통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재 타이사회는 교육받은 시민들의 각성에 힘입어 냉전기간 내내 ‘미국식 국제질서’라는 ‘미국식 독재’ 아래 눌려왔던 과거를 벗고 조금씩 미국의 ‘패권주의’에 눈떠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시민들은 1997년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아시아의 지역 협력과 상호지원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경제위기를 통해 타이 사람들은 금융시장이든 문화든 정치든 모든 면에서 미국의 총체적인 패권주의가 그동안 아시아를 지배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 셈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타이 정부의 외교정책은 지난 3년 동안 지역안보 문제에 사로잡혀 중국쪽으로 급격히 표류하고 있다. 중국은 과연 미국의 패권주의를 대신할 아시아의 동반자인가. 티베트를 강점해서 인권과 문화를 압살하고 있는 중국, 버마 군사정부를 지원해서 아시아의 민주화에 찬물을 끼얹은 중국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유보적인 상태다. 수하르토 정권이 섬 전체 인구의 30%를 학살하며 강점한 동티모르 침공을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던 사실과 중국 패권주의의 티베트 침공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그리고 최근까지도 의도적으로 이들을 외면해온 아시아, 우리도 ‘미국류’ 또는 ‘중국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국제외교의 미인 기준으로 자리잡은 ‘두개의 얼굴’, 그 이중성이 판을 치는 아시아, 떠오르는 중국과 여전히 군림하는 미국이 버틴 아시아의 역학구조 속에서 장차 통일한국은 타이를 비롯한 아시아지역에서도 순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적어도 아시아의 정신개발과 외교관계에서만큼은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건 한국이 모든 형태의 독재를 거부하며 민주화와 사회정의 획득을 위해 투쟁해온 빛나는 전통을 아시아지역에 투영해서 건설적인 국제관계의 본보기로 작용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동안 한국이 직·간접적으로 아시아의 노동운동과 민주화투쟁에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이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은 이제 자동차나 텔레비전 또는 컴퓨터를 팔아먹는 이상임을 한국인 스스로 깨닫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이제 아시아의 시민들은 한국으로부터 ‘독재자퇴치법’을 배웠듯이, 다시 한국인들이 통일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평화창조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은 아직까지 아시아 시민들 사이에 ‘투쟁’ 이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평균적인 타이 시민들의 인식에는 한국이 대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들만 기펴고 사는 나라라느니 또는 동성애자들을 박해하는 사회라느니 하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좋은 예로 타이에서는, 마시는 차와 차문화만 해도 한국은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상태다. 진부한 국제관계를 혁신할 가능성

(사진/“통일한국의 순기능을 기대한다.”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 포럼에서 만난 이정빈(오른쪽) 외교통상부 장관과 백남순 북한외무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