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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낙태권,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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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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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를 통해 낙태 합법화한 스위스… 유럽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낙태법 개정

사진/ 바캉스 시즌을 맞아 파리시청이 성에 관한 공익광고로 거리에 붙인광고판. 파리의 주요 명승지 이름과 다양한 색깔의 콘돔 그림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이선주)
“제가 낙태를 할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낙태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어요. 어쨌든 자기 보호와 안전 및 건강의 측면에서 그 이슈는 고려돼야 한다고 봐요. 결국엔 커플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 자신에게 맡겨야 하는 문제니까요.”

자이바(20·르아브르 대학생)는 ‘낙태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무난한 가정교육을 받은 대학생의 가장 일반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낙태를 한 적은 없지만, 낙태를 한 친구들을 고교시절부터 본 적 있어요. 게다가 남자친구가 있는 경우엔 거의 모두 피임을 해요”라고 자이바는 덧붙였다.

포르투갈·아일랜드 가장 강경한 입장


낙태는 여성의 인권과 결부되어 20세기 후반 내내 서구사회에서 치열하게 논의된 사회 이슈 중 하나다. 여성의 임신중절 수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서구사회의 가톨릭적 문화에 맞서면서 이를 합법화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메아리는 아직도 계속된다. ‘임신을 중단할 권리’와 ‘태어날 권리’가 법적으로 맞서면서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려는 싸움은 지난 6월 스위스에서 승부를 가리기도 했다.

지난 6월2일 그동안 의도적 임신중절을 법으로 금지했던 스위스가 낙태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72.2%의 찬성표를 얻었다. 임신 12주 내에 중절수술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새로운 ‘낙태법’은 1976년 이래 여성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오랜 투쟁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낙태권 완전 철폐를 요구한 반낙태협회의 요청은 투표결과 81.7%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스위스 사회는 임신과 출산이 궁극적으로 커플과 여성 개인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유럽연합 밖의 국가에서 낙태금지 정책을 아주 강경하게 실시하는 대표적인 유럽국가로 폴란드를 꼽을 수 있다. 폴란드는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다시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회복되면서 1993년부터 임신중절수술을 강경하게 금지하는 정책을 택했다. 90년 이전 해마다 10만명을 헤아리던 낙태 여성들의 수가 94년에는 782명, 99년에는 151명으로 집계되었으니, 불법 낙태가 성행하고 있음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다. 폴란드의 한 여성단체에 의하면 해마다 8만에서 20만건의 불법 낙태시술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부유층은 러시아를 비롯한 인근 국가들에서 낙태수술을 받으며, 그 외 서민들은 상상을 불허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연합 국가들 중에는 포르투갈이 아일랜드와 더불어 낙태를 가장 강경하게 금지하고, 나아가 실형까지 내린다. 지난 1월에는 낙태를 도와준 조산원을 8년형에 처하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1861년 이래 산모의 생명을 위협하는 최악의 경우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20여년 동안 논란이 계속됐는데, 지난 3월6일에도 이와 관련해 국민투표를 했다. 아일랜드의 국민투표는 스위스와 달리 “임신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에게 낙태를 허용해야 하는가”를 묻는 투표로, 가톨릭 세력을 중심으로 기존의 반낙태법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시 말해 낙태권 개선이 아닌, 이미 실시되고 있는 반낙태 정책의 내용을 더욱 확실히 하려는 의도다. 사후피임약 복용과 외국에서의 낙태수술을 허용하는 아일랜드에서는 자국에서는 금지된 낙태수술을 받기 위해 지난해 이웃나라 영국에서 낙태수술을 받은 사람이 7천명 이상을 헤아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68세대가 낙태 합법화 앞당겨

사진/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낙태수술을 받는 연령대도 점점 내려가고 있다. 낙태는 결국 여성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SYGMA)
스페인은 낙태를 불법으로 하고 있으나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정책을 택하고 있다. 임신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태아의 비정상이나 강간, 모체의 건강적 치명상의 경우에 한정해 정밀진단서를 제출하면 임신 22주까지 낙태가 가능하다.

독일에서도 스페인처럼 임신중절은 불법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낙태법에 대한 논의가 신중하게 이루어진 때는 동서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지던 199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통일 이후에도 낙태 건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해마다 낙태 수술자들은 13만여명을 헤아린다. 그럼에도 법을 개선하지 않는 까닭은 슈토이버를 비롯한 독일 정당의 대표당수들이 낙태법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계속 불법이지만 임신 12주 내에 그 문제와 관련한 심의회의 심사 등을 거쳐서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융통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독일인들이 네덜란드에서 낙태수술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서류가 덜 복잡하고 중절수술이 가능한 기한이 최고 24주까지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와 나란히 낙태가 가능한 임신기한을 최고 24주까지로 하는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 낙태가능 기한이 가장 긴 나라들이고 그 다음이 스웨덴으로, 기한을 18주까지로 한다. 그 외 프랑스를 비롯해 벨기에, 덴마크, 필란드, 룩셈부르크 등 대부분의 나라는 12주까지로 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낙태수술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으로 여성인구 1천명당 18.3명이며, 영국이 15.7명, 덴마크가 15.5명으로 나타난다.

각 나라의 문화전통에 크게 의존하는 낙태법은 산모의 치명적인 건강상태와 강간 등 피치 못할 상황에서 허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좀더 완화된 나라들에서는 산모가 원하면 합법화된 기한 내에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는 1920년부터 법에 의해 낙태권이 금지되었으나 68세대들이 주축이 되어 “낙태권을 합법화하고 피임약 복용을 자율화하라”는 대대적인 시위가 잇따라 1975년 1월 이른바 ‘베이(Veil)법’이 통과되면서 피임 및 임신중절이 가능하게 되었다. 25년이 흐른 2000년 한해 동안 합법적으로 낙태를 한 프랑스 여성은 총 22만명으로, 여성인구 1천명당 12명꼴로 나타난다.

지금 프랑스는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낙태권이 있고, 낙태 결정은 동반자의 동의나 의사의 동의 없이 전적으로 여성 혼자서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8살 이하의 미성년자는 굳이 부모의 동의 없이도 수술시 일종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성인을 동반하도록 하고 있다. 수술비와 관련해서는 보험에 의해 환불이 가능하고, 보험혜택이 없는 미성년자의 경우는 국가에서 부담한다.

미성년자 낙태율 증가

피임 및 낙태권이 합법화된 지난 30여년 동안 특기할 만한 현상은 물론 합법적인 낙태가 늘어났다는 것이지만, 그 외에도 미성년자의 낙태율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94년 1만6천여명을 헤아리던 미성년자 낙태수술자 수는 1997년 2만명으로 늘어났다. 임신한 미성년자의 80%가 낙태수술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성이 자유화되면서 임신중절을 받는 나이대는 점점 낮아진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성의 자유냐 성의 문란이냐는 논란도 있지만, 성의 자유는 성의 평등과 함께 조스팽 전 총리가 크게 외친 구호 중의 하나였다. 이런 취지로 2001년에 통과된 법안은 낙태시술 가능기한을 기존의 10주에서 12주로 늘렸다. 그런가 하면 학교에서의 성교육도 강화해 기존에는 생물시간을 통해 1년에 2시간 정도 실시하던 성강의를 다양한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이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전달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 사후피임약을 학교에 비치하는 문제도 거론되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바캉스와 사랑과 성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계절. 올 여름에 파리시청이 성에 관한 공익광고로 거리에 붙인 광고판엔 콘돔이 풍선처럼 떠 있다. 여름이면 거리마다 나붙는 콘돔 공익광고와 2유로 동전으로 어디서나 쉽사리 구입할 수 있는 콘돔 자판기가 크게 시선을 끌지 못하는 것도 성의 자유 탓은 아닐까?

파리=이선주 통신원 oseyo@libertysurf.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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