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철조망 포옹’을 넘어서

326
등록 : 2000-09-20 00:00 수정 :

크게 작게

남북 이산가족상봉을 보며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왜 눈물을 흘렸나

림 핫다드(Reem Haddad)

1969년 레바논에서 태어난 핫다드는 메릴랜드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현지의 가장 유력한 일간신문인 <데일리 스타>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특히 레바논 내전과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를 고발하는 그의 현장발 기사들은 레바논 현지언론뿐만 아니라 영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언론들이 게재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특히 분쟁의 지속이 모든 흥밋거리를 가둬버린 레바논에서는 국제사회의 정치적 전망 가운데 한반도 통일문제의 영향력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마저 결코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질의받은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적은 없지만 아시아의 일원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한다. 좀더 강한 한국은 레바논과 관계 속에서 모든 교섭을 좀더 강화시킬 것이다.” 이 정부당국자는 16년 내전 동안 완전히 파괴된 베이루트의 중심가에 최초로 투자한 국가가 한국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부동산 회사는 레바논 내전이 끝나자마자 즉시 베이루트 재건사업에 뛰어들었다. 이건 베이루트의 재건을 통해 해외투자가들이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었다.


52년 동안 만나지 못한 그들

레바논은 현재 피난민 문제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빈곤화, 고실업과 같은 취약한 경제상황 아래 내전의 결과를 해소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레바논 전역에 흩어져 있는 35만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난민문제와, 지난 22년 동안 레바논 남부지역을 강제 점령했던 이스라엘군이 5개월 전 철수한 뒤 지뢰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떠올라 있다. “이스라엘군 철수와 다가올 선거 그리고 어려운 경제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현안들이 얽혀 있는 레바논사회가 국제적 사안을 생각할 만한 시간이나 힘은 없어 보인다.” 한국대사관 권희석 1등서기관의 말이다.

베이루트의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심지어 지난 6월의 남북정상회담 뉴스마저 겨우 몇몇 신문만이 다루었을 정도라고 한다. 이건 비록 지리적 근접성을 강조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레바논 시민들이 유럽 사안에 대해서는 주의깊게 경청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남북통일의 의미? 그건 확실하게 한국 제품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억척같이 일하는 한국 사람들이 만약 통일이 된다면 그건 2배의 증산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한국산 무선전화기를 파는 샤빕 아싸드의 말이다. “남북의 통일이 내 사업과는 실질적으로 무관하다.” 삼성 가전제품을 파는 바셈 카샵처럼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업과 남북의 통일을 단순히 비교해보는 수준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장면만은 레바논 시민들뿐만 아니라, 특히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유럽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의 땅에 정착한 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창설한 1948년부터 보금자리를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신세로 주변의 아랍국가들을 떠돌며 52년 동안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모함메드 아싸디는 눈물로 남북 이산가족상봉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달 전 남부 레바논의 시돈에 있는 아인 알 힐웨난민촌에서 두살 때 헤어진 누나 시함 아싸디를 52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던 감회가 되살아난 탓이다. 다섯달 전 이스라엘군이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하자 즉각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52년간 헤어졌던 가족들을 찾아 몰려들었다. 그러나 52년의 세월은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이들에게는 철조망 사이의 포옹만 허락하는 답답한 현실이 가로놓여 있었다.

중동문제 해결도 가족의 만남으로부터

(사진/철조망 사이로 레바논-이스라엘 국경의 팔레스타인 이산가족들)
그리고 레바논-이스라엘 국경에서 팔레스타인 이산가족의 철조망 상봉이 이뤄진 며칠 뒤, 이스라엘의 바락 총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국경 접근마저 금지시켜 버렸다. 그래서 아싸디에게는 남북한 이산가족상봉이 더 자신의 일처럼 여겨졌다. “누나를 다시 보고 싶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고 싶다!”

멀리 떨어진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울고 있듯이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바로 남북의 통일이 이산가족상봉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듯이 이스라엘이 낀 중동문제의 해결도 가족의 만남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류 차원의 대원칙이 21세기의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