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정부가 없는 리비아 데르나에 지금 필요한 건 기적

폭풍으로 1만1300여명 숨진 데르나…12년째 중앙정부 없는 리비아 상황이 재난 키웠다

1482
등록 : 2023-09-21 21:41 수정 : 2023-09-23 04:30

크게 작게

2023년 9월18일 리비아 동비 데르나의 알사하바 사원에서 성난 주민들이 홍수 피해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기후변화의 시대, 물난리는 일상사다. 더러 아까운 목숨이 스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수천, 수만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경우는 지독히 드물다. ‘이게 나라냐’, 항의할 대상조차 없으니 더욱 섧다. 원유 매장량 세계 9위, 어렵지 않게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는 나라라면 더 할 말이 없어진다. 그 참혹한 풍경을 긴 세월 국제사회가 함께 만들어냈다. 섣부른 개입과 지독한 무관심이 그예 참극을 불렀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허망하게 무너진 댐에서 폭탄처럼 터진 물줄기

2023년 9월4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폭풍 ‘다니엘’이 지중해 중북부 연안을 강타했다. 그리스와 튀르키예, 불가리아 등 3개국이 폭풍의 직접 영향권에 들면서 피해가 컸다. 특히 그리스 중부 지역에선 연평균 강수량의 두 배에 가까운 600~800㎜의 폭우가 하루 만에 쏟아졌다. ‘성서적 재난’이란 표현까지 등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스 15명을 포함해 3개국에서 모두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재난 대응에 소극적이란 비판 속에 2019년 7월 집권 이후 최악의 정치적 위기로 내몰렸다. 이게 나라다.

2023년 9월10일 세력이 약해진 폭풍 다니엘이 리비아 북동부로 방향을 틀었다. 해발 600m 산악지역인 동부 알바이다에선 9월10일 오전 8시부터 24시간 동안 무려 414.1㎜의 폭우가 쏟아졌다. 알바이다의 연평균 강수량은 545㎜다. 알바이다에서 동쪽으로 약 120㎞ 떨어진 해안도시 데르나도 폭풍 영향권에 들었다. 시속 70~80㎞의 강풍 속에 150~240㎜에 이르는 폭우가 내렸다. 장기간 유지·보수를 하지 못한 낡은 댐 2곳이 버텨내지 못했다. 차례로 허망하게 무너져내린 댐에서 폭탄처럼 터져나온 물줄기가 순식간에 인구 약 9만 명의 도시를 덮쳤다. 아비규환의 시작이었다.

폭풍 데니얼이 몰고온 폭우로 불어난 물을 이기지 못한 댐이 붕괴하면서 홍수가 휩쓴 리비아 동부 데르나 시내가 폐허로 변했다. REUTERS 연합뉴스

도시의 4분의 1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망자 통계조차 부질없다. 적어도 1만1300명이 목숨을 잃었고, 1만 명 이상이 실종됐다는 추정치가 나왔다. 사고 뒤 제대로 된 구조작업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희생자가 2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앞서 2022년 6~10월 파키스탄 신드·발로치스탄·펀잡 등지에서 잇달아 발생한 사상 최악의 홍수로 인한 전체 사망자는 1739명이었다.

세계기상기구(WMO) 쪽 설명을 종합하면, 리비아 기상당국은 재난 발생 72시간 전 폭풍 영향권에 들 수 있는 지역에 홍수 대비 태세를 갖추라고 경고했다. 기상당국의 경고를 귀담아듣고 이행할 정부기관은 없었다. 재난 발생 직후 리비아 동부 지역을 관할하는 정부는 사흘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그뿐이었다. 구조와 구호는 더디기 그지없다. 식수원 오염으로 인한 수인성 전염병 창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폐허가 된 도시를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홍수로 유실된 지뢰가 도처에 깔려 있다. 2019년까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데르나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9월18일 홍수를 버텨낸 시내 알사하바 사원 앞에 모여 분노를 토해내며, 국제기구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대체 리비아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카다피 죽고 국가과도위원회 구성됐지만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2011년 벽두부터 이집트에서 꽃을 피웠다. 30년에 다가서던 무하마드 호스니 무바라크의 군사독재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민주화 열기는 쉽게 주변 국가로 번져갔다. 196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왕 중의 왕’을 자처하며 42년여 철권을 휘두른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다음 차례였다.

2011년 2월15일 리비아 제2대 도시 벵가지에서 첫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독재자의 하수인들은 평화로운 시위대를 겨냥해 총질했다. 정부군의 살육에 맞서 반정부 시위대는 무장하기 시작했다. 닷새 뒤인 2월20일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수도 트리폴리로 옮겨붙었다. 정부군과 반정부 무장세력 간 일진일퇴의 공방이 펼쳐졌다.

그사이 반정부 진영이 장악한 벵가지에선 과도정부가 구성됐다. 튀니지와 이집트 사태는 물론 내전으로 빨려드는 시리아에 대해서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던 국제사회는 리비아 사태에 이상하리만치 발빠르게 개입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해 2월26일 △리비아에 무기수출 금지 △카다피와 정권 핵심 인사의 국외여행 금지, 국외자산 동결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즉각 조사 등을 뼈대로 하는 제재 결의(19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럼에도 정부군은 탱크와 전투기까지 동원해 반정부 진영에 맹폭을 퍼부었다. ‘저항의 거점’이 된 벵가지가 위태로워졌다. 안보리가 다시 나섰다. 같은 해 3월17일 “리비아에서 (정부군의) 공격 위협에 처한 민간인과 민간인 거주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란 내용을 담은 결의 1973호가 채택됐다. 민간인 보호를 위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게 핵심이었다.

이틀 뒤인 3월19일 미국·영국·프랑스 주도하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결의를 근거로 리비아 정부군을 겨냥한 해상·공중 폭격을 개시했다. 리비아 영공 전체는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됐다. 나토군은 같은 달 23일 “리비아 공군의 전투능력을 궤멸하고, 영공을 확실히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벼랑 끝으로 몰렸던 반정부 무장세력이 기력을 되찾았다. 양쪽의 치열한 교전이 한참 더 이어졌다. 그해 8월 반정부 진영이 나토군의 힘에 기대 총공세에 나섰다. 수도 트리폴리가 함락됐다. 독재자는 도망쳤다.

그해 9월16일 유엔은 반정부 세력이 구성한 국가과도위원회(NTC)를 ‘리비아를 대표하는 법적 기구’로 인정했다. 독재자의 고향인 동부 시르테를 중심으로 최후의 전투가 불을 뿜었다. 그해 10월20일 반정부군이 함락한 시르테에서 붙잡힌 독재자는 뭇매를 당한 끝에 총살됐다. 사흘 뒤인 10월23일 NTC는 내전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그때까지 7개월여, 나토군은 모두 5900여 곳의 ‘군사 목표물’을 겨냥해 9700여 차례의 공습을 퍼부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데르나 점령

외부의 기대와 달리 리비아는 쉽게 국가 기능을 회복하지 못했다. 벵가지에서 첫 총성이 울린 이후 시르테 함락까지 줄잡아 3만 명이 목숨을 잃고, 5만 명이 다쳤다. 정부군에 맞서 싸웠던 온갖 무장세력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돌리기 시작했다. 2012년 7월7일 카다피 없는 리비아에서 첫 의회선거가 치러졌다. 그해 8월25일 NTC는 새로 구성된 제헌의회(GNC) 쪽에 권력을 공식 이양했다. 제헌의회에는 새 헌법 제정 및 개헌투표와 이행기를 이끌어갈 과도정부 구성 권한이 부여됐다.

과도정부 구성은 쉽지 않았다. 곳곳에서 무장세력 간 유혈충돌이 줄을 이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도 유입됐다. 2012년 9월11일 극단주의 무장단체 ‘안사르 알샤리아’ 쪽이 벵가지 주재 미국영사관을 급습해 현장에 있던 크리스토퍼 스티븐슨 대사 등 미국인 4명이 목숨을 잃었다. 과도정부 총리 지명자가 교체됐다. 혼란은 이어졌다.

과도정부 총리 교체기였던 2014년 5월 리비아에서 두 번째 내전이 불을 뿜었다. 이슬람국가(IS) 등 외부에서 유입된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데르나(2014년)와 시르테(2015년) 등지를 차례로 점령했다. 그해 6월, 의회선거는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이어지며 흉흉하게 치러졌다. 과도의회는 새 의회에 권력을 넘기지 않고 버텼다. 수도 트리폴리를 무장한 제헌의회 지지파가 장악했다. 새 의회 쪽은 동부 투브루크로 도망길에 나섰다. 양쪽 간 갈등 해소를 위해 몇 차례 교섭했지만, 이때부터 리비아는 서부와 동부로 갈렸다. 카다피 정권 몰락 이후 12년째 리비아엔 전국을 아우르는 중앙정부가 없다.

생전에 ’왕 중의 왕’을 자처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2009년 2월10일 수도 트리폴리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지난 2011년 그가 권좌에서 축출된 이후 지금껏 리비아에는 전국을 아우르는 중앙정부가 없다. AP 연합뉴스

유엔 안보리는 2023년 6월2일 리비아 인근 공해상에서 무기 금수조처 위반 혐의가 있는 선박을 차단·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 2292호(2016년 6월)를 1년 연장하는 결의(2684호)를 채택했다. 2011년 2월 첫 결의를 포함해 지난 11년여 안보리가 리비아와 관련해 채택한 결의는 모두 54건이다. 발빠른 대응으로 카다피 정권 몰락을 앞당겼던 안보리가 데르나의 참극 관련 회의를 소집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리비아는 고립됐다.

데르나 참극엔 침묵하는 안보리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신의 은총으로 새 삶의 기회를 얻었다.” 데르나 주민 이브라힘 압둘사미아(36)는 9월18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그의 가족이 살던 5층짜리 건물은 홍수로 불어난 물에 휩쓸렸다. 그의 아내 파티마 알하디(28)는 홍수 발생 직후 어린 딸의 손을 부여잡았지만, 세찬 물줄기가 모녀를 갈라놓았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갇혀 나흘을 버틴 부부를 이웃나라 몰타에서 온 구조대가 구해냈다.

부부가 천행으로 구조될 무렵, 다른 구조팀이 인근 무너진 건물 잔해를 뚫고 12살 소녀를 구해 리비아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 쪽에 넘겼다. 실종됐던 부부의 딸이다. 압둘사미아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가족이 살아 있음에 가슴 벅차게 감사한다. 새 삶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금 데르나에 필요한 건 기적이다.

정인환 inhw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