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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윤 정부…노골적 중국 적대 동맹이 어찌 ‘기회’ 되나

외교안보의 ‘외주화’ ‘도구화’ 사이에서 길을 잃은 건 국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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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3-08-25 16:35 수정 : 2023-08-2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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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왼쪽)이 2023년 8월18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REUTERS

2023년 8월18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 결과는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대외적으론 ‘가치’를 앞세워 모든 것을 동맹에 맞추는, 아니 동맹에 전적으로 기대는 외교안보의 외주화 경향이 도드라진다. 대내적으론 윤 대통령이 이른바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한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공세 수단으로 동원된 외교안보의 도구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외주화’와 ‘도구화’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은 국익이다.

3국 현재와 미래에 채우는 자물쇠 ‘코자스’

이번 정상회의는 여러모로 이례적 측면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3국 정상은 그간 여러 차례 함께 만났지만, 모두 국제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회담이었다. 3자 회동만을 위해 3국 정상이 따로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뒤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연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 정상이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한 것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정상회의를 마친 뒤 공식 문건이 3건이나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회담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에는 ‘캠프 데이비드 정신’(이하 정신)이란 제목을 붙였다. 공동성명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 3국 협력의 큰 틀을 밝혀 적은 ‘캠프 데이비드 원칙’(이하 원칙)이란 문건도 있다. 이어 정신과 원칙의 이행을 다짐하는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이하 공약)이란 문건도 따로 내놨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를 공식화·제도화하려는 미국 쪽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정상회의에 앞서 미국 외교안보 당국자들도 이런 뜻을 가감 없이 밝힌 바 있다.

“(3국 정상회의에선) 대단히 야심 찬 일련의 구상을 통해 한·미·일 3국 협력의 현재와 미래에 자물쇠를 채우게 될 것이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8월16일 브루 킹스 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 “3국 정상회의는 오랜 기간 준비한 결과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같은 토론회에서 미라 랍-후퍼 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과거사와 영토(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율해 “3국 협력을 보다 제도화한, 복원력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약’은 “이 협의에 대한 공약은 국제법 또는 국내법 아래서 권리 또는 의무를 창설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는다”고 못박았지만, 3국 협력을 쿼드(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 4자 협의체)와 오커스(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3자 협의체)에 준하는 소다자 협의체로 제도화하는 게 미국 쪽 목표임을 알 수 있다. 벌써 한·미·일 3국 협의체를 뜻하는 코자스(KOJAUS)란 용어가 등장했다.

본질적 중국 위협을 노골적 중국 겨냥으로

“대한민국, 미합중국, 일본 정상은 우리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가 3자 차원에서 서로 신속하게 협의하도록 할 것을 공약한다. 이러한 협의를 통해, 우리는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동조화하며, 대응조치를 조율하고자 한다.”

‘정신’과 ‘공약’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문구다. ‘정신’에는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고, 3국 안보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란 설명이 달려 있다. 협의의 대상인 ‘지역적 도전, 도발, 위협’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안보 측면에서 기존 3국 협력의 명분이었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거론되지만, 그에 앞서 언급된 것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다. 쿼드(서태평양)와 오커스(남태평양)에 이어 코자스(북태평양)가 중국을 겨냥해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만든 새로운 소다자 협의체로 떠오른 모양새다. 전직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는 이렇게 짚었다.

“기존에도 한·미·일 3국 협력은 포장만 북한 위협이었을 뿐 본질은 중국 위협이었다. 실제로 북한 위협과 관련해선 일본이 추가된다고 해서 군사적 측면에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런데 이번엔 포장마저 뜯어내고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했다.”

군사안보 측면만이 아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결과는 한·미·일 3국 협력 범위가 무역·기술·자원·에너지 등 경제안보 측면까지 전방위적으로 확대됐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은 역시 중국이다. ‘정신’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이를 웅변하는 대표적 사례다.

“우리는 우리가 개발한 첨단기술이 국외로 불법 유출되거나 탈취되지 않도록 기술 보호 조치에 대한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혁신기술타격대’(DTSF) 그리고 일본과 대한민국의 상응 기관 간 첫 교류를 실시해 집행기관 간 정보 공유와 공조를 강화할 것이다.”

2023년 8월22일 일본 도쿄의 총리공관 앞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영토 분쟁국들이 동맹이 된 사례

DTSF는 중국 쪽으로 첨단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23년 2월 미 법무부와 상무부 주도로 만들어진 일종의 범정부 합동수사단이다. DTSF와 “교류, 정보 공유, 공조”에 나서는 것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정책에 적극 가담하는 것을 뜻한다.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를 수밖에 없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이렇게 짚었다.

“한·미·일 협력 자체를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방향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해 우방국과 협의하는 건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균형이다. 좌표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면 안 된다. 중국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건 지정학적으로 피해야 하는 경솔한 행동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치러야 할 비용이나 감수해야 할 위험보다 ‘기회’로 여기는 것 같다.”

캠프 데이비드 정신·원칙·공약을 통해 한·미·일 3국이 준동맹 또는 유사동맹으로 나아갔다는 평가가 있다. 영토분쟁(독도)을 겪는 국가가 동맹이 된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다. 동맹은 ‘위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거 한·미·일 협력은 ‘북한’이란 위협을 공유했다. 지금 한·미·일은 ‘중국’이란 위협에 인식을 공유하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미·일 3국은 경제구조도, 발전전략도, 미래산업전략도 서로 다르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도 마찬가지다. 중국을 적대시하는 게 미국과 일본에 이익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게 반드시 한국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모든 국가가 자국 이익을 추구한다. 과거 냉전 시절엔 미국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에 보상해줬지만, 지금 미국은 그럴 만한 힘이 없다. 전략경쟁이 심화할수록 가치외교가 아니라 실용외교를 선택하는 이유다. 미국도, 일본도,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전직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 오염수 방류에 “만족스럽게 생각”

“3국 안보협력 강화는 중국을 겨냥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추진해온 미국의 숙원사업이다. 이른바 ‘정상국가화’를 원하는 일본도 참여할 동기와 이익이 있다. 지금까지 못했던 건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일종의 ‘점선’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점선이 ‘직선’으로 바뀌었으니 미국으로선 무척 고마울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는 외교할 때 국내적 지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신경 쓴다. 여론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정책 지속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론조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정부가 등장했다. 이러면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18일 3국 정상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에 대한 질문에 “회의에서 의제로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점검 결과를 신뢰하며, 방류 이후 책임 있고 투명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기시다 총리는 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 오염수 방류 개시 시점을 전격 공표했다. 이어 8월24일 오후 1시4분께 실제 방류가 시작됐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한·미·일 3국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위협’에 해당하지 않는 걸까? 그런 것 같다. 3국 정상회의를 앞둔 8월1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한-일 관계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에 만족한다. 안전하며, IAEA의 핵 안전 기준을 비롯한 국제적 기준에도 부합한다. 일본은 방류 계획과 관련해 IAEA와 긴밀하고 적극적으로 협의했으며, 과학에 기반한 투명한 과정을 거쳤다.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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