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의 독재자 라치라카가 대선 결과 불복하며 ‘두 대통령 사건’ 발생
라발로마나나, 라치라카, 안타나나리보….
발음조차도 힘든 이 단어들은 최근 마다가스카르 공화국의 ‘두 대통령 사건’과 관련해 자주 접하게 되는 이름들이다. 마다가스카르는 지구상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모잠비크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과 접하고 있으면서도 아시아 쪽인 인도네시아의 영향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을 뿐 아니라 주요 종족인 메리나족은 인도네시아인과 많은 인종적 유사성을 보인다. 마다가스카르는 메리나족 이외에 아프리카계, 아랍계, 프랑스인, 인도인들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다인종 사회다. 세계 1위의 바닐라 향료 수출국이며, 프랑스 작가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로 인해 잘 알려진 바오밥나무의 원산지. 그야말로 자연 생태계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자수성가 기업인의 도전장
이 자연 생태계의 천국이 지난해 12월16일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오랫동안 철권을 휘두른 독재자 라치라카에 도전장을 내민 출마자는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의 시장이자 티코(TIKO) 요구르트 판매로 백만장자가 된 자수성가의 상징 마크 라발로마나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웨덴에서 기독교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사업에 투신해 유제품, 특히 요구르트의 독점으로 마다가스카르 최대의 기업가가 되었다. 그의 정치적 기반은 기독교계다. 젊고 야심찬 요구르트 백만장자의 도전을 받은 늙은 독재자 디디에 라치라카는 누구일까? 그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정치지도자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식민교육을 받은 해군장교 출신이다. 프랑스 유학시절 동료 프랑스 학생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보였고, 독립(1960) 이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을 때 외무장관으로 활동했다. 75년에는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해 국유화, 농지개혁, 사회주의권과의 협력확대를 기반으로 한 ‘마다가스카르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 16년간 마다가스카르를 통치했다. 그러나 소련의 몰락,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실패, 석유위기 등으로 인한 경제난으로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다당제를 도입했다. 이 전환과정에서 93년 의대교수 출신인 알베르 자피가 대통령에 선출되지만 라치리카는 96년 정치적 컴백에 성공했다. 급기야 지난해 말 백만장자 시장인 라발로마나나와 맞서 다섯 번째로 대선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대선 1차 투표에서 모두 과반수 표를 얻지 못했다. 재투표를 치러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 많은 표를 얻은 라발로마나나 후보는 일방적으로 대통령 당선을 선언해버렸다. 라치리카는 당연히 이에 반발했다. 그는 수도를 버리고 동부의 항구도시인 토아마시나에 거점을 둔 채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두명의 대통령이 대립하는 내전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라발로마나나 신임 대통령은 수도인 안타나나리보를 중심으로 한 내륙지방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반면, 라치라카는 마다가스카르를 구성하는 6개주 중 해안 4개주를 장악하고 있다. 그는 수도로 향하는 교량파괴, 교통봉쇄를 통해 라발로마나나 새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군부는 아직 중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군 특수부대는 라치라카의 세력권 안에 들어 있다. 아프리카 주변국들 중재 나서 이에 와데 세네갈 대통령을 중심으로 봉고(가봉), 그바그보(코트티부아르), 사수응게소(콩고) 등 아프리카 대통령들이 중재역에 나서 1차(4월18일), 2차(6월8일) 다카르 협상을 주선했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문제해결을 시도할 경우 더 큰 내전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고, 잠재된 불씨인 인종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인도네시아계인 메리나족(인구의 26%)과 아프리카 계열인 해안부족과의 해묵은 갈등이 상존한다. 라발로마나나는 메리나족 출신인 반면 라치라카는 해안부족 출신이다. 마다가스카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은 비록 타결되지 못했지만 아프리카 문제를 아프리카인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다카르 협상의 실패는 라발로마나나 새 대통령 정부에 더 힘을 실어주게 될 전망이다. 사회주의의 실패 이후에 등장한 자수성가형 실업인에게 빈곤에 찌든 국민은 최소한의 희망을 걸고 있다. 튀니지(튀니스)=김병국 통신원 ibnkim@yahoo.com

사진/ 세네갈 대통령(가운데)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라치라카(외쪽)와 라발로마나나. 아프리카 주변국가들은 적극적인 중재를 모색하고 있다. (GAMMA)
이 자연 생태계의 천국이 지난해 12월16일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오랫동안 철권을 휘두른 독재자 라치라카에 도전장을 내민 출마자는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의 시장이자 티코(TIKO) 요구르트 판매로 백만장자가 된 자수성가의 상징 마크 라발로마나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웨덴에서 기독교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사업에 투신해 유제품, 특히 요구르트의 독점으로 마다가스카르 최대의 기업가가 되었다. 그의 정치적 기반은 기독교계다. 젊고 야심찬 요구르트 백만장자의 도전을 받은 늙은 독재자 디디에 라치라카는 누구일까? 그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정치지도자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식민교육을 받은 해군장교 출신이다. 프랑스 유학시절 동료 프랑스 학생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보였고, 독립(1960) 이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을 때 외무장관으로 활동했다. 75년에는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해 국유화, 농지개혁, 사회주의권과의 협력확대를 기반으로 한 ‘마다가스카르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 16년간 마다가스카르를 통치했다. 그러나 소련의 몰락,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실패, 석유위기 등으로 인한 경제난으로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다당제를 도입했다. 이 전환과정에서 93년 의대교수 출신인 알베르 자피가 대통령에 선출되지만 라치리카는 96년 정치적 컴백에 성공했다. 급기야 지난해 말 백만장자 시장인 라발로마나나와 맞서 다섯 번째로 대선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대선 1차 투표에서 모두 과반수 표를 얻지 못했다. 재투표를 치러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 많은 표를 얻은 라발로마나나 후보는 일방적으로 대통령 당선을 선언해버렸다. 라치리카는 당연히 이에 반발했다. 그는 수도를 버리고 동부의 항구도시인 토아마시나에 거점을 둔 채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두명의 대통령이 대립하는 내전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라발로마나나 신임 대통령은 수도인 안타나나리보를 중심으로 한 내륙지방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반면, 라치라카는 마다가스카르를 구성하는 6개주 중 해안 4개주를 장악하고 있다. 그는 수도로 향하는 교량파괴, 교통봉쇄를 통해 라발로마나나 새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군부는 아직 중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군 특수부대는 라치라카의 세력권 안에 들어 있다. 아프리카 주변국들 중재 나서 이에 와데 세네갈 대통령을 중심으로 봉고(가봉), 그바그보(코트티부아르), 사수응게소(콩고) 등 아프리카 대통령들이 중재역에 나서 1차(4월18일), 2차(6월8일) 다카르 협상을 주선했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문제해결을 시도할 경우 더 큰 내전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고, 잠재된 불씨인 인종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인도네시아계인 메리나족(인구의 26%)과 아프리카 계열인 해안부족과의 해묵은 갈등이 상존한다. 라발로마나나는 메리나족 출신인 반면 라치라카는 해안부족 출신이다. 마다가스카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은 비록 타결되지 못했지만 아프리카 문제를 아프리카인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다카르 협상의 실패는 라발로마나나 새 대통령 정부에 더 힘을 실어주게 될 전망이다. 사회주의의 실패 이후에 등장한 자수성가형 실업인에게 빈곤에 찌든 국민은 최소한의 희망을 걸고 있다. 튀니지(튀니스)=김병국 통신원 ibnkim@yah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