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민운동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국내 활동 고집하는 ‘버마 이슈’ 대표 맥스 에디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10여년간 버마에서의 활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버마 이슈’ 대표 맥스 에디갈(57)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최근에 필자는 버마 민주화를 위해 아시아에서 뭔가 한판 일을 벌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이었고, 적어도 이 분야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버마 이슈’의 맥스 에디갈을 만나서 여러 가지 조언을 받고 싶었다. 지난해 말부터 화해 무드가 감지되는 버마 군부 내의 여러 정황을 볼 때 이번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80년과 버마의 88년
“사실 지난 수십여년간 버마는 둘셋만 모여도 잡혀가는 암흑의 세상이었습니다. 게다가 90년 이후 해외로 빠져나간 많은 민주화 세력들 때문에 국내에는 침묵만이 남아버렸죠. 그나마 아웅산 수치 등 일부가 남아 지탱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해외 시민사회단체들이 타이 국경지대의 버마 민주화운동 그룹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버마 이슈’는 지속적으로 국내 기반을 튼튼히 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부족 간의 대립을 교묘히 조장한 탓에 가까스로 세운 활동 기반마저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타이 국경지대를 통해 버마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시민사회단체 상근자들이 다치거나 사망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미군으로 베트남전을 경험한 맥스 에디걸은 평화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돼, 이후 동남아에 남아 민주화 활동을 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타이의 민주화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그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버마에 관심을 갖게 됐다. 덕분에 그는 버마 정부로부터 일찌감치 요주의 인물로 찍히고 버마 입국도 허락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타이 정부로부터도 입국 허락을 못 받아 홍콩 등 주변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군부독재가 바꾼 국호 미얀마라는 이름 대신에 아직도 많은 민주화운동의 지원 세력들은 원래의 이름인 버마를 고집한다. 1988년 26년간의 군사독재를 끝내려는 수십만여명의 민주화 시위로 시민자치기구 등 온갖 꿈같은 자유의 공간들이 열렸으나 신군부 정권은 군부를 축출한다는 이유로 시위 군중 2천여명을 학살하고 다시 권력을 잡았다. 이 사건은 우리의 1980년을 떠올리게 한다. 민간정부 이양을 약속하면서 치러진 90년 5월 자유총선거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국민민주동맹이 다수 의석을 차지(485석 중 392석)하고 군부가 지원하는 국민통합당은 참패(10석)했다. 그러자 그해 7월 신군부 정권인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입법·행정·사법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한다. 그 이후 계속되는 체포와 감금을 피하기 위해 타이 국경지대로 28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1만여명의 반정부 학생들이 도피해서 결성한 임시 정부가 버마연방국민연합정부(NCGUB)다. 버마 소식 알려주는 창구 역할도 사실 지난 10여년간 버마를 지원하는 해외의 많은 단체들은 타이 국경지대의 버마 난민과 망명정부를 지원하는 데 몰두해왔다. 버마 국내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기 어렵고 워낙 다양한 부족 간의 이해대립이 있기 때문이다. 버마 이슈는 갖은 어려움에도 국내 활동을 고집한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국내에 잠입(?)하여 농촌지역에서 글을 가르치는 등 가장 초보적인 활동에서 주민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게 하고 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민주주의 의식을 심는 일이다. 한달에 한번씩 버마와 관련한 따끈한 소식을 해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창구 역할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부의 감시가 심해 그나마 쉽지 않다. 고생해서 키운 사람들이 말도 없이 사라지는 일들이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할 겁니다. 10년 장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서 지역 공동체를 만들고 민주 리더십을 세우는 일을 할 겁니다.” 이들은 아시아 주요 시민단체들과 함께 오는 11월 말 캄보디아에서 버마 민주화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hotmail.com

사진/ “많은 활동가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지만 다시 시작할 겁니다.” 유일하게 버마 국내에서 활동하는 인권단체 ‘버마 이슈’의 대표 맥스 에디갈(왼쪽)과 필자.
“사실 지난 수십여년간 버마는 둘셋만 모여도 잡혀가는 암흑의 세상이었습니다. 게다가 90년 이후 해외로 빠져나간 많은 민주화 세력들 때문에 국내에는 침묵만이 남아버렸죠. 그나마 아웅산 수치 등 일부가 남아 지탱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해외 시민사회단체들이 타이 국경지대의 버마 민주화운동 그룹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버마 이슈’는 지속적으로 국내 기반을 튼튼히 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부족 간의 대립을 교묘히 조장한 탓에 가까스로 세운 활동 기반마저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타이 국경지대를 통해 버마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시민사회단체 상근자들이 다치거나 사망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미군으로 베트남전을 경험한 맥스 에디걸은 평화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돼, 이후 동남아에 남아 민주화 활동을 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타이의 민주화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그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버마에 관심을 갖게 됐다. 덕분에 그는 버마 정부로부터 일찌감치 요주의 인물로 찍히고 버마 입국도 허락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타이 정부로부터도 입국 허락을 못 받아 홍콩 등 주변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군부독재가 바꾼 국호 미얀마라는 이름 대신에 아직도 많은 민주화운동의 지원 세력들은 원래의 이름인 버마를 고집한다. 1988년 26년간의 군사독재를 끝내려는 수십만여명의 민주화 시위로 시민자치기구 등 온갖 꿈같은 자유의 공간들이 열렸으나 신군부 정권은 군부를 축출한다는 이유로 시위 군중 2천여명을 학살하고 다시 권력을 잡았다. 이 사건은 우리의 1980년을 떠올리게 한다. 민간정부 이양을 약속하면서 치러진 90년 5월 자유총선거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국민민주동맹이 다수 의석을 차지(485석 중 392석)하고 군부가 지원하는 국민통합당은 참패(10석)했다. 그러자 그해 7월 신군부 정권인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입법·행정·사법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한다. 그 이후 계속되는 체포와 감금을 피하기 위해 타이 국경지대로 28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1만여명의 반정부 학생들이 도피해서 결성한 임시 정부가 버마연방국민연합정부(NCGUB)다. 버마 소식 알려주는 창구 역할도 사실 지난 10여년간 버마를 지원하는 해외의 많은 단체들은 타이 국경지대의 버마 난민과 망명정부를 지원하는 데 몰두해왔다. 버마 국내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기 어렵고 워낙 다양한 부족 간의 이해대립이 있기 때문이다. 버마 이슈는 갖은 어려움에도 국내 활동을 고집한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국내에 잠입(?)하여 농촌지역에서 글을 가르치는 등 가장 초보적인 활동에서 주민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게 하고 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민주주의 의식을 심는 일이다. 한달에 한번씩 버마와 관련한 따끈한 소식을 해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창구 역할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부의 감시가 심해 그나마 쉽지 않다. 고생해서 키운 사람들이 말도 없이 사라지는 일들이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할 겁니다. 10년 장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서 지역 공동체를 만들고 민주 리더십을 세우는 일을 할 겁니다.” 이들은 아시아 주요 시민단체들과 함께 오는 11월 말 캄보디아에서 버마 민주화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