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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알제리, 혼란 속의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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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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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지역의 보이콧으로 최저 투표율 기록… 트로츠키 노동당의 약진 돋보여

사진/ 총선 당일 벌어진 베르베르족 청소년들의 시위. 중앙정부의 차별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왔다. (GAMMA)
5월30일 전 세계는 다음날 열릴 한·일 월드컵으로 인해 흥분돼 있었지만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는 혼란 속에 총선이 진행되고 있었다. 올해 총선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군부의 내전이 발발하여 10년 동안 진행되는 가운데 3번째로 열리는 큰 선거다.

1989년 민족해방전선(FLN) 1당 체제에서 다당제로 전환된 이후 91년 처음 실시된 총선에서 이슬람 정당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군부가 개입했다. 이슬람 구국전선을 불법화한 뒤 알제리는 10년간에 걸쳐 15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피비린내나는 내전에 빠져들었다.

민족해방전선, 다시 제1당으로


올해 총선은 선거부정으로 얼룩진 97년 2차 총선, 부테플리카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99년 대선에 이어, 내전 발발 이후 3번째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다. 현 정부 입장에서는 내전 종식과 함께 정치적 안정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의 투표참여를 독려했지만 알제리 독립 이후 최저의 투표참여율을 기록했다. 베르베르 지역의 티지우즈당과 베르베르당의 투표 보이콧으로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한 선거였다.

이번 선거를 통해 다당제 전환 이후 정치권에서 기득권을 상실했던 민족해방전선이 재등장했고,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인 민족개혁운동(MRN)과 사회평화운동(MSP)이 81석을 획득하여 제2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또한 여성정치인 루이자 하눈이 이끄는 트로츠키 노동당이 21석을 획득해 급성장을 이루었다.

97년 총선에서 64석을 얻어 원내 3당의 위치에 머물렀던 민족해방전선이 이번 선거에서 389석 중 199석을 획득해 원내 다수당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 이유는 과거 제1당인 민족민주연합(RND)의 정책실패와, 현 알제리 총리이자 민족해방전선 당수인 알리 벤플리스가 당을 개혁한 것이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97년 총선에 임박해 급조된 정당인 민족민주연합은 정책부재, 부정부패, 권력남용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반면 벤플리스는 95년 이후 당 개혁에 착수해 구세대와 거리를 둔 채 여성과 청년층의 정치적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알제리는 인구 3천만명 중 70%가 30대 미만으로, 청년층이 정치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1800만 유권자 중 46%만이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베르베르족의 선거 보이콧 영향도 있겠지만 제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정치적 무관심이 더 큰 이유다. 실제 권력의 핵심은 군부에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들러리를 뽑는 요식행위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다.

막대한 석유수입에도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알제리 국민은 군부나 제도 정치권의 부정부패, 무능 등으로 인해 불신의 폭을 키워가고 있다. 알제리에서 가장 시급한 사회문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의한 테러 이외에도 식수·주거·실업문제다. 수돗물이 3일에 한번꼴로 공급되고, 극심한 주택부족으로 인해 사생활마저 거의 배제된 상태다. 실업률도 30%에 달한다.

베르베르 지역에서 중앙정부에 대한 반발은 베르베르 문화와 언어를 지키고 더 많은 자치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 알제리가 당면한 사회적 문제는 비단 베르베르족에게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베르베르 지역 시위대의 대부분이 청소년인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출구가 없는 청소년의 분노에 덧붙여 베르베르족이라는 이유로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차별에 대한 분노가 결합된 것이다.

제도 정치권의 불신은 치유될 것인가

제2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온건 이슬람 세력은 이번 총선에서 81석을 차지함으로써, 지난 10년 동안의 내전과정에서 이슬람 원리주의가 보여준 폭력에 대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남아 있다. 군부나 민족해방전선 1당 체체에 대한 반발이 91년 무효로 처리된 총선에서 이슬람 정당에 압도적 승리를 갖다준 것과 같이, 현 정권도 국민의 요구를 충실히 수용하지 못할 경우 똑같은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 약진한 트로츠키 노동당은 트로츠키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다수당인 민족해방전선, 온건 이슬람 세력 이외에 제3의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아랍국가에서 여성이 당수인 점 등 알제리의 정치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집권당이 알제리가 당면한 문제인 제도 정치권에 대한 신뢰 회복, 군부의 평화적 권력 이양, 실업·빈곤·식수·주거문제 해결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슬람 정치세력화와 베르베르 자치문제에 대한 바른 해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튀니스(튀니지)=김병국 통신원 ibn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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