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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열도에 한국이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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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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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 맞아 일본에 한·일 문화교류 행사 봇물… 이제 월드컵 이후를 준비할 때

사진/ '한국문화전'에서 석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본 사람들.
도쿄에서도 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세타가야구, 잘 정돈된 공원 깊숙이 자리잡은 세타가야 미술관에는 거대한 돌솥 비빔밥이 놓여 있었다. 커다란 돌솥 안에는 다종다양한 한국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이 들어 있다. 일본사람들이 김치·불고기뿐만 아니라 비빔밥을 특히 좋아한 탓도 있겠지만, 그들의 눈에 한국문화가 동양과 서양, 혹은 과거와 현재의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등이 뒤섞여, 또 다른 독특한 맛을 내는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복, 한국 대중문화의 한 부분

사진/ 영화포스터와 콘서트 포스터전. 일본에서도 인기 있는 원빈이 등장한 영화 간판이 보인다.
지난 5월25일부터 도쿄 세타가야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전’에는 거대한 비빔밥 설치물 이외에도, 영화나 각종 콘서트의 포스터, 가판대의 신문·잡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설치된 여러 대의 모니터에선 여성들의 신발, 허리띠 같은 패션과, 도발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은 텔레비전 광고 등이 방영되고 있다. 월드컵을 계기로 스포츠 외에 한국의 다양한 대중문화를 알고 싶어하는 일본사람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전시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보여주는 전시물 가운데엔 군복도 있다. “남성들은 물론 애인과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여성들에게도 군복무는 일생일대의 관심사”라는 소개글과 함께. 얼마 전 일본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한·일 합작 드라마 <프렌즈>에서 해병대에 입소한 남자친구 원빈을 면회하러 간 일본 여성의 낯선 시선을 글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군대에 가지 않는 이들의 시선을 통해 당연시되던 우리들의 일상이 타자화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진/ 대중문화의 나무에 매달린 문화 열매들. '한국대중문화전' 전시실에 설치돼 있다.
일본에서의 한국 관련 문화행사는, 일본 주재 한국문화원에 따르면 최근 5, 6월 사이에만 30∼40건에 이른다고 한다. 월드컵이 이 같은 문화교류의 가장 큰 배경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굵직굵직한 행사만 열거해 보더라도, 오사카와 도쿄에서 3월부터 7월까지 번갈아가며 열리는 ‘한국의 명보(名寶)전’,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요코하마에서 5월과 6월에 걸쳐 열리는 ‘아트 퓨전 2002’와 ‘코리아-저팬 페스티벌’, 한국 월드컵조직위원회가 대회기간 동안 도쿄 오페라시티에서 개최하는 ‘한국문화전’ 등 모두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한·일 공동 주최라면 축구 외에도 한·일간 문화교류가 잘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주일 한국대사관의 김종문 한국문화원 원장. “아픈 양국관계를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문화교류가 필요한데, 문화교류는 직접 가서 보고 이해하는 관광으로, 관광은 진정한 우호 친선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해 양국 정부가 올해를 한·일 국민 교류의 해로 제정했다. 실제로 교과서 문제 등이 불거졌던 지난해에 비하면 올해는 문화교류의 봇물이 터진 듯하다는 것이 한국문화원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일 문화교류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전통문화 교류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말 도쿄에서 있었던 뮤지컬 <고려 팔만대장경>의 공연과, 5월 초 도쿄와 5월 중순 오사카에서 있었던 <한·일 궁중음악 교류 연주회>, 6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이어질 ‘한국의 명보전’, 요코하마에서의 <한국 가면극의 향연>과 <강릉 단오제 놀이마당> 등 다종다양한 전통문화들이 월드컵 기간 중 교류되고 있다. 물론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전통문화 교류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7월 초순으로 예정되어 있는 일본 큰북 연주의 일인자인 하야시 에이테쓰와 한국 사물놀이패의 일인자인 김덕수가 함께 공연하는 <한·일 음악제>를 비롯해 8월 초로 예정된 <한·일 고전예술제 2002> 등이 그것이다.

또 다른 한 축은 대중문화 교류다. 일본에서도 이젠 한국 대중문화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난타> 공연이 지난 3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도쿄·오사카를 비롯해 일본 전국 9개 도시에서 공연되었고, 한국문화원 개원 23주년을 기념한 ‘한국영화 특별전’, 한·일 대중가수들이 참가했던 ‘한·일 프렌즈쉽 콘서트2002’ 등이 4월과 5월 중에 상영·공연되었다. 6월19일부터 23일까지는 도쿄 인근인 치바시에서 ‘코리아 슈퍼 엑스포 2002’도 개최된다. <순애보> <흑수선> 등 한국의 최근 히트작도 상영될 예정이다.

일본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다. 대중문화 교류에서 한국영화 상영은 그래서 언제나 인기가 높다. 영화 이외의 대중문화 행사로선 역시 ‘한국 대중문화전’이 제일 큰 행사라 할 수 있다. 올 2월 초부터 있었던 니가타 전시를 끝내고, 현재는 도쿄에서 전시 중이다. 앞으로 후쿠오카 등 두곳을 내년 2월까지 순회 전시할 계획이다.

홍보 부족으로 썰렁한 분위기도

사진/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와 월드컵 개최 10개 도시가 마련한 '한국문화전' 포스터. 무형문화재 등 전통예술을 중심으로 선보였고, 조수미 특별공연도 있었다.
월드컵을 계기로 문화행사가 이처럼 줄을 잇지만, 그렇다고 모두 성황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한국 월드컵조직위원회와 한국 월드컵 개최 10개 도시가 월드컵 대회기간 동안 주최한 ‘한국문화전’은 봉산탈춤·판소리·전통무용 등 한국의 수준급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충분한 홍보가 덜된 탓인지 다소 썰렁한 분위기다. 지난 6월3일에 열려 대성황을 이룬 조수미 콘서트를 제외하곤 문화 월드컵이라는 구호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문화행사는 아니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가 이주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있었다.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구속하는 사례가 느는 데 대한 대책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 쪽에선 이주노동자 대책협의회의 최의팔 공동대표가 참석했다. 이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또한 지난 6월2일을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와 이주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요구하는 국제 공동행동의 날’로 정하고,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집회를 갖기로 했다. 도쿄에선 신바시 국철 노동회관에서 집회를 가진 뒤 긴자까지 시위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향해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깝기 때문에 잘 알고 싶은 나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월드컵 잔치가 끝난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다.

도쿄=신명직 통신원 mjshin5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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