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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빠 둘 엄마 둘, 난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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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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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이 편견을 딛고 일궈가는 ‘무지개 가족’의 행복

사진/ 아이들을 보기 위해 방문한 친아빠 마르쿠스(왼쪽)와 그의 애인 요한(가운데). 큰딸 미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알록달록한 공간에서 언니 미아(10)와 여동생 넬(6)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빨간 벽들 사이로 푸른 바닥이 보이는 방은 미아의 것이다. 넬은 반대로 푸른 벽과 빨간 바닥으로 이루어진 다락방을 가지고 있다. 여러 색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이들의 생활공간만이 아니다. 이들이 속한 가족들의 삶이 더욱 그러하다.

첫사랑은 이성, 그 다음은 동성

넬과 미아에게는 두명의 아빠와 두명의 엄마가 있다. 친아빠 마르쿠스(37)와 그의 남자 애인 요한(34), 그리고 친엄마 실비아(39)와 그의 여자 애인 수잔(37)이 그들이다. 미아와 넬은 학기 중에는 주로 엄마 실비아, 수잔과 함께 생활하고 주말이나 방학은 대부분의 시간을 마르쿠스와 요한의 집에서 보낸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는 두명의 엄마, 두명의 아빠와 두명의 딸들이 스위스의 한 야영장에서 휴가를 보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미아의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두쌍의 부모가 근사한 축하파티를 열어주었다. 엄마 실비아와 수잔은 직접 만든 케이크와 피자로 아이들을 대접했고, 아빠 마르쿠스와 요한이 미아와 친구들을 실내 스케이트장으로 데려가 주었다. 파티에 앞서 네명이 나란히 졸업식에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일부 엄마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죠.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하거든요. ‘잠깐만,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속하는 거지?’ 하고 말하겠죠”라며 요한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어떻게 이들이 ‘가족’을 이루게 되었을까?

이들의 가족이야기는 흔하고 흔한 고등학생들의 연애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당시 마르쿠스의 나이 14살, 실비아의 나이 15살. 이들 두명은 같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때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이후 우리들의 관계는 정말 좋았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첫사랑이었고, 또 계속 그렇게 살아가리라고 생각했죠.” 마르쿠스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러던 실비아가 25살이 되던 해에 마르쿠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결국 10년의 세월을 함께 지내온 남자친구 마르쿠스의 곁을 떠났다고 한다.

“실비아가 어느 날 대뜸 말하더군요.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헤어지자고요. 정말 끔찍했죠. 우리 관계가 끝났다는 걸 믿을 수 없었어요. 10년이 되면 결혼식을 올리고 또 아이를 갖자고 계획했거든요.” 실비아와 헤어진 뒤 이상하게도 마르쿠스 역시 남자들에게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많은 시간을 방황했다. 실비아도 처음에는 수잔과의 새로운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동성애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가톨릭 병원에서 간호사로서의 생활을 막 시작하였고, 부모들과 친구들이 실비아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2년여가 지나면서, 실비아에게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막 태어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이를 갖고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미고 싶다는 바람이 더욱 간절해졌다. 마침내 실비아는 전 남자친구 마르쿠스를 찾아갔다. 당시 마르쿠스도 새로운 남자친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여전히 아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고, 그는 실비아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단지 정자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아. 나도 아빠가 되고 싶어!” 이렇게 해서 이들 ‘무지개 가족’이 탄생했다.

인공수정 대신 옛 애인을 택하다

사진/ 많은 레즈비언 커플들이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만, 입양이나 인공수정이 여의치 않다. 실비아(왼쪽)와 수잔.
물론 이러한 가족형태를 독일에서 쉽게 접할 수는 없다. 한 통계에 의하면 독일에서 이미 150만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동성애 부모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특히 레즈비언 부부들에게 자녀를 갖고 싶다는 소망은 매우 강한 편이다. 그러나 이들이 입양을 통해 아이를 갖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성애자임을 감추고, 독신의 자격으로 입양을 신청하지 않는 한 입양은 허가되지 않는다. 인공수정은 아직까지 법으로 금한 상태이다.

150만명에 이르는 자녀들 중 많은 경우는 그들 부모가 이성과 사랑할 때에 태어났다. 그러나 베를린 시당국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근 네덜란드 등 인공수정이 합법화된 이웃나라에서 아이를 갖는 레즈비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공수정은 게이를 비롯한 남성 일반과 접촉을 싫어하는 경향이 뚜렷한 레즈비언들이 선호하는 임신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실비아는 “저는 지금 여자친구를 사랑해요. 그렇다고 남자를 싫어하는 건 아니죠. 더군다나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정자로 아이를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고 말한다.

미아를 낳기 위해, 실비아는 전 남자친구를 택했고, 마르쿠스는 여느 아빠들처럼 미아가 태어날 때 분만실에 함께 있었다. 대기실에서는 수잔이 실비아의 건강한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미아의 탄생이 이들 다섯을 함께 묶어놓은 뒤 이들은 미아의 생일날이면 늘 한가족처럼 함께 모였다. 1996년에는 동생 넬이 태어났다. 넬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한달에 한번씩 만나고 있다.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들 가족은 아이들의 친할머니댁을 방문하기도 하고, 여름방학 때는 외할아버지댁의 가족정원을 함께 가꾸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지개 가족’에 늘 밝은 햇살만 비추는 것은 아니다. 마르쿠스의 남자친구 요한은 이런 가족 형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사실 난 아이를 갖고 싶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지금 아이들과의 생활에 만족하기는 하지만, 게이로서의 평범한 삶은 아니죠.” 현실적으로 게이보다는 레즈비언 부부들이 아이를 맡아 기르는 경우가 많다. 독일에서 보통의 부부가 이혼할 경우에도 양육권은 엄마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가족 내에도 차차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수잔은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으로 바래다주고, 실비아는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아이들을 꾸짖거나 엄하게 교육하는 역할은 주로 수잔이 하는데, 미아가 어느 날 수잔에게 대들면서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고 한다. “당신은 내 엄마가 아냐.” 미아의 한마디가 수잔에게 상처를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래 맞아. 난 네 엄마는 아니야. 좋아, 그럼 내일 아침부터 아침을 차려주지 않을 거야. 네 머리카락을 예쁘게 묶어주지도 않을 거고. 그리고 너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일도 없을 거야!” 이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가족이 다른 가족과 구별된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싶다고 한다. 미아에게도 고민이 많다. “학교에서 애들이 나를 보고 ‘호모의 돼지새끼’라고 부르면 정말 막 화가 나요.”

톨레랑스 배우는 동성애 가족 아이들

최근 베를린시에서 발간한 ‘무지개 가족’ 자료집에는 동성애를 비정상적으로 보는 태도를 ‘사회적 수치’라고 표현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어른들의 거부감을 아이들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가운 현실이 무지개 가족의 아이들에게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갈등을 극복하는 능력이 일찍부터 관찰되기도 하는데, ‘남과 다를 수 있다’는 인식이 아이들의 톨레랑스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가정이나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거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동성애 가족에 위탁되어 지내면서 훨씬 나아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독일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동성애 가족을 연구한 뮌헨대학 교육학과 교수들도 연구보고서에서 이와 비슷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사회적 편견이 있음에도 이들 아이들이 매우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심리상태를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이 성장하여 동성애자가 되는 비율은 일반적인 환경에서 자란 다른 아이들과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동성애 부모가 동성애 자녀를 만들 것이라는 선입견에 반하는 결과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들 아이들에게는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전통적인 남녀 역할 구분보다는, ‘파트너’식 역할 분담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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