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로 가득 찬 이스라엘 폭탄테러 현장…평화운동가들의 작은 외침도 끊이지 않아
“지금 이스라엘로 가는 이유가 뭡니까?” 여자 보안요원의 표정이 굳게 변했다. 그는 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사항, 심지어는 수입 등 안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항까지 따지고 들었다. 차라리 이스라엘행을 포기해버릴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필자의 소지품 검사는 아테네 공항의 구석 방에서 이뤄졌다. 손목시계, 소형 녹음기, 소형 카메라 등 보안요원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잠재적인 폭탄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들은 수첩·기록물들까지 꼼꼼히 읽었다. 조사는 40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5월1일, 보안요원의 에스코트라는 ‘과분한 대접’을 받으면서 겨우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텔아비브 공항에서도 같은 심문이 반복됐다.
길을 가다가도 주위를 살핀다
보통 부활절 전후가 되면 예루살렘은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쳤지만 지금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경찰들, 군인들, 사복경찰들, 많은 사람들이 무장을 한 채 거리를 다녔다. 행인들 중 거의 절반이 보안요원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다. 거리의 카페에도 보안요원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맥도날드 앞에도 보안요원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가방을 검사하였다. 6년 전 필자가 한동안 체류한 예루살렘과는 너무나 달랐다.
예루살렘의 명동이라는 벤예후다 거리에서도 사람들의 자취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은 모이려 하지 않았다. 모이면 자살폭탄테러의 대상이 되니 아주 불가피한 일을 빼고는 외출을 삼간다고 한다. 벌써 이 주위에서만 10번 정도의 자살폭탄테러가 감행됐다. 시내버스, 쇼핑센터, 피자 가게, 케이크 가게, 카페, 시내버스 정류장, 시장터….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어디서나 폭탄이 터졌다. 자살폭탄테러는 총 11번이 발생한 3월이 가장 심각했는데 3월 마지막 주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났다. 그러니 이스라엘 시민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벤예후다 거리에서 관광상품점을 경영하는 미리(47)는 예루살렘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살폭탄테러에는 만성이 됐다고 자신해왔지만, 요즘은 길을 가다가도 사람들을 주의하여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 이스라엘 시민들 대부분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먼저 폭탄부터 생각하게 돼요.” 4∼5일 지나면서 필자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생겼다. 지난 5월9일 예루살렘에서는 ‘예루살렘의 날’이라는 큰 행사가 열렸다. 수천명의 인파가 모였지만 3분의 1은 무장병력과 경찰들이었다. 필자도 인파 속에 있는 자신이 위험에 놓이기라도 한 듯 불안해졌다. 옆에 있는 한 이스라엘 학생에게 “행사장에 온 뒤로 머릿속에 폭탄이 몇번이나 떠올랐는지”를 물었다. 그는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두번이나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곳곳에 폭탄테러의 흔적들이…
중심가인 벤예후다 거리와 야파 거리에서 통틀어 5번의 자살폭탄테러가 감행됐다. 필자는 먼저 폭탄테러가 자행된 케이크 가게 바로 옆에 있는 사탕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주인인 하임은 테러로 부인과 아기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의 아라파트에 대한 증오심은 대단했다. 같은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두달 전에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난 신발 가게가 있다. 이 신발 가게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온 바인이 운영하다가 지금은 그 아들이 대를 이었다. “정오께였죠. 한 팔레스타인 여자가 가게에 들어서자 이상하게 여긴 점원 한 사람이 도와줄 게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는 즉시 가게 문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잠시 뒤 폭탄이 터졌어요. 머리 위로 파편들이 쏟아지면서 정신을 잃었죠. 목을 다쳤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이곳에서 일하는 이갈(33)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 테러로 행인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갈은 “엄청난 공포에 시달리고 있으나 어쩔 수 없어 날마다 출근해야 한다”며 그날의 악몽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필자가 이스라엘에 온 뒤로는 베들레헴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군이 긴장 속의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머문 지 8일째 되던 5월7일 자살폭탄테러가 다시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다시 한번 이스라엘 전체를 침울하게 하였다. 이 사건으로 17명이 죽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했다. 동예루살렘에서 한 팔레스타인 청년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자 의외로 그는 냉담했다. “팔레스타인인들도 죽었으니 유대인들도 죽어야 마땅합니다.”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난 곳은 텔아비브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변두리 지역이다. 사건이 발생한 불법 카지노 건물은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금방 알아볼 정도로 몰골이 흉측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카지노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임에도 보안요원이 없다는 이유로 쉽게 폭탄테러의 표적이 된 것이다. 낡은 건물 3층은 그날 밤의 참상을 말해주듯 앙상한 철근들이 삐죽이 나와 있었고 부숴진 콘크리트 잔해들이 건물 여기저기에 나뒹굴었다. 같은 건물의 1층에서 장난감 가게를 하는 도른(35)은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가 그토록 분노를 터뜨린 까닭은, 폭발 때문에 건물에 심각한 균열이 생겨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가게를 이주하라는 권고를 시청에서 받긴 했으나 보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른은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이스라엘이 갑자기 싫어졌다”면서 “미국으로 이민이나 갔으면 한다”는 심정을 거침없이 밝혔다. 폭발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야엘(43)은 “이곳에 카지노가 있었다는 사실을 폭탄테러가 일어난 다음에야 알았고, 이런 변두리에까지 폭탄테러가 자행됐다는 사실이 두렵다”고 말했다.
평화를 말하던 시대는 갔다
자살폭탄테러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었다. 몇 군데 병원에 나눠서 수용했지만 많은 수가 레숀 레치온에 있는 볼프손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다니엘 플로(52)는 부인, 부인의 친구와 함께 같은 병실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는 이날 밤 친구들을 만난 뒤 들뜬 기분에 카지노에 들렀다. 카지노가 그곳에 있다는 얘기만 들었지 그날 밤 처음으로 갔다고 한다. “한창 기분좋게 마시는데 입구 쪽에서 검은 색 양복차림에 여행가방을 든 한 팔레스타인 청년이 카지노 지배인과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 순간 갑자기 굉음과 함께 내 몸이 7m 이상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기계들과 함께 동시에 바닥에 떨어졌죠. 그러고는 의식을 잃었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7명이 건물 바깥으로 튕겨나갔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어요.” 그는 이날의 상황을 소상하게 그려냈다.
폭탄은 나사를 함께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폭발하면서 나사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더 큰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다니엘도 폭탄이 터지면서 나사못이 두 다리와 한 팔을 관통했기 때문에 두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가 입원해 있어야 하는지, 그가 움직일 수 있을지조차도 현재는 미지수다. 그의 옆에 누워 있는 부인의 두 다리는 날아오른 기계가 떨어지면서 완전히 부서졌다. 의사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들 부부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나 심각했다. 앞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폭탄 없는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농담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픔이 북받치는지 다니엘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친지나 가족 중 한 사람이 폭탄테러나 총격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경험이 있다.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더 많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티파다와 이스라엘의 과격한 진압작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그나마 쌓인 ‘작은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팔레스타인에게 ‘학살자’로 낙인찍힌 아리엘 샤론 총리의 성지 방문에 분노해 일어난 인티파다는 한이 맺힌 사람들의 가슴에 다시 증오의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이삭 라빈이 총리일 때만 해도 평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고, 평화를 말하지 않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화를 말하면 이스라엘의 배반자로 몰리는 판국이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샤론 총리 관저 앞에서는 날마다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2인 평화시위가 교대로 벌어지고 있다.
환경부 공무원인 코리쉬와 학생인 파니는 한달 전 자살폭탄테러로 완전히 파괴된 카페를 마주하고서 ‘평화 지금’(Peace Now)이란 큰 플래카드를 내걸고 행인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길만이 중동에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이스라엘군의 점령지에서의 철수’이다. 이들의 논리는 복잡하지 않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철수한 다음 팔레스타인과 완전히 별개로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시도해봤으나 실패작이었기 때문에.
악수, 작은 희망
필자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행인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이들의 활동을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사람은 차 안에서 큰 소리로 야유를 보낸 뒤 사라졌고, 한 여학생은 지나가면서 흥분하여 삿대질을 해댔다. “이스라엘을 반역하는 행위이고 팔레스타인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비난이었다. 물론 자살폭탄테러가 논란의 중심이었다. 이 여학생은 “이스라엘군이 철수한다고 자살폭탄테러가 없어지느냐”고 두 여성들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잠시 뒤 오해가 풀렸는지 서로 악수하고 있었다. 서로가 원하는 목표가 하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바로 ‘평화’였다.
이 ‘위기의 땅’에 다녀온 뒤 샤론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이 팔레스타인에 자치국가를 세우는 것에 반대한다는 결의를 했다. 증오와 공포 속에 웅크린 이스라엘은 아직도 힘든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있다. 평화운동가와 그를 비난하는 행인의 악수는 작은, 아주 작은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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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된 전쟁
예루살렘=글·사진 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사진/ 행인과 논쟁 중인 이스라엘의 평화 활동가. 뒤편의 현수막엔 'Peace Now'(지금 평화를)이라고 적혀 있다.
예루살렘의 명동이라는 벤예후다 거리에서도 사람들의 자취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은 모이려 하지 않았다. 모이면 자살폭탄테러의 대상이 되니 아주 불가피한 일을 빼고는 외출을 삼간다고 한다. 벌써 이 주위에서만 10번 정도의 자살폭탄테러가 감행됐다. 시내버스, 쇼핑센터, 피자 가게, 케이크 가게, 카페, 시내버스 정류장, 시장터….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어디서나 폭탄이 터졌다. 자살폭탄테러는 총 11번이 발생한 3월이 가장 심각했는데 3월 마지막 주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났다. 그러니 이스라엘 시민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벤예후다 거리에서 관광상품점을 경영하는 미리(47)는 예루살렘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살폭탄테러에는 만성이 됐다고 자신해왔지만, 요즘은 길을 가다가도 사람들을 주의하여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 이스라엘 시민들 대부분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먼저 폭탄부터 생각하게 돼요.” 4∼5일 지나면서 필자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생겼다. 지난 5월9일 예루살렘에서는 ‘예루살렘의 날’이라는 큰 행사가 열렸다. 수천명의 인파가 모였지만 3분의 1은 무장병력과 경찰들이었다. 필자도 인파 속에 있는 자신이 위험에 놓이기라도 한 듯 불안해졌다. 옆에 있는 한 이스라엘 학생에게 “행사장에 온 뒤로 머릿속에 폭탄이 몇번이나 떠올랐는지”를 물었다. 그는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두번이나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곳곳에 폭탄테러의 흔적들이…

사진/ 자살폭탄테러 부상자들이 치료받고 있는 볼프손 병원. 폭탄에는 나시못이 섞여 있어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사진/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난 불법 카지노장. 보안요원들이 지키지 않아 표적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