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땅 이스라엘을 가다>
인터뷰 ㅣ 달리아 라빈
달리아 라빈은 1995년에 극우파 청년의 총격을 받고 타계한 ‘평화의 상징’ 이삭 라빈 이스라엘 전 총리의 딸이다. 변호사로 일해왔으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치에 입문했다. 2001년 3월부터는 국방부 차관으로 샤론 총리의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달리아 라빈과의 인터뷰는 지난 5월2일 크네셋(이스라엘 의회)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당신의 아버지 이삭 라빈이 타계한 후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것이 변했다.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7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뒤 10년이 되었다. 그러나 평화협상에서 합의된 사항들은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네타냐후와 바라크는 (평화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갔고 모두 실패했다. 1년 반 동안 평화는 완전히 거부당했다. 현재 이스라엘의 상황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군사작전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리라고 보는가.
어떤 면에서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군사작전 전에는 어디에서나 자살폭탄테러가 횡행했는데 지금은 많이 잦아졌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군사작전의 수행은 필수적이었다고 본다. 아라파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버지와 아라파트는 함께 신뢰를 구축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다. 사실 아라파트가 신뢰한 사람은 오직 아버지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오슬로 평화협정을 파괴했다. 협정은 평화를 위한 기본수단으로 비폭력을 천명했다. 테러리즘과의 싸움을 위해 팔레스타인에 무기가 주어졌지만 이 무기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누가 당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나. 유대인 청년 혼자 했지만 저격의 배후가 있을 것이다. 샤론의 정책에 동의하는가. 우리가 연립정부에 참가할 당시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네타냐후와 바라크가 실패한 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립정부에서 탈퇴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현재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있는지. 이제 다시 팔레스타인과 협상을 시작할 것이다. 이 협상에서 성과가 없다면 완전히 갈라설 것이다. 정치에 입문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를 하리라곤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999년 네타냐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면서 시작했다. 주위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한국에 갔다가 돌아온 뒤 아버지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한국민들에게서 너무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과 한국은 많은 경제적 교류에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라말라·베들레헴=글·사진 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인터뷰 ㅣ 달리아 라빈

어떤 면에서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군사작전 전에는 어디에서나 자살폭탄테러가 횡행했는데 지금은 많이 잦아졌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군사작전의 수행은 필수적이었다고 본다. 아라파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버지와 아라파트는 함께 신뢰를 구축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다. 사실 아라파트가 신뢰한 사람은 오직 아버지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오슬로 평화협정을 파괴했다. 협정은 평화를 위한 기본수단으로 비폭력을 천명했다. 테러리즘과의 싸움을 위해 팔레스타인에 무기가 주어졌지만 이 무기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누가 당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나. 유대인 청년 혼자 했지만 저격의 배후가 있을 것이다. 샤론의 정책에 동의하는가. 우리가 연립정부에 참가할 당시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네타냐후와 바라크가 실패한 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립정부에서 탈퇴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현재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있는지. 이제 다시 팔레스타인과 협상을 시작할 것이다. 이 협상에서 성과가 없다면 완전히 갈라설 것이다. 정치에 입문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를 하리라곤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999년 네타냐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면서 시작했다. 주위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한국에 갔다가 돌아온 뒤 아버지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한국민들에게서 너무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과 한국은 많은 경제적 교류에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라말라·베들레헴=글·사진 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