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땅 이스라엘을 가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상징하는 곳…라말라의 검문소에서 울고 있는 병사와 주민들
아라파트의 사무실이 있는 라말라 입구에는 이스라엘군 검문소가 있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친절하게도 외국인들은 금방 지나갈 수 있게 편의를 봐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외부에서 라말라로 들어가기도 힘들 뿐더러 라말라를 빠져나오기도 힘들다. 언제나 줄을 서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차량이 지나가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까다롭게 자동차 안 구석구석을 검색하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가스탄을 꺼내다
아라파트 수반의 집무실에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검문소에는 거의 10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병사에게 바로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외국인이라는 장점 때문에 아무 제지 없이 통과할 수 있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줄은 계속 길어졌다.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강한 욕구 때문에 다시 라말라 방향으로 넘어갔다. 다시 넘어가려 했을 때 이미 검문소에는 누구도 통과할 수 없게 철책이 둘러쳐졌다. 라말라에 꼼짝없이 갇힐 수도 있으리란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군중들도 불안감에 사로잡혔는지 불만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한 팔레스타인 청년은 “검문소가 언제 열릴지 한 시간 뒤가 될지, 세 시간 뒤가 될지 다음 날이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앰뷸런스도 지나가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앰뷸런스가 자살폭탄 자원자를 싣고 검문소를 통과한 다음부터는 응급환자가 생겨도 통과하기 힘들어졌다고 일러준다. 필자도 다시 병사에게 다가가서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상부의 명령’이라면서 누구도 통과시킬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예루살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의 반 시간이 지났다. 함께 줄을 서 있던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지쳐갔다. 필자가 병사와 얘기하고 있던 순간 다른 곳에서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팔레스타인 청년과 노인이 이스라엘 병사들과 말다툼을 벌였다. 청년은 서류를 높이 들면서 “법원에서 받은 통과 허가증인데 왜 너희들이 못 가게 막느냐”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따분하게 기다리고만 있던 사람들은 대열을 이탈하여 하나둘씩 병사들 주위로 모여들었다. 병사들에게 항의하던 청년은 계속 감정이 격앙되었고 심지어는 욕설과 함께 “쏠 테면 쏴봐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결국 젊은 병사들이 감당하기가 힘들었던지 그 청년을 통과시켜줬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병사들 가까이로 몰려들어 개인사정들을 늘어놓으며 통과시켜줄 것을 간청하기 시작했다.
어떤 여자는 한 병사와 입씨름을 벌였다. “왜 저 사람들은 통과시키고 나는 기다려야 하나”라는 불만이 대부분이었다. 잠시 뒤 거동이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통과시켜줄 것을 부탁하자 병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는 갈등하는 빛이 역력했다. 아무도 통과시키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병사의 의무와 인간적인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노인을 통과시켜줬다. 불편한 걸음걸이로 길목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에서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 노인이 지나간 뒤 많은 사람들이 더욱 간절하게 개인적인 사정을 병사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혼돈 그 자체였다. 병사들도 감정이 격화하여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리던 줄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한 병사가 눈에서 눈물을 훔쳤다. 독하게 마음먹으리라 다짐했는지 가스탄을 터뜨렸다. 곧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렸다. 가스가 독해서라기보다는 병사들이 취한 행동이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모두들 당황한 모습이었다. 한 아버지가 아기를 안고 이리저리 가스를 피해 뛰어다녔다. 가스로 인해 눈물을 흘리면서 필자가 있는 곳으로 왔다.
한 중년의 팔레스타인 여성은 땅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가스를 마신 사람들은 고통에 시달렸다. 병사들 수는 일곱명밖에 되지 않지만 이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가스탄을 터뜨렸지만, 다음에는 군중들을 제압하기 위해 총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했을 것이다. 위기감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이때 한 병사가 사진을 찍는 필자가 부담스러운지 “빨리 통과하라”고 소리쳤다. 검문소를 거의 다 통과해서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조금씩 건너오고 있었다. 검문소는 조금씩 정상을 되찾았다. 맞은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라말라로 향하기 위해 검문소 앞에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맨 끝에 선 사람은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같은 대접을 받아야 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쓰러지기도
검문소 앞에서는 미니버스 기사들이 승객들을 불러모았다. 미니버스는 다른 검문소 앞까지만 운행했다. 미니버스에서 내린 뒤 걸어서 다른 검문소를 통과하면, 미니버스가 또 기다리고 있다. 그 버스를 타야만 검문소를 통과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말라의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던 차량들은 두세 시간은 같은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차량의 통과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고초로 인해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예 검문소를 통과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더구나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데, 어지간한 고통이 아니다. 약한 사람들은 더위를 먹고 쓰러지기도 한다.
다음날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예리코에서 에라캇 팔레스타인 지방정부 장관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하여 다시 차를 갈아탄 뒤 겨우 세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단 15분의 인터뷰를 위해 총 여섯 시간을 길에서 허비해야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의 고통이 어떠한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검문소에서 기다려야 하고 소지품 검사를 받고 다시 심문을 당하고 초조하게 통과를 기다려야 하는 그런 삶을 매일 살아간다. 예리코에 사는 한 농민은 검문소 때문에 농산물을 내다팔 수가 없다고 했다. 인티파다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은 검문소들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쪽은 ‘보안’을 내세우면서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라말라·베들레헴=글·사진 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사진/ 라말라 검문소를 통제하는 이스라엘 병사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몇 시간을 기다려도 통화하기 어렵다.

사진/ 이스라엘군이 지나간 베들레헴 거리. 공격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