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고려로 인해 발매 중지된 일본 그룹 포클의 <임진강> CD로 재발행
명필름의 심재명 사장은 지난 5월9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가 홍콩에서와 달리 일본에서 히트를 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관객들이 남북분단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비극을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도 했다. 그렇다. 하지만 단지 가까운 나라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일본사람들이 남북분단의 비극에 공감한 것일까.
담 넘어 들리는 노래에 넋 잃어
최근 일본에서는 한반도의 통일을 노래했다가 발매중지된 곡이 34년 만에 CD로 재발매되었다. 지극한 정성을 보더라도 남북분단에의 공감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30여년의 세월을 거쳐 이번에 다시 햇볕을 보게 된 곡은 남북분단의 비극과 한반도 통일의 염원을 노래한 <임진강>. 1968년 레코드 싱글앨범으로 발매하려고 했지만, 정치적 문제의 불씨가 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 발매 직전 발매 중지 조치가 내려진 곡이다.
이번에 재발매된 임진강을 부른 그룹은 1968년 당시 ‘일본의 비틀스’라고 까지 불린 대학생 3인조 포크송 그룹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포클·the Folk Crusaders)다. 십자군 전사나 개혁운동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들 그룹에게 이 곡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일본어 가사를 쓴 마쓰야마 다케시. 그가 중학교 시절, 재일교포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이 날마다 패싸움만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싸움 대신 축구시합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러 교토 은각사 부근에 있는 교포 학교에 갔다가 이 곡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축구시합 제안에 대해 오케이 사인을 받아 가지고 나오는 중에, 교포 학교 담 너머 몇몇 여학생들이 부르던 <임진강> 노랫소리에 그는 그만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고 한다. 당시 학교 밴드부였던 그는 곧바로 트럼펫을 들고, 늘 연습하던 긴 다리 위에 올라 그 곡을 불어보았지만 그대로 재현하기엔 역부족. 그때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난다. 역시 다리 반대편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던 재일교포 학생을 만나게 되는데, 그 역시 연습할 장소를 찾아온 교포학교 학생이었다. 마쓰야마는 그 학생에게서 <임진강>의 곡과 가사를 전해받았다. <임진강>은 마쓰야마를 통해 그의 친구인 포클의 가토에게 전달되었다. 그룹 포클은 그 곡이 신민요쯤 된다고 생각해 원래의 작사자나 작곡자에 관해 신경쓰지 않은 채 그냥 레코드화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총련 쪽에서 원곡 <림진강>의 작사자와 작곡자가 엄연히 있는데, 이를 명기하지 않고 그냥 레코드화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음반을 발매하려던 도시바 레코드사는 이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만 발매중지 조치를 내리고 말았다. 원곡 <림진강>은 1953년경 북한에서 만들어졌다. 이 곡을 작사한 이는 1920, 30년대 무렵 <산제비> 등의 시집을 낸 바 있는 카프 시인 박세영이다. 한국전쟁 직후에 만든 곡이라 그룹 포클이 부른 노래보다 내용이 훨씬 거칠다. 가사 1절은 그룹 포클의 가사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2절로 넘어가면 곡은 갑자기 선전문구화하고 만다.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분단의 슬픔을 노래하던 1절도 끝부분에 이르면 역시 거칠다. “임진강 맑은 물은 남북을 오가며 흘러들고, 물새들 역시 남과 북을 자유로이 넘나들지만, 사람들은 어이하여 가고파도 못 가는지”를 노래하던 곡은 “림진강 흐름아 원한싣고 흐르느냐”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포클판은 “임진강이여 하늘 저 멀리 무지개를 걸어 주렴… 임진강 맑은 물 잘도 흐르누나”로 바뀌었다. ‘원한’을 임진강에 흘려보내는 대신, ‘무지개’를 임진강에게 걸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곡도 차이가 난다. 조청미 독창곡집에 실린 곡은 장중한 가곡풍이지만, 포클판 임진강은 아주 경쾌한 포크 계열의 곡이라서 당시 젊은이들의 취향에 잘 맞았던 것 같다. 임진강은 그 뒤 발매중지되었음에도 끊임없이 콘서트 등에서 불렸다. 미야코 하루미를 비롯해 일본에서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서전 올스타즈의 구와타 게이스케, 오키나와 가수 릿키 등이 꾸준히 불러온 것이다. 88년도에는 <후지텔레비전>의 ‘방송금지가요’ 프로에서 특집으로 다뤄지기도 했지만, 98년엔 방송금지에서 해금되었다. 지난해 말엔 가수 김연자 씨가 일본 가요홍백전에서 한·일 월드컵축구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요시오카 오사무 씨 버전의 <임진강>을 부르기도 했다.
68년의 메시지, 변한 것은 없다
야후 저팬으로 검색하면 600개가 넘는 임진강 관련 사이트들이 있다. 이런 열화와 같은 팬들의 CD 발매 요구에 부흥해 아겐토 콘시피오 레크드사는 어려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올 봄 포클의 68년도판 <임진강>을 CD로 재발매해내었다.
이번에 발매된 CD <임진강>을 부른 그룹 포클은 가토 와히코, 기타무라 오사무, 하시다 노리히코 3명으로 구성된 대학생 포크송 그룹이다. 활동기간은 1968년 단 1년뿐이었다. 아마추어 시절 졸업기념으로 제작한 자비제작 음반 <하렌치>에 수록된 ‘돌아온 술꾼’이란 곡이 대히트를 하자 이를 메이저 레코드사에서 상업음반화했는데, 72년이 되어서야 싱글음반 판매 1위 자리를 내줄 정도로 당시 인기는 엄청났다.
‘돌아온 술꾼’에 이어 발매될 예정이던 두 번째 싱글앨범 <임진강>이 발매중지되자 당시 팬들 사이에선, 포클의 또 다른 곡인 ‘슬퍼서 참을 수 없다’라는 곡은 포클의 가토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임진강> 테이프를 역회전해 그 선율을 토대로 만든 곡이란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월남전 반대와 자유를 노래한 포크송들이 크게 유행한 68년의 일본. <임진강>이란 노래도 그 같은 당시의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곡이라 할 수 있다. 발매중지에서 재발매되기까지 무려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반도의 분단상태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평화와 희망을 노래한 당시의 메시지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도쿄=글·사진 신명직 mjshin59@hotmail.com

사진/ <임진강>을 부른 그룹 포클의 전성기였던 1968년 모습. <돌아온 술꾼>이란 곡이 대히트를 쳤다.

사진/ 포클의 앨범 재킷. 평화를 기원하는 임진강 강물이 남과 북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흘러들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에 재발매된 임진강을 부른 그룹은 1968년 당시 ‘일본의 비틀스’라고 까지 불린 대학생 3인조 포크송 그룹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포클·the Folk Crusaders)다. 십자군 전사나 개혁운동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들 그룹에게 이 곡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일본어 가사를 쓴 마쓰야마 다케시. 그가 중학교 시절, 재일교포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이 날마다 패싸움만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싸움 대신 축구시합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러 교토 은각사 부근에 있는 교포 학교에 갔다가 이 곡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축구시합 제안에 대해 오케이 사인을 받아 가지고 나오는 중에, 교포 학교 담 너머 몇몇 여학생들이 부르던 <임진강> 노랫소리에 그는 그만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고 한다. 당시 학교 밴드부였던 그는 곧바로 트럼펫을 들고, 늘 연습하던 긴 다리 위에 올라 그 곡을 불어보았지만 그대로 재현하기엔 역부족. 그때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난다. 역시 다리 반대편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던 재일교포 학생을 만나게 되는데, 그 역시 연습할 장소를 찾아온 교포학교 학생이었다. 마쓰야마는 그 학생에게서 <임진강>의 곡과 가사를 전해받았다. <임진강>은 마쓰야마를 통해 그의 친구인 포클의 가토에게 전달되었다. 그룹 포클은 그 곡이 신민요쯤 된다고 생각해 원래의 작사자나 작곡자에 관해 신경쓰지 않은 채 그냥 레코드화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총련 쪽에서 원곡 <림진강>의 작사자와 작곡자가 엄연히 있는데, 이를 명기하지 않고 그냥 레코드화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음반을 발매하려던 도시바 레코드사는 이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만 발매중지 조치를 내리고 말았다. 원곡 <림진강>은 1953년경 북한에서 만들어졌다. 이 곡을 작사한 이는 1920, 30년대 무렵 <산제비> 등의 시집을 낸 바 있는 카프 시인 박세영이다. 한국전쟁 직후에 만든 곡이라 그룹 포클이 부른 노래보다 내용이 훨씬 거칠다. 가사 1절은 그룹 포클의 가사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2절로 넘어가면 곡은 갑자기 선전문구화하고 만다.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분단의 슬픔을 노래하던 1절도 끝부분에 이르면 역시 거칠다. “임진강 맑은 물은 남북을 오가며 흘러들고, 물새들 역시 남과 북을 자유로이 넘나들지만, 사람들은 어이하여 가고파도 못 가는지”를 노래하던 곡은 “림진강 흐름아 원한싣고 흐르느냐”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포클판은 “임진강이여 하늘 저 멀리 무지개를 걸어 주렴… 임진강 맑은 물 잘도 흐르누나”로 바뀌었다. ‘원한’을 임진강에 흘려보내는 대신, ‘무지개’를 임진강에게 걸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곡도 차이가 난다. 조청미 독창곡집에 실린 곡은 장중한 가곡풍이지만, 포클판 임진강은 아주 경쾌한 포크 계열의 곡이라서 당시 젊은이들의 취향에 잘 맞았던 것 같다. 임진강은 그 뒤 발매중지되었음에도 끊임없이 콘서트 등에서 불렸다. 미야코 하루미를 비롯해 일본에서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서전 올스타즈의 구와타 게이스케, 오키나와 가수 릿키 등이 꾸준히 불러온 것이다. 88년도에는 <후지텔레비전>의 ‘방송금지가요’ 프로에서 특집으로 다뤄지기도 했지만, 98년엔 방송금지에서 해금되었다. 지난해 말엔 가수 김연자 씨가 일본

사진/ 북한 가곡 <림진강>을 부른 조청미의 독창전집 재킷 사진. 포클의 노래와는 달리 장중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