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여성정치 ㅣ 팔레스타인
네탄야후를 녹다운시킨 하난 아쉬라위… 고위직 없지만 저변 확대에 주력 중
1991년이었다. 장소는 스페인의 마드리드. 행사 제목은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회의’. 이스라엘은 최고의 공보단을 구성했다. 팔레스타인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영문학 교수 하난 아쉬라위 박사를 대변인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6일이 지난 뒤, 국제언론은 만장일치의 판정을 내렸다. “팔레스타인의 아쉬라위가 이스라엘의 대변인을 녹다운시켰다.” 당시 이스라엘의 대변인은 뒷날 총리가 된 벤야민 네탄야후였다.
아랍 여성의 정치참여는 불가능?
다시 1995년. 이번에는 장소가 팔레스타인의 라말라. 행사 내용은 ‘팔레스타인 의회와 대통령 선거’. 다섯명의 여성들이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발랏타 난민촌 출신의 스물여덟살 먹은 여성 달랄 살라메는 팔레스타인 입법위원회 최연소자 기록을 남겼다. 사미하 하릴은 팔레스타인 행정기구 대통령 자리를 놓고 기세등등했던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도전장을 던져 18%라는 놀랄 만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2년 3월. 장소는 요르단의 주에이다 형무소. 요르단 정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인터넷을 통해 압둘라 2세 국왕에게 발송한 죄목으로 체포당했던 여성의원 토우잔 파이잘이 항의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위에 열거한 일련의 사건들은 아랍 여성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편견, 말하자면 아랍 여성은 정치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잘 어울리지 않는 본보기가 될 성싶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 사이에 아직 여성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성을 주장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비록 요즘 들어 아랍 의회와 정부의 고위직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마디로 최근 아랍의 여성정치 현실은 시민단체와 비정부기구들을 통한 저변 확충에 주력하고 있는 단계라 부를 만하다.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무엇이 최고의 전략인가를 놓고 자주 격론들을 벌이고 있는데, 아마도 현재 시점을 여성들의 직접적인 정치무대 진입의 전단계로 규정해서 여성들이 사회문제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식으로 방향을 잡아가고는 모양새다. 팔레스타인처럼 외국의 침략을 당하고 있는 특수한 경우의 사회에서는 여성들도 민족해방투쟁에 남성들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지만, 그 이외의 대부분 아랍 사회에서는 여성 전략이 주로 여성의 사회적 권리라든가 또는 국제 표준의 민주주의에 적합한 복수정당제 같은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현상들로 아랍 여성들의 정치운동이 부패한 반민주적 정권을 직접적인 타격목표로 설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독무대였던 민주화 투쟁에 광범위하게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권리 주장 부문에서도 남성들과 동등한 자격을 갖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정치적 민주주의 없이는 여성개발도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의미심장한 변화다.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 또 있다. 법적 지원 없이는 여성의 사회진출도 정치화도 불가능하다는 인식 아래 종교법(이슬람)과 사회법 사이의 긴장 해소에 여성들이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코란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 남성들이 해석해온 샤리아법이 과연 이슬람 사회 속에서 여성들에게 어떤 지위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찾아 정확히 해석하지는 뜻이다. 그 결과 코란 속에서 가장 훌륭히 교육받은 여성들이 이슬람의 뼈대를 이루고 있음을 여러 시구 속에서 찾아낸 여성운동가들은 코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왜 그들은 코란을 공부하는가
아랍과 이슬람 세계 속에서 여성은 참 고단한 길을 걸어왔다. 아쉬라위나 페이잘과 같은 여성의 역할은 상징적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남성정치의 오랜 전통 속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념 같은 걸 심어준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
다른 아시아 지역처럼 아직 여성총리나 대통령 같은 최고정치가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그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른 아시아 지역의 여성정치가들의 경우와 달리, 왕조가 굳건한 아랍사회에서 가문의 배경을 업고 탄생하는 여성 최고정치가 방식 같은 건 아랍에서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저변 확대를 통한 진정한 여성정치의 실현, 이게 아랍 여성들과 아랍 사회의 갈 길이고 희망이다. 비록 아직은 멀지만.

사진/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ㅣ 전 <알쿠드스 신문> 기자·칼럼니스트
다시 1995년. 이번에는 장소가 팔레스타인의 라말라. 행사 내용은 ‘팔레스타인 의회와 대통령 선거’. 다섯명의 여성들이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발랏타 난민촌 출신의 스물여덟살 먹은 여성 달랄 살라메는 팔레스타인 입법위원회 최연소자 기록을 남겼다. 사미하 하릴은 팔레스타인 행정기구 대통령 자리를 놓고 기세등등했던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도전장을 던져 18%라는 놀랄 만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2년 3월. 장소는 요르단의 주에이다 형무소. 요르단 정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인터넷을 통해 압둘라 2세 국왕에게 발송한 죄목으로 체포당했던 여성의원 토우잔 파이잘이 항의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위에 열거한 일련의 사건들은 아랍 여성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편견, 말하자면 아랍 여성은 정치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잘 어울리지 않는 본보기가 될 성싶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 사이에 아직 여성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성을 주장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비록 요즘 들어 아랍 의회와 정부의 고위직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진/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회의에서 이스라엘의 벤야민 네탄야후를 녹다운시켰던 하난 아쉬라위. 아랍 여성은 정치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은 편견일 뿐이다. (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