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장애인 프리티의 안락사 승인 소송 기각… 죽을 권리는 존재할 수 없는가
4월29일 오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인권재판소는 전례없는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영국의 전신마비 장애인 디앤 프리티(43)가 생명을 끊을 수 있도록 남편이 돕게 해달라는 제소에 대해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죽을 권리를 두고 재판소가 사상 처음으로 판결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유럽상임위원회의 44개 국가들이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고 있었다.
프리티는 1999년부터 불치의 퇴행성신경장애로 목부위부터 발까지 전신이 마비된 상태다. 아직까지 의식은 있지만 표현기능도 마비되어 음향분석기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프리티는 영국 법원에서 이미 패소한 상태였다.
능동적 안락사도 허용하는 네덜란드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영국 법원은 남편 브라이언 프리티가 자살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고 판정내렸다. 영국에서 자살은 무죄지만 자살방조는 살인에 버금가는 범죄여서, 최고 14년형까지 받을 수 있다. 프리티는 포기하지 않고 지난해 12월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는 곧 ‘삶에 대한 권리’(인권에 관한 유럽협정 2장)를 행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므로, 영국 재판소가 내린 판결은 반인권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날 프리티 부부의 참관하에 유럽인권재판소의 7명의 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영국 법원의 판결에 하자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리곤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자살이 불가능한 사람을 위해 예외적 판례를 만드는 일은, 모든 남용에 대항하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법을 심각하게 흔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로써 프리티의 죽을 권리는 또다시 부인됐다. 안락사는 크게 ‘능동적 안락사’와 ‘수동적 안락사’로 구분된다. 능동적 안락사는 특정인이 죽음을 돕는 것을 말하며, 수동적 안락사는 치료를 중단하여 자연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안락사를 금기시하나 몇개 국가가 수동적 안락사와 능동적 안락사를 구별하여 합법화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가 지난해 4월부터 당국의 관리 아래 행해지는 능동적·수동적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고통 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모든 환자는 안락사를 요구할 수 있다. 12∼16살의 환자는 그의 부모가 결정하며, 16살 이상은 부모와의 합의를 권유하지만, 당사자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 이어 벨기에가 의사들의 검토를 거쳐 안락사를 허용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덴마크에서는 합법은 아니지만 환자 자신이 의사의 약물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프랑스는 능동적·수동적 안락사를 차별하여 형을 가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안락사는 불법인데,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만행 탓으로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터부시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자살방조죄는 범죄에는 속하지만 형벌을 받아야 하는 범죄는 아니며, 스코틀랜드에서는 합법은 아니지만 1996년에 안락사가 허용된 경우가 있다. 능동적 안락사를 금지하는 영국에서도 수동적 안락사는 상황에 따라 합법화된 경우가 더러 있다. 지난 3월22일에도 영국 고등법원이 수동적 안락사 한건을 가결했다. 일명 ‘B양’으로 알려진 이 환자는 프리티와 같이 전신마비 상태이고 인공호흡기로 연명해왔다. 호흡기를 떼달라는 그의 요청이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지난 4월24일 잠든 사이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안락사 과정을 공개한 라몽의 비디오
한편, 바티칸과 불교계는 4월 초 인공유산, 안락사, 9·11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 있다. 가톨릭과 불교계는 다시 한번 ‘자연사를 기본으로 하는 삶에 대한 권리’를 제창했다. 하지만 삶에 대한 권리는 수많은 의문을 제기한다.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삶의 권리는 죽음보다 빛나는가. 자연사만을 인정하는 종교계는 이 문제에 대해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다.
‘인권에 관한 유럽협약’ 중 ‘권리와 자유에 관한 장’의 제3항에는 ‘고문금지’라는 조항이 있다. “누구(아무것)도 고문 및 비인간적 취급이나 고통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바로 이번 프리티 소송에서 변호인 쪽이 주로 언급한 조항이다. 프리티에게 생명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고문을 받게 한다는 주장이다. 변호인단은 살아가는 것이 치명적인 고통이 되는 병을 앓는 사람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인간답게 품위있게 죽어갈 수 있는 권리’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죽을 권리는 아직까지 인권조항에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다. 인권에 관한 유럽협약 제2항은 ‘삶에 대한 권리’를 명기하고 있다. “모든 이의 삶에 대한 권리는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어떠한 의도로도 누군가를 죽게 해서는 안 되며, 법정에서 판정된 경우만을 예외로 한다. 법정은 범행을 판별할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죽음은 아직까지 인권조항에서 삶에 대한 권리의 해석을 보충하기 위한 기능만을 가질 뿐이다.
법은 죽을 권리는 범죄에 다름아니라고 외친다. 그런가 하면 안락사를 갈구하는 이들은 삶이 더 이상 권리가 되지 못하고 강요될 때는 죽을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외치며, 그들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을 호소한다.
삶과 죽음의 권리와 관련해 서유럽에서 크게 논란을 일으킨 사건 중에 라몽 생페드로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스페인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1993년 전신마비로 침대에 묶여 지내지만 의식은 멀쩡했던 라몽은 안락사 인정을 법원에 요청했다. 그가 25년 동안 갈구해온 안락사였다. 가톨릭 전통이 깊은 스페인 사회에서 안락사, 특히 능동적 안락사는 금지되어 있었다. 무신론자인 라몽은 수차례에 걸쳐 소송을 제기했지만, 특히 종교계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늘 패소하고 말았다. 당시 라몽의 의지는 스페인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5년간의 투쟁에도 법정에서 승인을 받지 못한 라몽은 1998년 1월 안락사를 실행에 옮겼으며, 법을 거역하면서까지 안락사를 행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남겼다. 라몽은 언론사에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며 이렇게 밝혔다. “안락사가 비밀리에만 이루어진다면 계속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안락사 장면을 촬영해서 남기겠다.”
그리고 자신이 ‘죽음의 천사들’이라고 부른 이들을 따로 불러모았다. 누군가 비디오를 촬영하고, 누군가는 청산가리를 사오고, 누군가는 청산가리를 물에 타서 잔에 따르고 빨대를 꽂고…. 라몽 자신은 침대에서 미소를 지으며 죽어갔다. 라몽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라 참여한 사람들 중 누구도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도록 촬영되었다. 그러고도 법적인 조사나 처벌을 염려한 라몽은 ‘죽음의 천사들’을 위해 유언을 남겼다. “만일 나를 도운 이를 처벌하려거든, 차라리 그의 손이나 다리를 자르십시오. 왜냐면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나의 부탁을 들어준 것뿐이니까요… 사는 것은 권리지 강요가 아니잖아요….”
남편의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이라는 까다로운 문제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안락사는 라몽 사건처럼 기구한 삶과 고통의 드라마를 동반한다. 4월29일 내린 판결에 대해 남편인 브라이언 프리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편으로 프리티가 좀더 내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반가움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가 그토록 갈구하는 죽음에 대한 선택이 존중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의 당연한 반응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그 연민을 합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고귀한 ‘삶의 권리’가 한꺼번에 심판대에 올려져 진퇴양난을 겪는 모습이다. 모든 법이 그렇듯이 법은 남용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안락사가 가는 여정이 곧 ‘죽는 문화’를 형성하고 가꾸는 일임을 고려하면, 안락사가 거쳐야 할 여정은 아득해 보인다.
파리=이선주 통신원 oseyo@libertysurf.fr

사진/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프리티 부부. 유럽인권재판소는 결국 프리티의 죽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GAMMA)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영국 법원은 남편 브라이언 프리티가 자살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고 판정내렸다. 영국에서 자살은 무죄지만 자살방조는 살인에 버금가는 범죄여서, 최고 14년형까지 받을 수 있다. 프리티는 포기하지 않고 지난해 12월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는 곧 ‘삶에 대한 권리’(인권에 관한 유럽협정 2장)를 행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므로, 영국 재판소가 내린 판결은 반인권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날 프리티 부부의 참관하에 유럽인권재판소의 7명의 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영국 법원의 판결에 하자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리곤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자살이 불가능한 사람을 위해 예외적 판례를 만드는 일은, 모든 남용에 대항하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법을 심각하게 흔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로써 프리티의 죽을 권리는 또다시 부인됐다. 안락사는 크게 ‘능동적 안락사’와 ‘수동적 안락사’로 구분된다. 능동적 안락사는 특정인이 죽음을 돕는 것을 말하며, 수동적 안락사는 치료를 중단하여 자연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안락사를 금기시하나 몇개 국가가 수동적 안락사와 능동적 안락사를 구별하여 합법화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가 지난해 4월부터 당국의 관리 아래 행해지는 능동적·수동적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고통 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모든 환자는 안락사를 요구할 수 있다. 12∼16살의 환자는 그의 부모가 결정하며, 16살 이상은 부모와의 합의를 권유하지만, 당사자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 이어 벨기에가 의사들의 검토를 거쳐 안락사를 허용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덴마크에서는 합법은 아니지만 환자 자신이 의사의 약물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프랑스는 능동적·수동적 안락사를 차별하여 형을 가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안락사는 불법인데,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만행 탓으로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터부시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자살방조죄는 범죄에는 속하지만 형벌을 받아야 하는 범죄는 아니며, 스코틀랜드에서는 합법은 아니지만 1996년에 안락사가 허용된 경우가 있다. 능동적 안락사를 금지하는 영국에서도 수동적 안락사는 상황에 따라 합법화된 경우가 더러 있다. 지난 3월22일에도 영국 고등법원이 수동적 안락사 한건을 가결했다. 일명 ‘B양’으로 알려진 이 환자는 프리티와 같이 전신마비 상태이고 인공호흡기로 연명해왔다. 호흡기를 떼달라는 그의 요청이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지난 4월24일 잠든 사이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안락사 과정을 공개한 라몽의 비디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