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여성정치 ㅣ 네팔
확고한 가문배경 가진 여성 거물이 없는 현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여성의 힘으로
네팔이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까닭이 사회로부터 가정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지위가 전혀 개발되지 못한 탓이라는 데 이견을 달 만큼 ‘간 큰’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세계적으로 희귀하게도 네팔은 사하라 지역과 함께,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수명이 긴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인구 10만명당 출산시 사망하는 여성의 사망률이 500명에 이르는 현실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네팔 여성의 건강상태가 극적으로 좋아졌고 문맹률이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아직도 네팔 전체 여성의 30%만이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상태다.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수명이 긴 나라
정치판도 예외가 아니다. 205명의 하원의석 가운데 14명, 상원 65석 가운데 7명 그리고 내각의 장관 35명 가운데 여성·아동복지장관 한 자리만 여성이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여성 현실을 놓고 보면 아시아의 다른 사회들처럼 여성 최고정치가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네팔에서는 희박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네팔에서는 혈통을 배경삼은 여성정치가의 배출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아시아 각국의 여성정치가들이 확고한 가문의 배경을 업고 정치적 입문 자체가 총리나 대통령 자리와 직결되었던 것과 달리, 네팔 사회에서는 그럴 만한 카리스마를 지닌 민족적 영웅도 정치적 세도를 부릴 만한 가문도 없는 탓이었다. 따라서 미래의 네팔에서 여성 최고정치가가 등장한다는 의미는 다른 아시아의 경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른바 ‘여성의 힘’에 의한 ‘여성의 출현’만이 유일한 방식이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현실적인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현재 네팔의 여성정치는 나름대로 잠재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네팔의회당 출신 의원이자 현재 하원 부의장인 치트라 레카 야다브 같은 이들은 여성정치의 잠재력 확대를 위해 성차별 요소를 지닌 법률 개정작업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는 여성의 재산권 인정과 독립 없이는 여성정치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주목한 경우다. “여성들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상속권과 재산권을 인정해야만 여성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을 수 있고, 그런 다음에 정치세력화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큰 공감대를 형성했고 결국 지난 5년간의 지난한 투쟁 끝에 최근 의회가 재산권 평등법안을 통과시키며 여성의 세력화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돌이켜보면 이 법안이 논쟁을 일으키는 사이에 남성들은 갈 데까지 갔다. “여성들이 문란한 성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한 남성 중진의원은 여성 재산권 행사의 평등을 규정한 이 법안을 제지하며 그렇게 악을 썼다. 비록 여성의 상속·재산권 인정 법안이 여성들의 희망을 완전히 충족해주지는 못했지만, 네팔 여성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중대한 첫걸음을 내디딘 사건이었다.
울미라 아리얄의 가능성
그런가 하면 울미라 아리얄 의원 같은 이들은 직접 나서 정치조직을 확장하면서 네팔 여성정치의 가능성을 한 단계 올려놓은 경우라 할 만하다. 네팔 공산당(막시스트-레니니스트 연합파)이 지하에 있을 때부터 조직에 참여한 뒤, 공개적인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지만, 낙담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며 지역구를 갈고 닦아 결국 성공적으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이루어냈다. “의회 내에서도 여성을 고위직에 올려놓는 일을 별로 유쾌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여성의 계절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 아리얄의 말을 통해 네팔 여성들은 미래의 정치판에 한줄기 빛을 본 셈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네팔에서는 다른 아시아 지역들과 달리, 거물 여성정치가들을 볼 수는 없지만, 시민들 속에 뿌리내리며 차근차근 여성 정치세력화를 추구해나가는 씩씩한 걸음들이 있다. 야다브 의원, 아 의원 그리고 유일한 여성장관 카말라 판트가 그 이름들이고, 그들의 행진 속에서 네팔 여성정치의 미래는 먼 길을 향해 숨을 고르고 있다.

사진/ 쿤다 딕시트(Kunda Dixit) ㅣ <네팔리타임즈>의 발행인 겸 편집자

사진/ 네팔의 여성들. 서차별적 법률 개정작업이 최근 빛을 보고 있다.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