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모사식 비극의 뿌리에서 피어난 꽃, 아시아의 여성정치를 냉정하게 더듬어본다
“탄수 무트파가”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탄수는 부엌으로 돌아가라”란 뜻인데, 1993년 탄수 실러가 터키에서 최초로 여성총리가 되자 남성 정적들이 퍼부은 말이다.
“국가 운영 경험이라곤 전무한 가정주부에게 표를 줄 것인가?” 1980년대 중반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가 코라손 아키노를 혹평하면서 한 유명한 말이다. 모두 아시아의 여성정치 현실을 잘 드러낸 대표적인 잡담들이었다.
10명의 최고위 정치인, 두 갈래의 논란
여성정치. 이 불량한 용어는 마치 ‘여류시인’이란 말처럼 성의 불평등을 압축하고 있지만, 달리 남성들이 판을 치는 ‘정치’란 용어로부터 여성을 구분해낼 만한 묘수가 없어서 쓰는 난처한 표현이고, 이게 바로 여성들이 처한 난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차별 속에서도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10명의 여성 최고위직 정치인-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 제외- 이 탄생하는 ‘기적’은 벌어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남근중심적 폐쇄지역으로 꼽히는 아시아에서 여성대통령과 총리를 배출한 ‘사태’를 놓고 정치학자들 사이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대개 논란이 두 갈래였는데, 가문의 배경을 업고 태어난 전근대적 족벌정치의 전형이라는 비판론이 하나였다면, 여성의 정치학습과 조직화가 힘든 사회적 조건 속에서 선택된- 그것이 혈통이든 가문이든- 여성을 통해서나마 정치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긍정론이 다른 하나였다. 그러나 논쟁에 쐐기를 박은 분야는 오히려 여성 최고위직 정치인을 배출한 나라들의 여성 자신들이었다. “아키노와 아로요라는 두명의 여성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여성 부문의 사정이 개선된 건 전혀 없다.” 필리핀 대학의 교수이자 언론인이며 ‘아시아 네트워크’의 칼럼니스트인 마리테스 시손 같은 이들은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인도네시아의 여성운동가이자 기자인 크리쉬나 같은 이들은 “메가와티는 여성을 배반한 여성이며 남성보다 못한 여성이다”라고 골 깊은 반감을 드러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해당국 여성들이 지닌 낭패감은 거의 공통된 현상이고, 특히 교육받은 전문직 여성들이나 사회운동 부문에 종사하는 여성들 사이에서는 여성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실제로 최고위직에 오른 여성정치인들의 인생항로를 눈여겨본다면 해당국 여성들의 분노를 짐작할 만도 하다. 일생 동안 버스 한번 타본 적 없고, 설거지 한번 해본 적 없는 귀족적인 삶을 산 여성이, 늘 주변의 환대를 받으며 남 귀한 걸 느껴볼 겨를도 없이 산 여성이 어느 날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었다고 상상해본다면 말이다. “그이들에게는 여성성조차 희박하다. 일생 동안 여성으로서의 어려움 같은 걸 느껴보지도 못한 데다, 처음부터 여성을 위한 또는 여성의 대표로 총리나 대통령이 된 경우가 아닌 탓이다.” 인도 언론인 티나의 말마따나 최고위직에 오른 아시아 여성정치인들이 심각하게 여성문제를 고민했다거나 성차별 타파를 위해 애쓴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여성과 아동복지 부문에서조차 뚜렷한 단서를 찾을 수 없고, 여성 관련법들의 차별적인 조항들은 눈길 한번 받지 못한 실정이니, 여성을 위해 여성대통령을 기대했던 아시아의 여성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꼴이 되고 말았다. 가문정치의 후광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었던- 현직을 포함해서- 여성정치인 10명과 추후 최고위직을 차지할 것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2명의 야당대표는 어떤 사회적 배경과 경로를 통해 정치판에 진입할 수 있었던가? 해당국가들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개발도상국으로 제3세계 가운데서도 비교적 폐쇄적인 유형의 사회·문화권에 속하며, 정치적 혼란을 거듭해왔다는 공통성을 지녔다. 예외를 꼽으라면 종교적 차별성 정도가 두드러질 뿐이다. 세계 최초의 여성총리인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와 그녀의 딸인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현 대통령의 스리랑카나 1990년 군사독재 정권으로부터 총선 압승이라는 결과를 강탈당한 뒤 지난한 민주화 투쟁을 벌이고 있는 버마의 아웅산 수지가 모두 전통적인 불교사회 출신이라면, 인디라 간디 총리와 그녀의 며느리로 차기 선거를 통해 총리직 당선이 유력한 소냐 간디는 힌두교, 그리고 필리핀의 두 여성대통령 아키노와 아로요는 가톨릭 중심사회에서 각각 태어났다. 이슬람의 경우는 어땠을까? 보수적인 종교와 현대적 의미의 여성정치 사이에 가장 긴장감이 높은 지역으로 여길 법한 이슬람 사회가 오히려 여성정치인에게 더 큰 관용을 베풀었다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이슬람 사회 최초의 여성총리가 된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는 2번이나 총리직을 수행했고, 방글라데시는 아예 1991년부터 12년째 쉐이크 하시나와 베굼 하레다 지아 두명의 여성총리가 두번씩 주거니 받거니 총리직을 독점해오고 있다. 터키와 인도네시아도 각각 탄수 실러 총리와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었다. 따라서 여성정치인 출현에는 어떤 종교적 사회문화도 특별한 지지나 장애요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없고, 결국 핵심은 출신성분이고 가문의 후광으로 좁혀지고 만다. 특히 족벌정치의 표적이 되어온 인도나 스리랑카의 경우는 가히 왕조시대를 연상케 할 만한데, 1947년 인도의 독립과 함께 초대 총리를 지낸 네루를 시발점으로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가 총리직에 올랐다가 암살당하자 손자인 라지브 간디가 총리직을 받았고 다시 그가 암살당하자 이번에는 손자며느리인 소냐 간디가 최대 야당인 의회당을 이끌고 차기 총리직을 거의 예약한 상태다. 그녀의 뒤를 이어 증손녀인 프리얀카 간디도 정치판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50여년간 4대가 총리직을 대물림하며 현대정치사에 전무후무한 가문정치의 기록을 남기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 가문도 이 점에서 만만찮은 경쟁자다. 아버지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총리가 암살당하자 어머니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가 총리직을 물려받았고, 쿠마라퉁가 자신은 남편이 암살당한 뒤 정치판에 입문해서 대통령이 된 경우다. 40여년 동안 2대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총리를 지냈고 그 딸이 대통령을 하면서 정치판을 독식했다. 다른 여성정치인들도 아버지나 남편이 독립전쟁기의 민족영웅이었거나 총리나 대통령을 지냈으니, 가문의 후광을 입지 않고 자력으로 온전하게 최고위직에 올랐다고 보기는 힘들다. 터키의 탄수 실러 총리와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예외이긴 하지만, 사실은 탄수의 아버지도 지방의 유명한 정치인이었고 코라손도 남편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이 당시 마르코스에 대적할 만한 야당 정치인이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역시 이들도 가문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경우다. 그러나 “가문정치의 후광이 여성정치인 등장 배경의 모든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느슨한 기분이 든다. 결국 좀더 추적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끄집어낼 수 있다. 아시아의 여성정치인들은 저마다 아버지나 남편이 암살당한 비극적 결함- 비평용어와는 무관한- 을 지녔고, 바로 이 지점이 아시아 여성정치의 배출구가 아니었나 눈여겨볼 만하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하여”라는 베나지르 부토의 말과 “암살당한 남편을 대신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라는 코라손 아키노의 말에서 여성정치인 출현 과정의 동질성을 짚어볼 만하다. 환상에 포박당하지 말자 아웅산 수지는 아버지인 버마 독립의 영웅 아웅산 장군을, 쉐이크 하시나는 아버지인 방글라데시 독립의 영웅 방가반두를, 베굼 하레다 지아는 남편인 지아 울 라흐만 대통령을, 쿠마라퉁가는 아버지인 또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는 남편인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총리를, 베나지르 부토는 아버지인 지아 울 하크 총리를, 코라손 아키노는 남편인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을, 그리고 소냐 간디는 시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총리와 남편인 라지브 간디 총리를 각각 암살로 잃은 뒤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메가와티는 아버지 수카르노 대통령이 암살당한 경우는 아니지만 카운트쿠데타로 실권함으로써 유사한 경로를 거쳤다고 본다면, 디오다도스 마카파갈 대통령의 딸인 아로요 대통령과 한 지방정치인의 딸인 탄수 실러 정도만 예외가 될 뿐이다. 이렇듯 아시아 현대 여성정치사는 ‘살모사식’ 비극의 뿌리에서 싹을 틔웠다. 수장을 잃은 정치조직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카리스마를 지닌 후계자의 필요성과 만만하게 부릴 만한 운용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인물을 선택해서 집요하게 줄기를 다듬었고, 인정주의적 문화가 지배하는 아시아 시민사회는 연민의 정으로 적절하게 보답함으로써 가지를 뻗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 정치적 문화라는 잎이 허약한 아시아에서 만개한 여성정치의 꽃을 보기에는 계절이 너무 이른 감이 든다. 아시아의 시민들이 어떤 종류의 꽃을 원하는지가 분명치 않은 데다 여성 최고 정치인 자신인 그 꽃망울들마저 정체가 불분명한 탓이다. 정원의 선택이 시민들의 몫이듯이, 여성정치인의 선택도 시민들의 몫이다.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라는 혈통이 중요한 것이겠는가? 누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딸이고 무엇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아내인지가 이제 중요한 화두로 우리 앞에도 던져져 있다. 여성의 배신자를 여성의 이름으로 선택하는 일도, 정치 일꾼을 놓고 환상에 빠져 스스로를 포박하는 태도도 모두 문명사회의 징후는 아니지 않겠는가? 이번주 ‘아시아 네트워크’는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아시아의 여성정치를 독자들께 올린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사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로요(필리핀), 아키노(필리핀), 탄수 실러(터키), 메가와티(인도네시아), 쉐이크하시나(방글라데시), 베굼 하레다 지아(방글라데시) (SYGMA·GAMMA)
여성정치. 이 불량한 용어는 마치 ‘여류시인’이란 말처럼 성의 불평등을 압축하고 있지만, 달리 남성들이 판을 치는 ‘정치’란 용어로부터 여성을 구분해낼 만한 묘수가 없어서 쓰는 난처한 표현이고, 이게 바로 여성들이 처한 난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차별 속에서도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10명의 여성 최고위직 정치인-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 제외- 이 탄생하는 ‘기적’은 벌어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남근중심적 폐쇄지역으로 꼽히는 아시아에서 여성대통령과 총리를 배출한 ‘사태’를 놓고 정치학자들 사이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대개 논란이 두 갈래였는데, 가문의 배경을 업고 태어난 전근대적 족벌정치의 전형이라는 비판론이 하나였다면, 여성의 정치학습과 조직화가 힘든 사회적 조건 속에서 선택된- 그것이 혈통이든 가문이든- 여성을 통해서나마 정치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긍정론이 다른 하나였다. 그러나 논쟁에 쐐기를 박은 분야는 오히려 여성 최고위직 정치인을 배출한 나라들의 여성 자신들이었다. “아키노와 아로요라는 두명의 여성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여성 부문의 사정이 개선된 건 전혀 없다.” 필리핀 대학의 교수이자 언론인이며 ‘아시아 네트워크’의 칼럼니스트인 마리테스 시손 같은 이들은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인도네시아의 여성운동가이자 기자인 크리쉬나 같은 이들은 “메가와티는 여성을 배반한 여성이며 남성보다 못한 여성이다”라고 골 깊은 반감을 드러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해당국 여성들이 지닌 낭패감은 거의 공통된 현상이고, 특히 교육받은 전문직 여성들이나 사회운동 부문에 종사하는 여성들 사이에서는 여성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실제로 최고위직에 오른 여성정치인들의 인생항로를 눈여겨본다면 해당국 여성들의 분노를 짐작할 만도 하다. 일생 동안 버스 한번 타본 적 없고, 설거지 한번 해본 적 없는 귀족적인 삶을 산 여성이, 늘 주변의 환대를 받으며 남 귀한 걸 느껴볼 겨를도 없이 산 여성이 어느 날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었다고 상상해본다면 말이다. “그이들에게는 여성성조차 희박하다. 일생 동안 여성으로서의 어려움 같은 걸 느껴보지도 못한 데다, 처음부터 여성을 위한 또는 여성의 대표로 총리나 대통령이 된 경우가 아닌 탓이다.” 인도 언론인 티나의 말마따나 최고위직에 오른 아시아 여성정치인들이 심각하게 여성문제를 고민했다거나 성차별 타파를 위해 애쓴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여성과 아동복지 부문에서조차 뚜렷한 단서를 찾을 수 없고, 여성 관련법들의 차별적인 조항들은 눈길 한번 받지 못한 실정이니, 여성을 위해 여성대통령을 기대했던 아시아의 여성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꼴이 되고 말았다. 가문정치의 후광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었던- 현직을 포함해서- 여성정치인 10명과 추후 최고위직을 차지할 것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2명의 야당대표는 어떤 사회적 배경과 경로를 통해 정치판에 진입할 수 있었던가? 해당국가들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개발도상국으로 제3세계 가운데서도 비교적 폐쇄적인 유형의 사회·문화권에 속하며, 정치적 혼란을 거듭해왔다는 공통성을 지녔다. 예외를 꼽으라면 종교적 차별성 정도가 두드러질 뿐이다. 세계 최초의 여성총리인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와 그녀의 딸인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현 대통령의 스리랑카나 1990년 군사독재 정권으로부터 총선 압승이라는 결과를 강탈당한 뒤 지난한 민주화 투쟁을 벌이고 있는 버마의 아웅산 수지가 모두 전통적인 불교사회 출신이라면, 인디라 간디 총리와 그녀의 며느리로 차기 선거를 통해 총리직 당선이 유력한 소냐 간디는 힌두교, 그리고 필리핀의 두 여성대통령 아키노와 아로요는 가톨릭 중심사회에서 각각 태어났다. 이슬람의 경우는 어땠을까? 보수적인 종교와 현대적 의미의 여성정치 사이에 가장 긴장감이 높은 지역으로 여길 법한 이슬람 사회가 오히려 여성정치인에게 더 큰 관용을 베풀었다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이슬람 사회 최초의 여성총리가 된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는 2번이나 총리직을 수행했고, 방글라데시는 아예 1991년부터 12년째 쉐이크 하시나와 베굼 하레다 지아 두명의 여성총리가 두번씩 주거니 받거니 총리직을 독점해오고 있다. 터키와 인도네시아도 각각 탄수 실러 총리와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었다. 따라서 여성정치인 출현에는 어떤 종교적 사회문화도 특별한 지지나 장애요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없고, 결국 핵심은 출신성분이고 가문의 후광으로 좁혀지고 만다. 특히 족벌정치의 표적이 되어온 인도나 스리랑카의 경우는 가히 왕조시대를 연상케 할 만한데, 1947년 인도의 독립과 함께 초대 총리를 지낸 네루를 시발점으로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가 총리직에 올랐다가 암살당하자 손자인 라지브 간디가 총리직을 받았고 다시 그가 암살당하자 이번에는 손자며느리인 소냐 간디가 최대 야당인 의회당을 이끌고 차기 총리직을 거의 예약한 상태다. 그녀의 뒤를 이어 증손녀인 프리얀카 간디도 정치판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50여년간 4대가 총리직을 대물림하며 현대정치사에 전무후무한 가문정치의 기록을 남기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 가문도 이 점에서 만만찮은 경쟁자다. 아버지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총리가 암살당하자 어머니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가 총리직을 물려받았고, 쿠마라퉁가 자신은 남편이 암살당한 뒤 정치판에 입문해서 대통령이 된 경우다. 40여년 동안 2대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총리를 지냈고 그 딸이 대통령을 하면서 정치판을 독식했다. 다른 여성정치인들도 아버지나 남편이 독립전쟁기의 민족영웅이었거나 총리나 대통령을 지냈으니, 가문의 후광을 입지 않고 자력으로 온전하게 최고위직에 올랐다고 보기는 힘들다. 터키의 탄수 실러 총리와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예외이긴 하지만, 사실은 탄수의 아버지도 지방의 유명한 정치인이었고 코라손도 남편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이 당시 마르코스에 대적할 만한 야당 정치인이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역시 이들도 가문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경우다. 그러나 “가문정치의 후광이 여성정치인 등장 배경의 모든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느슨한 기분이 든다. 결국 좀더 추적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끄집어낼 수 있다. 아시아의 여성정치인들은 저마다 아버지나 남편이 암살당한 비극적 결함- 비평용어와는 무관한- 을 지녔고, 바로 이 지점이 아시아 여성정치의 배출구가 아니었나 눈여겨볼 만하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하여”라는 베나지르 부토의 말과 “암살당한 남편을 대신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라는 코라손 아키노의 말에서 여성정치인 출현 과정의 동질성을 짚어볼 만하다. 환상에 포박당하지 말자 아웅산 수지는 아버지인 버마 독립의 영웅 아웅산 장군을, 쉐이크 하시나는 아버지인 방글라데시 독립의 영웅 방가반두를, 베굼 하레다 지아는 남편인 지아 울 라흐만 대통령을, 쿠마라퉁가는 아버지인 또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는 남편인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총리를, 베나지르 부토는 아버지인 지아 울 하크 총리를, 코라손 아키노는 남편인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을, 그리고 소냐 간디는 시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총리와 남편인 라지브 간디 총리를 각각 암살로 잃은 뒤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메가와티는 아버지 수카르노 대통령이 암살당한 경우는 아니지만 카운트쿠데타로 실권함으로써 유사한 경로를 거쳤다고 본다면, 디오다도스 마카파갈 대통령의 딸인 아로요 대통령과 한 지방정치인의 딸인 탄수 실러 정도만 예외가 될 뿐이다. 이렇듯 아시아 현대 여성정치사는 ‘살모사식’ 비극의 뿌리에서 싹을 틔웠다. 수장을 잃은 정치조직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카리스마를 지닌 후계자의 필요성과 만만하게 부릴 만한 운용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인물을 선택해서 집요하게 줄기를 다듬었고, 인정주의적 문화가 지배하는 아시아 시민사회는 연민의 정으로 적절하게 보답함으로써 가지를 뻗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 정치적 문화라는 잎이 허약한 아시아에서 만개한 여성정치의 꽃을 보기에는 계절이 너무 이른 감이 든다. 아시아의 시민들이 어떤 종류의 꽃을 원하는지가 분명치 않은 데다 여성 최고 정치인 자신인 그 꽃망울들마저 정체가 불분명한 탓이다. 정원의 선택이 시민들의 몫이듯이, 여성정치인의 선택도 시민들의 몫이다.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라는 혈통이 중요한 것이겠는가? 누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딸이고 무엇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아내인지가 이제 중요한 화두로 우리 앞에도 던져져 있다. 여성의 배신자를 여성의 이름으로 선택하는 일도, 정치 일꾼을 놓고 환상에 빠져 스스로를 포박하는 태도도 모두 문명사회의 징후는 아니지 않겠는가? 이번주 ‘아시아 네트워크’는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아시아의 여성정치를 독자들께 올린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