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0월7일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의 한 법원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나치의 학살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전 나치 친위대(SS) 대원 요제프 S가 얼굴을 가리고 있다. 피고는 올해 100살로, 나치의 범죄로 기소된 최고령자로 기록됐다. AFP 연합뉴스
100살, 96살, 93살…법정에 선 초고령 피고들
푸르히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그단스크 인근의 슈투트호프 집단수용소에서 파울 베르너 호페 수용소장의 비서 겸 타자수로 일했다. 슈투트호프 수용소는 1939년 독일이 처음 국경 밖에 세운 강제수용소다. 나치 친위대 슈츠슈타펠(SS)이 운용했다. 이곳에서 1939년부터 1945년 사이 유대인, 폴란드인, 소련군 포로 등 6만5천여 명이 학살됐다. 푸르히너는 1만1412건의 살인을 조력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당시에는 18~20살 어린 나이였다는 이유로 소년법원에 넘겨졌다. 독일 검찰은 푸르히너가 호페 소장의 학살 명령을 타이핑해 문서로 작성한 만큼 수용자들의 학살 사실을 알고도 방조했다고 본다.독일의 집요한 나치 전범 추적과 재판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나치가 대량 학살과 반인도주의적 범죄를 저지른 1940년대 초반으로부터 80여 년 세월이 흐른 까닭에, 단죄받을 인물 대다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도 모두 90~100살의 초고령 노인이다. 그럼에도 독일 검찰과 사법부는 법적 심판에 예외를 두지 않는 단호한 태도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광기와 범죄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 그 비극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마침 2021년 10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종료된 지 75주년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긴 연합국은 종전 직후인 1945년 11월부터 이듬해 10월1일까지 1년 동안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전범에 대한 국제 군사재판을 열었다. 모두 24명이 기소돼 12명이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 중 1명은 재판 전에 피살됐으나 궐석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독일제국 원수를 지낸 헤르만 괴링은 교수형 집행 전날 자살했다. 사형 판결을 받지 않은 나머지 12명 가운데 4명은 종신형, 3명은 징역 10~20년 중형을 선고받았다. 5명은 무혐의로 석방(3명)되거나 재판 전에 자살(1명), 검찰 쪽의 착오로 미결수(1명)로 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 승리로 끝난 뒤 1945년 11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 전범 군사재판에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dpa AP 연합뉴스
3518명 살해 공모, 5230명 살인 방조
푸르히너 이외에 올해 기소된 3명의 재판 상황은 다음과 같다. 2021년 10월7일, 브란덴부르크주 노이로핀 법원은 요제프 S 라는 이름의 100살 남성에 대한 재판을 개시했다. 피고는 20대 초반이던 1942~1945년 베를린 인근 작센하우젠 집단수용소에서 나치 친위대 소속 경비병으로 있으면서 재소자 3518명에 대한 “총살형과 치클론B 독가스 살해를 알면서도 기꺼이” 도운 혐의로 기소됐다. 독일 법원은 피고가 고령이지만 하루 2시간30분가량의 재판을 받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요제프에 대한 재판은 2022년 1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작센하우젠 수용소에는 1936년부터 1945년까지 10년 동안 독일 정치범, 소련군 포로, 폴란드인, 유대인, 동성애자 등 약 20만 명이 수용됐으며 그 중 10만 명이 학살과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 2021년 7월, 함부르크 법원은 93살 노인이 된 전 나치 친위대원 브루노 다이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1944~1945년 슈투트호프 수용소 감시탑 경비병이던 브루노 다이는 5230명의 살인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나이가 10대 중반인 까닭에 재판도 소년법원에서 진행됐다. 다이는 최후진술에서 “증인들의 진술에 충격받았다. 이 광란의 지옥을 겪은 사람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재판이 있기 전까지는 그 잔혹 행위의 심각한 규모를 알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2021년 3월엔 이름과 성의 첫 자만 공개된 96살의 전 나치 친위대원 하리 S.가 독일 서부 부퍼탈 법원의 피고인석에 섰으나 고령을 이유로 재판이 중단됐다. 피고는 폴란드 슈투트호프 수용소 경비병이던 1944~1945년 재소자 600여 명을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로 이송하는 임무를 수행한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피고인의 신체 상태가 자신을 이성적으로 변호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재판을 중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이 수용소 경비원으로서 대량 학살의 범위와 규모를 인식했을 것”이라며 “그가 유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재판 도중 숨진 ‘아우슈비츠의 회계원’
피고인들이 워낙 고령인 까닭에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세상을 떠난 사례도 많았다. 2016년 6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법원은 전 나치 친위대원 라인홀트 하닝(당시 94살)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닝은 13살 소년이던 1934년 나치의 청소년 조직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한 데 이어 1940년 나치 친위대에 자원 입대했으며, 1942~1944년에는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했다. 검찰은 하닝이 수용소에 끌려온 유대인 중 노동이 가능한 사람과 가스실로 보낼 사람을 구분하고, 주기적으로 집행된 총살과 수용자 굶기기에 협력한 혐의로 기소했다. 하닝은 “나치의 범죄를 알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자책한다”며 뒤늦게 반성의 뜻을 밝혔지만,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17년 1월 세상을 떠났다.2016년 4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법원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경비원으로 나치의 학살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전 나치 친위대(SS) 대원 라인홀트 하닝(가운데, 당시 94살)이 변호인들과 함께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1년 뮌헨 법원이 세운 이정표
2011년 5월, 뮌헨 법원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다가 나치 전범 혐의로 기소된 이반 데먀뉴크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데먀뉴크는 1943년 폴란드 소비보르 절멸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2만8천여 명의 수용자 학살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됐다. 데먀뉴크는 1920년생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독소 전쟁에 징병됐다 독일군에 포로가 된 뒤 나치 협력자로 변신했다.데먀뉴크는 1986년 이스라엘의 추적망에 걸렸고 1988년 이스라엘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기사회생했다. 1993년 이스라엘 대법원이 데먀뉴크가 ‘(잔혹한) 이반 대제’로 불린 수용소 경비원과 동일인이 아니라고 판단해 무죄 석방한 것. 그러나 이후 추가 증거가 드러나면서 2009년 독일로 강제송환됐다. 데먀뉴크는 2011년 독일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자신이 독일군 포로 신분으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학살의 실상을 알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랄프 알트 판사는 “수용소의 모든 간수는 자신이 대량 살인이 유일한 목적인 조직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며 유죄라고 판결했다. 데먀뉴크는 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이듬해 91살 나이로 숨지면서 사건은 종결됐다.2015년 4월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있는 나치 독일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