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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가 부토의 신화를 넘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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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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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여성정치 ㅣ 파키스탄

와리·나와즈 샤리프 등 있지만 비교 안 돼… 올해 세 번째 도전 나서는 베나지르 부토

사진/ 라히물라 유수프자이(Rahimullah Yusufzai) ㅣ<뉴스> 편집이사
두번씩이나 총리 자리를 거친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여성으로 이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도 없을 법하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여성정치를 돌아보면, 그녀만 탁월한 이름을 남긴 것도 아니었다. 비록 여성정치가들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아버지나 남편에게 빚을 지긴 했더라도.

아내·딸·며느리까지 정치 입문


세습적인 정치형태와 그에 따른 족벌 지원으로 여성들이 정치판에 등장할 수 있는 구조를 파키스탄식 여성정치라 부를 만도 한데, 여하튼 그 힘이 얼마나 굉장한 것이었는지 남성들이 판을 치는 파키스탄 사회에서 ‘감히’ 여성들이 최고 지위를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었다.

부토 가문이 여성들을 정치판에 진출시킨 걸로 가장 유명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가문이 첫 번째 경우는 아니었다. 그 최초의 명성은 민족주의 가문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접한 노스웨스트 프론티어주(NWFP) 출신 와리의 것이었다. 1977년 총선에서 민족주의 정당 민족 아와미당을 주도한 압둘 와리 칸의 아내 나심 와리 칸이 상대 남성 후보자들을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비례대표로 뽑힌 여성의원을 제외하면, 물론 그 일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일도 따져보면, 남편이 반역죄로 수감당하자 아내인 나심이 대신 선거판과 정치판에 뛰어든 경우다. 파키스탄 최초의 여성정치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다음, 아비다 후세인. 고향인 펀자브주에서 승리한 뒤 의회로 진출했고 연방장관을 지낸 그녀의 경우도 유명한 정치가였던 아버지 아비다 후세인 소령의 서거가 길을 열어주었다. 특히 그녀는 남편이자 국회의장을 지낸 세이드 파할 이맘의 이름까지 함께 붙어간 경우인데, 현재는 그녀의 딸인 슈그라 이맘이 다시 장의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정치에 입문해 있다.

사진/ 베나지르 부토.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그는 강연과 선전을 통해 반무샤라프를 외치며 세력 확충에 치중하고 있다. (정문태)
또 다른 여성정치가? 이번에는 1999년 10월 무샤라프 장군의 쿠데타로 쫓겨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아내인 쿨숨 나와즈 샤리프다. 그녀는 남편의 석방을 요구하며, 남편이 주도했던 파키스탄 무슬림 동맹당을 대신 이끌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쿨숨은 자신뿐만 아니라 딸과 며느리까지 모두 정치판에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녀와 주변 여성들의 정치는,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왕자의 중재로 무샤라프 장군이 남편인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를 석방한 뒤 모두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을 떠남으로써 종말을 고했다.

파키스탄 여성정치의 이야깃거리들을 거의 훑어보았는데, 결론은 어느 누구도 베나지르 부토 가문의 명성을 쫓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부토가의 여성들은 파키스탄 인민당의 창설자이자 총리를 지낸 줄피카르 알리 부토의 후광을 업고 출신지인 신드주의 라카나에서 가볍게 승리할 수 있었다. 줄피카르 부토가 경쟁자였던 지아울 하크 정권에 의해 사형당하자 그의 딸인 베나지르 부토뿐만 아니라 아내 누스랏 부토 그리고 며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성이 정치에 입문하며 신화를 만들었다.

환영을 접고 올 가을 본격적 한판

현재 어머니, 아이들과 함께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베나지르 부토는 강연과 선전을 통해 반 무샤라프 장군을 외치며 세력 확충에 치중하고 있다. 군사정권이 부패혐의와 실정의 책임을 물어 체포를 거론해온 탓에 그녀 일행은 귀국이 내키지 않는 듯 벌써 몇년째 외국을 떠돌고 있다. 베나지르 부토는 총선이 있을 10월경을 귀국의 시기로 보는 모양인데, 무샤라프가 베나지르 부토든 나와즈 샤리프든 모두 정치행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려 귀추가 주목된다. 베나지르 부토와 나와즈 샤리프라는 두 전직 총리를 놓고 벌일 무샤라프 장군의 정치적 도박이 성공할 수 있을지가 벌써부터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베나지르 부토에 대한 말들이 끊임없는 걸로 미루어 이 여성정치가의 여전한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베나지르 부토의 세 번째 도전은 이제 자신의 몫이라 할 만하다. 앞선 두번의 총리직은 아버지 줄피카르 부토의 후광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경우라면, 세 번째 도전이 될 앞으로의 정치적 과정 속에는 아무런 환상도 환영도 없는 그야말로 베나지르 부토, 여성 자신의 이름으로 여성정치에 목을 매는 본격적인 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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