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여성정치 ㅣ 버마
아웅산 수지야말로 유일한 대안이자 희망… 장군의 딸이라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아웅산 수지, 이 한 여성의 이름이 국제사회에서 오히려 버마라는 국호보다 더 유명한 게 아닌가 싶다. 민주화 투쟁과 군사정권으로부터 박해받는 이름의 상징으로, 사실 아시아 현대사에서 그만한 이름도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외를 통틀어 그이를 깎아내리는 이들도 만만찮았다. 주로 여타 아시아의 여성정치가들처럼 아웅산 수지도 ‘출신성분’의 은총을 입은 경우라는 게 단골메뉴였다.
아웅산 수지 vs 산다르 윈
맞는 말이다. 버마인 모두의 심장에 남아 있는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게 어디 보통 보너스였겠는가? 시민들은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했고, 아웅산 수지는 정치 조직화에 반사적 편리함을 누렸을 터이니.
또 다른 업신여김은 아웅산 수지가 정치훈련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건데, 이것도 다 맞는 말이다. 아버지가 민족 최고의 독립운동 영웅이었고 어머니가 인도 대사를 지낸 가문에서 나고 자란 것이 정치훈련에 이바지했는지 어땠는지를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야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아버지가 정적에게 암살당한 뒤 해외를 떠돌다가 어느 날 홀연히 귀국해서 민주화 투쟁의 ‘앞잡이’가 된 것을 보면 분명 일반적인 훈련과정을 거친 정치가는 아님이 틀림없다.
문제는 1961년부터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해 일당 독재체제를 굳혀온 버마에서 도대체 뭘 보고 정상적인 정치훈련 과정이라고 말하는지를 또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그 독재정권을 물고늘어졌다는 이유로 가택연금 10년을 넘기고 있는데, 이보다 더 중대한 정치교육이 또 있단 말인가.
사실 아웅산 수지는 1988년 민중봉기 초기만 해도 정부와 시위대 사이에서 중재자 노릇을 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야만적인 억압을 유일한 도구로 여기는 정부의 태도가 결국 그녀를 민주화의 전도사로 만들고 말았다. 그녀가 쉐다곤 파고다에서 처음 대중연설을 하던 날을 시민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당시 상황을 놓고 아웅산 수지는 당당하게 말했다. “시민들이 나를 사랑하게 된 건 ‘아웅산 수지’라는 이름이 감동적으로 가슴에 가 닿았던 탓이지, 내가 아웅산 장군의 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나 지금이나, 시민들 사이에 아웅산 수지가 그저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여기는 이들은 별로 없다. 시민들은 당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갈망해오던 터에, 군부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날리는 용기 있는 한 여성의 등장을 감격스레 맞이했다.
분명한 건 장군의 딸이나 민족영웅의 딸이라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치무대로 진입한 일부 민족영웅의 딸도 있었지만, 시민들은 엄격하게 인물을 선택했다. 독립운동 당시 아웅산 장군의 경쟁자로 이후 독재자가 된 네윈의 딸 산다르 윈을 놓고도 세간에서는 아웅산 수지와 비교하며 말들이 많았다. 장군의 딸들은 정치적 유산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경쟁심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아 현실 속에서 부딪쳤다. 산다르 윈이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가의 후광을 업고 있었다면, 아웅산 수지는 그저 전설의 빛을 쪼였을 뿐이라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게임이 안 되는 경우였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간격이 벌어졌다. 바로 시민들의 정서와 시민들의 판단이 아웅산 수지에게로 향한 탓이었다.
최근 군사정부는 느닷없이 쿠데타 기도설을 퍼트리며 네윈의 딸 산다르 윈을 가택연금 시켜버렸다. 여기서도 둘 사이의 차이는 분명히 드러났다. 아웅산 수지의 경우와 달리,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산다르 윈의 가택연금에 가슴 아파하는 이들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조작된 자부심을 깨뜨린 혁명가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누가 개인의 사업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했고, 누가 자신들을 위해 희생당하고 있느냐는 사실쯤은 명백하게 알고 있었다. 바로 그런 시민들이 선택한 인물이 아웅산 수지였고, 그이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정치가이며 민주운동가였다.
굳이 주제와 어울리게 한마디 덧붙이자면, 아웅산 수지는 성의 편견 이른바 ‘조작된 자부심’- 남성들이 창조한 것으로 여성이 모든 힘의 원천이라거나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믿게끔 만든- 을 깨트린 여성혁명가이기도 하다. 성과 관계없이 아웅산 수지는 버마 정치의 유일한 대안이자 희망이다. 현실적으로.

사진/ 나잉옹(Naing Aung) ㅣ 버마민주개발네트워크 의장
맞는 말이다. 버마인 모두의 심장에 남아 있는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게 어디 보통 보너스였겠는가? 시민들은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했고, 아웅산 수지는 정치 조직화에 반사적 편리함을 누렸을 터이니.

사진/ 아웅산 수지가 그저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여기는 이들은 별로 없다.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