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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구냐, 베네수엘라를 쏜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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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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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들과 민영 언론이 어깨 걸고 쿠데타 시도…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진/ 유혈사태가 일어난 다음날인 4월 12일에 벌어진 반차베스 시위. 이날 카르모나는 차베스를 구금하고 임시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2002년 4월은 베네수엘라 정치사에 길이 남을 것 같다. 이 석유가 넘치는 나라에서 단 이틀 동안에 쿠데타와 반쿠데타의 화려한 드라마가 연출됐다. 어떤 이는 차베스의 강압적 정책과 포퓰리즘이 쿠데타를 초래했다고 비판했고, 어떤 이는 차베스의 개혁정책에 반발해 수구세력과 미국이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했다. 현장을 뛰어다닌 중남미 전문 언론인의 글을 통해 사태의 단서를 추적해본다. 편집자

베일에 싸인 48시간이 지난 뒤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대통령궁에 있는 자기 자리를 되찾았다. 차베스는 군부와 기업인들이 연합해 일으킨 4월12일 쿠데타로 인해 강금되었으며 그 뒤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 갇혔다. 세계 언론이 그의 퇴진을 요란하게 보도하는 동안, 차베스는 대중에게 발언할 권리를 완전히 빼앗겼다.

베네수엘라의 힘있는 기업가들의 연합인 페데카마라스의 회장이며, 임시대통령이 된 카르모나는 두 가지 정책을 발표했다. 첫째는 단 한 방울의 석유도 쿠바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부응해 콜롬비아 반군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는 것이다.


옥상의 총성은 누구의 것?

새로운 정권은 16명이 사망하며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한 4월11일 반정부 시위에서 차베스의 지지자들이 3명의 저격수를 체포한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 저격수들은 대통령궁 앞에서 차베스의 연설을 위해 연단을 만들던 최소한 두명의 차베스 지지자들을 살해했다(이날 총격을 가한 사람들 중에는 차베스 지지자 외에도 카르모나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 저격수들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유혈사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실린 미 시사잡지 <카운터 펀치> 기사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회학 연구자 그레고리 월퍼트는 옥상에 있었던 저격수들이 사격을 시작했고 사망자는 대부분 차베스 지지자였다고 증언한다. 군부와 카르모나는 다음날 유혈사태의 책임을 물어 차베스를 감금했다- 역자).

체포된 저격수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차베스 앞으로 끌려갔다. 차베스가 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4월11일 저녁 생방송 연설을 시작할 때, 반차베스 세력이 방송사의 장비를 파괴해서 송신이 중단됐다. 세계의 어떤 언론도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차베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 했던 기업가들이 소유한 베네수엘라의 민영 매체들은 쿠데타를 연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4월12일 뉴스의 헤드라인은 베네수엘라의 ‘해방’을 발표했다. 깃발을 흔들고 경적을 울리면서 경호차가 부자들의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는 차베스가 ‘더러운 독재자’라 불렀던 사람들이 다시 정결한 사람들이 되었음을 알렸다.

라틴아메리카 정상들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회담을 가졌다. 그들은 형식적으로는 쿠데타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실제로는 세계화의 반대자(차베스)를 쫓아낸 세력을 선뜻 받아들였다. 차베스는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을 격렬히 비난했다. 미국 정부는 차베스의 대결적인 스타일이 몰락을 가져왔다고 비판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은 유가가 떨어진다며 쿠데타에 환호했고, 주식중개인들은 외국 투자자들에게 호기가 찾아올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카라카스의 빈민가는 분노로 끓어올랐다. 빈민들은 대통령을 목숨 걸고 지키겠다고 맹세하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기다렸다. 오랜 고난의 시기를 지나, 이 가난한 다수는 차베스의 통치 아래서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 그들의 권리는 이윤보다 민중을 앞에 놓는 새로운 국가에서 신성시되었다.

짧은 집권기간에 카르모나는 의회를 해산하고 1999년 12월 국민투표를 통해 지지받은 새로운 국가체제를 폐기했다. 군인이었던 차베스는 외교적인 기술이 부족했다. 그는 완강히 반대하는 적들을 사정없이 채찍질했다. 이른바 ‘더러운 독재자’들은 퇴역장성협회, 언론자유연합, 기업가연합 등으로 조직화하며 차베스를 몰락시킬 계략을 짰다.

이 ‘할부제 쿠데타’는 1998년 차베스가 당선된 뒤 곧바로 시작됐다.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을 경우 정부가 요구하면 언론은 효과적인 해명을 해야 한다는 정부의 조처에 대해 지역 매체들은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검열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언론은 심지어 선거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 그날로 물러나야 한다는 폭력적인 주장을 하며 울부짖었다.

차베스는 미국의 보수파와 마찰을 일으키며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밀접한 관계를 발전시켰다. 그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활성화했으며 걸프전 이후로 사담 후세인을 포용하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가의 첫 번째 지도자가 됨으로써, 미국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차베스는 온화함 보일까

사진/ 권좌에 복귀한 차베스(오른쪽)와 2일 천하로 끝나고 만 카르모나. 임시대통령이 되자마자 카르모나는 의회를 해산하고 각종 개혁정책을 뒤로놓아 빈민층의 반발을 샀다.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은 차베스가 테러와의 전쟁에 ‘불충분한 지지’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차베스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과정 중 어린이들이 사망한 사실을 비판하며 이는 세계무역센터 공격과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자, 갈등은 시작됐다. 미 국무부는 만약 차베스가 저지른 일을 바로잡지 않으면 그는 집무실에서 임기를 마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쿠데타의 토대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저는 우리가 (미국이 요구한 대로) 그렇게 빨리 돌려놓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차베스는 4월12일 저녁 환호하는 수천명의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차베스는 언론이 이 합법적인 지도자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중지하도록 격한 목소리를 누그러뜨려야 한다. 차베스가 복귀한 뒤 12시간이 지나도록 베네수엘라의 주요 일간지들은 그들의 홈페이지에서 복귀 기사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마이클 메코헨(37)은 1985년부터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해온 아일랜드 출신 중남미 베테랑 프리랜서 기자로 영국의 <가디언> <옵저버>, 아일랜드의 <아이리시 타임즈> <선데이 트리뷴> 등에 기고하고 있다.

마이클 메코헨/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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