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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기대하시라 ‘술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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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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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거주지의 음주문제 논란…1인당 술 구입량 제한하기로

오스트레일리아 북단 퀸즐랜드주에 있는 원주민 집단거주지 케이프 요크에선 요즘 ‘술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전쟁’의 발단은 최근 발표된 케이프 요크 지역의 음주행태에 대한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케이프 요크는 한 마디로 타락한 원주민 공동체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낮부터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남자들, 취한 그들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약자들,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를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취한 아들…. 질병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평균수명이 불과 44살이 넘지 않는 버려진 땅. “술이 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것이 보고서 결론이다. 이 보고서는 과다한 알코올 소비가 원주민들의 영혼과 공동체적 삶을 파괴하였으며, 즉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대낮부터 비틀비틀


사진/ 원주민의 음주문제는 억압적 백인문명에 대한 자절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SYGMA)
이 소식을 접한 대중들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사회는 전통적으로 음주에 관용적이고 원주민의 음주도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여겨왔다. 그러니 집단적이고 상습적인 과음이 반인륜적 폭력과 공동체적 삶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는 사실 충격이었을 것이다.

퀸즐랜드 주지사 피터 비티는 즉각 ‘술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케이프 요크의 주류판매업을 공용화할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각 마을 원주민 자치회에서 직접 운영하던 주류업을 주 정부 차원의 공공기구를 설립하여 주류공급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치에는 1인당 구입할 수 있는 술의 양을 제한하는 것에서부터 스포츠나 오락활동을 위한 재정지원까지 들어 있다. 제한적 주류판매가 골자인 이 계획은 향후 3년간 시행될 예정이다. 비티 주지사는 3년 뒤에도 음주로 인한 폭력문제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면 전면적 금주령을 시행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밝히기도 했다.

주 정부의 발표에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찬성 쪽은 원주민의 음주문제가 이미 관용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온 마을이 취해서 휘청대는 형국이니 특단의 대책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특히 케이프 요크가 속한 지역구 주의원인 스티브 브레드하워가 의회에서 “우리 친구들과 형제들이 술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그들을 살려야 한다”며 눈물로 술과의 전쟁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는 장면이 방영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케이프 요크 원주민은 민주사회에서 개인이 자기 돈으로 술을 사먹을 권리마저 제한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과음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 행위에 대해 처벌하면 되는 것이지 음주 자체를 범죄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원주민 거주지에 대해서만 실행하는 음주제한 조치는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 항변한다. 각 마을 자치회가 주류판매를 금지당하면서 입을 재정적 손실에 대한 정부의 침묵도 비난대상이 되고 있다.

문제는 억압적 백인 문명

케이프 요크 원주민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가운데도 전국적인 여론은 퀸즐랜드 주 정부의 조치를 환영하는 추세다. 연방정부도 케이프 요크 지역의 음주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할 예정이며, 전국원주민위원회도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특히 원주민 거주지가 많이 분포된 인근 주 정부들도 금주의 날 지정, 주점 영업시간 제한 등을 통해 음주문제에 공동 대처할 움직임을 보여 퀸즐랜드 주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 원주민 인권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케이프 요크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술이 아니라 억압적 백인문명에 잘 적응하지 못한 원주민들의 집단적 좌절감이라고 이들은 분석한다. 과음은 바로 그런 좌절감에서 비롯한 일탈행위의 하나로 다른 문제들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음주행위에 대한 규제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이 문제가 원주민 보호와 권리신장이라는 본질적 이슈를 가리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잔뜩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술을 둘러싼 개인의 권리에서 흑백문제로까지 논쟁이 확대되는 ‘술과의 전쟁’의 결과가 주목된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djeo8085@mail.usyd.edu.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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