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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요르단 경찰은 이스라엘의 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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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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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관계 고려해 시위 막고 관제 시위에 치중하는 요르단 정부

“영혼과 피, 팔레스타인을 위해 불사르자!”, “시온주의는 나치즘이다.”

연호가 터져나오고 돌과 화염병, 물대포와 최류가스가 교환된다. 중동에 그 어느 때보다 반이스라엘 정서가 폭발하고 있다.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카타르, 이집트, 시리아, 예멘,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반이스라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깃발을 대체한 국왕 사진


사진/ 이스라엘 국기 화형식을 치르고 있는 요르단대 학생들. 아랍 각국에서는 연일 이스라엘 국기와 성조기가 수난을 겪고 있다.
시위 현장에는 무력사용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 “돈이나 구호물자 대신 무기를 보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과 싸울 무기가 아닙니까?” 요르단의 대표적인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바카난민촌의 한 젊은이는 절규하듯 심정을 토로한다. “우리 조국 팔레스타인을 위해 무기를 들고 싸우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곳에 이르기 전에 나는 죽을 거예요. 요르단 정부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죠. 설사 요르단강을 건넌다 해도 이내 이스라엘군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겁니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접경하고 있는 아랍국가들에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러 가는 예멘군의 통과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변죽을 울릴 뿐이다. 미국에 찍힌 이라크만이 제 갈 길을 가는 듯 한달간 석유 수출을 중단했다.

아랍 각국에서는 정부에서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지지시위도 벌어진다. 요르단에서는 팔레스타인계 라니아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과 장관들도 팔레스타인 지지시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관과 민이 하나되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안겨준다. 그러나 속사정은 단순하지 않다.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전국민의 3분의 2 정도가 팔레스타인계로 이뤄진 요르단에서 반이스라엘 시위나 팔레스타인 사태 관련 보도는 단순하게 처리된다. 다른 나라 TV들이 현장 생중계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사태 특집을 방영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라니아 왕비가 뉴스의 초점이 되어버린 한 시위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참가한 이들의 외침이 행사 진행요원들의 제지를 받는 일도 벌어졌다. 다른 시위현장에서 흔하게 보이는 팔레스타인 깃발이나 아라파트 사진, 희생자들의 사진이 담긴 피켓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국왕과 왕비의 사진이 가득하고 제네바 협정 준수를 촉구하는 영문으로 된 보다 추상적인 문구들이 가득했다.

난민 수용 계획도 없어

이와 달리 자발적인 시위는 원천 봉쇄되는 경우가 더 많다. 요르단 정부가 반미·반이스라엘 감정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허가하지 않은 불법시위에 대한 엄단 방침을 정해놓았다. 요르단 대학가와 팔레스타인 난민촌 주변은 항상 시위에 대비하고 있고, 미국 대사관이나 이스라엘 대사관 등 시위대의 목표물에는 경계가 강화되어 있다. 특히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가는 길은 요르단 경찰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시위대는 “길을 열어라. 왜 요르단 경찰이 시온주의자 이스라엘의 용병이 되려는가”라며 분을 토해낸다. 그렇지만 조직화되지 않은 시위대는 이내 해산되고 만다. 이-팔 사태가 아무리 악화되어도 요르단 정부는 이전처럼 난민을 수용할 계획이 없다.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자칫 요르단강 서편의 불길이 요르단 본토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요르단도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 축소를 검토하고 있지만 기본 관계유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민심을 수용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강공책밖에 없는 상황이다. 요르단 정부는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까지 재정립하여야 하는 위험 부담을 쉽게 껴안을 수 없다. 아랍 민심의 성난 외침도 이스라엘의 포성과 총성에 눌려 허공으로 사라져버리고 있다.

암만=글·사진 김동문 통신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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