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티스타를 쏘아올린 인터넷 활동가들의 봉기, 독립미디어센터를 가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속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도시의 아침공기는 서늘했다. 괴괴한 안개마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산마루께로 두둥실 태양이 떠오르자 사위는 순식간에 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멕시코 동남부 치아파스주의 2250m 고원에 자리잡은 인구 13만여명의 조그만 시골 도시. 이곳이 세계 뉴스에 처음 등장한 것은 94년 1월1일 새벽녘 거리를 행진해 시청을 점령하고 부도덕한 인종주의자였던 주지사를 체포한 마야족 원주민들 때문이었다.
시애틀 시위와 마르코스 편지가 계기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이자 정복자이며 이 일대를 최초로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이 수호성인으로 삼은 콜롬버스의 스페인어 이름 크리스토발과 원주민의 보호자로 알려진 이 지역 초대 주교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신부의 성 데 라스 카사스를 연결한 유럽풍의 도시명. 그 이름엔 1528년 잡초가 우거진 분지에 진흙 벽을 세우고 기와 지붕을 입히고 이 식민지 도시를 세운 이들, 마야문명의 후예들의 흔적은 지워지고 없었다.
그래서 마야 원주민들은 라칸돈 정글 속에서 1983년부터 10년간 자신들의 군대를 만들어 훈련시키고 1993년 겨울 군대를 고지대 산 크리스토발로 파견했다. 그렇게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무장봉기가 발발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도시는 늘 세계가 주목하는 ‘지구의 배꼽’이 되었고 저명한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 작가, 사회활동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2001년 2월9일, 치아파스에서는 또 다른 봉기가 일어났다. 이번엔 무기도 필요 없었고 사망자가 생기지도 않았다. 바로 인터넷상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지지하는 전세계 독립미디어 활동가들이 치아파스 원주민 마을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저항의 뉴스를 전세계에 타전하기 위해 치아파스 독립미디어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정보를 독점한 주류 언론과 국제적인 통신사의 입맛에 따라 변조되는 원주민들의 육성을 자신들이 직접 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무기는 인터넷이었고 총탄은 기사와 사진, 그리고 음성과 비디오 파일이었다.
이 일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역사적인 평화 대행진에 돌입하기 직전에 이뤄졌다. 치아파스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때 멕시코 정부는 외국 게릴라들이 준동했다거나 마약거래로 무기를 구입했다는 등의 거짓말을 퍼뜨렸으며 나중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분열되었다거나 사령관들이 더 이상 부사령관 마르코스를 신뢰하지 않아 체포해서 감금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살포해 원주민 마을을 이간질하는 심리전을 벌여왔다. 그래서 정부의 거짓말과 주류 언론의 맞장구에 맞서 대행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전세계 활동가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3평 남짓의 조그만 치아파스 독립미디어센터.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제3회 국제노동미디어 행사 포스터가 걸려 있고, 해고에 맞서 싸우는 한국 노동자의 사진이 붙어 있는 좁은 사무실에 들어섰다. 한국에서 이 자료들을 직접 가져온 멕시코 출신 루쓰는 치아파스 독립미디어센터가 문을 열게 된 두 가지 계기를 전한다.
“하나는 1997년 1월 미국과 캐나다의 독립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뉴욕에서 개최한 자유미디어 회의에 보낸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편지가 영감을 주었고 다른 하나는 1999년 겨울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 회의가 열렸을 때 세계무역기구의 뉴라운드 출범을 저지하는 데 톡톡히 기여한 시애틀 독립미디어센터의 활동이었지요.”
국적을 묻지 말라
라깐돈 정글에서 뉴욕으로 보낸 편지에서 마르코스는 “권력자들의 수학에선 늘 소수자로 계산되는 사람들, 그러나 실제론 전세계의 다수를 이루는 사람들, 바로 이들을 제거하려는 신자유주의 기획을 우리는 제4차 대전이라고 부른다”고 언급하고 “지금 텔레비전과 통신위성과 잡지와 신문을 거느린 거대한 독점 언론은 가상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세계 속의 주인공은 오직 VIP들이며 스타 영화배우들과 세계정계의 거물들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보독점 언론이 만드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충돌은 결국 반란과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미지 조작과 정보 소외가 가져올 파괴적인 결과를 예상했다. 그의 예상은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붕괴로 적중했으며 세계 정보를 독점하는 미디어들이 만든 가상세계에 실로 오랜만에 아프가니스탄과 아랍세계가 등장했다. 이전엔 단역으로도 등장할 기회가 없었던 이 나라들이 이번엔 가공할 만한 악역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들의 고통과 분노, 상처가 담긴 목소리는 지워진 채.
“지금 전세계 27개국 80여개 지역의 독립미디어센터 홈페이지가 개설되었지요.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물론이고 유럽, 오세아니아 대륙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부터 동유럽의 체코, 아시아의 인도까지.” 인터넷에 올라오는 치아파스 독립미디어 활동가들의 기사를 검색하면서 한 미국 출신 활동가가 말했다. 그는 미국 주류 언론의 중남미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치아파스 독립미디어센터의 협력자로도 일하고 있다. 그는 주류 언론 내에 진실의 공간을 넓히면서 동시에 독립미디어활동가로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도 기사를 올릴 수 있지요. 아마도 치아파스 최초의 한국인 독립미디어 활동가일 거예요. 하하!” 독립미디어센터 홈페이지에는 누구든지 기사를 올릴 수 있다면서 활짝 웃으며 멕시코 출신 프란시스코(30)가 이야기를 잇는다. 1억 인구 가운데 인터넷 인구가 100만명에 불과한 멕시코에서 치아파스 원주민들은 인터넷은커녕 컴퓨터조차 만져본 적이 없다고 현실을 전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삶과 저항을 글과 사진으로 싣는 것이지요. 요컨대 저항하는 이들 스스로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저요? 치아파스 출신인데요!” 며칠 전 이곳에 도착한 유럽 출신 활동가는 국적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꾸한다. “언젠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한 사령관에게 어느 외신기자가 왜 스키마스크를 쓰고 있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답했답니다. ‘누구도 우리가 맨얼굴이었을 땐 우리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마스크를 쓰니까 모두가 우리가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국적과 같은 개인적인 정보를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문하면서 그가 전해준 일화였다.
전세계에 건설될 오아시스
이 단체엔 상근자도 비상근자도 없다. 단체의 대표는 물론이고 특별히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서로를 협력자라고 부르면서 동등하게 활동한다. 누가 이들을 이곳에 파견한 것도 초청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곳이 좋아서 내 삶에 중요한 의미를 주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국적도 이름도 얼굴도 없는 유럽의 활동가가 강조했다. 그러니 그에게 사진을 촬영하겠다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우리 모두가 활동하는 현장이라면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사양하겠어요!”
루쓰가 대화에 끼어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마 다음에 당신이 이곳에 왔을 땐 멤버들이 다 교체되어 있을지도 몰라요.” 그 자신은 하루에 두 시간씩 이곳에 와서 일할 예정이며 여름까지 머물다가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란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저마다 자기 사정이 있기에 활동시간과 체류기간은 천차만별이라는 얘기다.
“우리 중에 일부는 과테말라 페텐 지역의 라 케살 마을에서 열릴 ‘댐 건설에 맞서 삶을 지키려는 제1차 메소아메리카 포럼’에 참가한 뒤 그곳에서 협력자들을 만나 과테말라 독립미디어센터를 건설할지도 몰라요”라고 루쓰가 말하자 미국 출신 활동가가 “난 그곳에 남아 치아파스-페텐 독립미디어센터를 만들 거예요”라고 거들고 나선다. “한국의 진보 넷이 고유한 활동방식을 갖고 있듯 우리는 우리 나름의 활동방식이 있지요.” 그는 여러 단체들 나름의 활동방식을 존중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말하자면 우린 유목민들이지요!” 루쓰가 결론을 내린다.
이들 유목민들에겐 이 사무실과 사이버 세계의 홈페이지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일지 모른다. 이들이 어느 대륙의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새로운 오아시스를 건설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지 세계의 정보를 독점하는 주류 언론이 만들어가는 가상세계에 맞서 세계에서 실제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전하는 소식은 누군가에겐 총알이 되고 누군가에겐 시원한 오아시스 샘물이 될 것 같다.
글·사진 치아파스(멕시코)=박정훈 통신원 jhpark2001@hotmail.com

사진/ 치아파스 독립미디어센터 사무실에서 열린 활동가들의 회의. 전세계 27개국 80여개 지역에 독립미디어센터 홈페이지가 개설돼 있다.

사진/ 1999년 뉴라운드 출범에 반대해 일어난 시애틀 시위. 인터넷을 통해 조직된 이 시위는 독립미디어센터 설립의 계기가 됐다. (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