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3일 일어난 이탈리아 전후 최대의 시위는 베를루스코니의 종말을 의미하나
지난해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화려하게 재집권했을 때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은 거대 언론재벌이기도 한 이 우파 정치인의 행보에 우려를 나타냈다. 아니나 다를까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기반을 강화하는 각종 정책들과 노동법 개악을 지휘했고 그가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들은 나팔수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지난 3월23일 로마에서 있었던 대규모의 시위는 베를루스코니를 벼랑으로 몰고가고 있다. 이 시위에 참여한 독일의 좌파 지식인은 이탈리아의 행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3월23일 200만∼300만명의 시민들이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로마로 모여들었다. 이날의 시위는 전후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큰 시위였다. 이탈리아 노동조합운동(CGIL)은 이 집회를 통하여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노동조합 조직으로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애초 노조는 우익정부가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를 막고 있는 법적인 보호조항들을 삭제하려는 시도에 맞서 시위를 계획했다. 그러나 시위 나흘 전에 정부의 노동부 고문인 비아기 교수가 살해됐다. 베를루스코니는 집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금요일 밤 한 상업방송에 출연하여 비아기 교수가 추진해왔던 고용개혁안을 밀어붙일 것이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야당 정치인들은 즉각 벨루스코니가 비아기 교수의 죽음을 자신의 일정을 밀어붙이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비아기 교수 암살은 음모?
제반 상황이 변하면서 집회 주최 쪽은 민주적 권리에 대한 탄압 반대, 테러리즘 반대, 복지국가의 고수라는 이슈로 시위의 목표를 확대시켰다. 테러리즘에 반대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주최 쪽과 군중은 집회가 시작되기 전 1분간 비아기 교수를 애도하는 묵념을 가지기도 했다. 사실 이날의 집회는 지난 3월 초에 수십만의 노동자들이 로마에서 시위를 가진 이래 예정된 시위라는 점에서 비아기 교수의 암살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낀 베를루스코니가 저지른 짓이라는 의혹을 갖고 있다. CGIL 의장인 코퍼라티는 집회에서 군중에게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합법적인 권리를 선언하려고 모여들 때 암살이 일어났다”면서 비아기 교수 암살사건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군중의 규모에 놀란 CGIL의 한 간부는 “베를루스코니가 1994년 연금제도를 고치려고 했을 때 100만 노동자들의 반대에 직면했던 날처럼 오늘이 베를루스코니 최후의 날”이라고 선언했다. 이날의 집회는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대표하는 모든 것에 반대한 것이었다. 시위 행렬은 상공에서조차 분명하게 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고대 전차경기장인 ‘서커스 막시무스’로 여섯 방향에서 노조와 당의 붉은 피켓들이 바다를 이루면서 한 군데로 모여드는 장관을 연출했다. CGIL과 더불어 모든 야당들, 특히 중도좌파인 올리브나무동맹까지 시위에 참가했다. 또한 반세계화그룹들과 베를루스코니 진영의 권위주의적 성격에 반대하면서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올해 조직된 ‘기로톤디운동’이라는 단체도 참가했다. 한 참가자의 말을 빌리자면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여느 시위와는 다르게 이탈리아 인구의 거의 모든 출신, 직업, 성, 나이를 총망라했다고 한다. 즉 버스 안이나 술집이나 길거리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국에서 10만대의 버스와 60대의 특별전세기차, 4척의 배와 개인승용차, 비행기로 모여들었다. 시칠리아로부터 24시간 동안 배와 버스로 달려온 리타는 “우리는 이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를 그냥 짓밟아버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수십년의 힘든 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라고 외쳤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인 시몬느는 “나는 그냥 노동자들의 권리를 방어하기 위해 온 것만이 아니라 이 정부가 해오고 있는 모든 것에 반대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다”고 밝혔다. 3월23일의 시위는 이탈리아인 대다수는 베를루스코니 정부를 꿋꿋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이탈리아 언론과 세계 언론의 환상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러한 환상은 베를루스코니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혐오가 제대로 조직화된 정치적 표현으로 나타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될 수 있었다. 5년의 집권기간 동안에 올리브나무동맹은 우익적인 사회정책을 통해 베를루스코니의 집권에 길을 터줬고 지난해 5월 선거에서 패배한 뒤에도 제대로 된 야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떠오르는 스타 코퍼라티는 누구인가
이날 시위의 최고지도자는 세르기오 코퍼라티(54)였다. 그는 이탈리아북부의 산업지역 출신으로 해체된 이탈리아 공산당을 계승한 좌파민주당의 당원이며 CGIL의 의장이다. 그는 반베를루스코니 진영에서 미래의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다. 코퍼라티는 1975년 이래 노조의 상근활동가로 일해왔으며 1994년, 베를루스코니의 초기 집권 당시에 CGIL의 대표로 뽑혔다. 베를루스코니와는 보통이 넘는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두개의 노동조합연맹체와는 달리 코퍼라티는 지금까지 이탈리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 개정 협상에 참가하기를 거부해왔다. 그는 해고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제를 깨려는 정부의 계획을 비판하면서 “댐이 부서지면 홍수를 막을 수 없다”는 말로 경고해왔다.
이런 이유로 해서 코퍼라티는 올리브나무연맹의 우왕좌왕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3월23일의 시위에 엄청난 수의 대중을 동원해낼 수 있었다. 정부가 계속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데 대해 대중은 누군가 나서서 반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코퍼라티는 이러한 분위기를 잘 파악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활약도 좌파민주당의 정치적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사실 코퍼라티가 지지했던 좌파민주당 대표선거의 후보는 사민주의 지도자이다. 코퍼라티의 당 친구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좌파민주당의 달레마 총리는 1999년 여름 엄청난 규모의 연금 삭감을 발표한 일이 있다. 당시 코퍼라티는 큰 소리로 떠들면서 총파업을 하겠다고 정부에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정부는 양보를 하는 척하면서 160억리라를 삭감하는 대신 150억리라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코퍼라티는 이것을 굉장한 성공인 양 떠벌리면서 반대시위를 취소해버렸다. 그의 이러한 행적으로 미루어보건대 코퍼라티의 베를루스코니 정부에 대한 비타협적인 태도는 순수한 열정에서 나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은 좌파민주당이 계속 증폭되고 있는 대중의 반정부 열기를 제대로 담아낼 수 없을 정도가 돼버리고 노조의 조직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월 총파업이 오면…
이날 시위가 있은 뒤 농업장관인 지오바니 알레마노는 “대규모 시위는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혁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시인했으며 “4월 중순에 예정된 총파업이 상당히 걱정스럽다”는 표현도 했다.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 처음 총리가 됐을 때 사회보장제도의 가장 중요한 뼈대인 연금제도의 개혁을 추진하다가 노동자들의 대규모 항의시위에 놀란 적이 있으며 그 뒤 정권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베를루스코니의 논리는 철저히 자본가의 논리다.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고용구조가 바뀌어야 산업이 경쟁적일 수 있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는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호황이 와서 일손이 모자라도 새로운 사람들을 고용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왜냐하면 경기가 침체하여 일손이 남아돌아도 이들을 해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면서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법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에서 수백km 떨어진 튜린에서 온 공장노동자인 살바토르 피초는 “정부는 1994년에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반을 잃어버리고 권력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노동자의 경고처럼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3월2일과 3월23일에 있었던 대규모 시위에 의해서 정권존립의 기반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이며 곧 이어 벌어질 4월 총파업은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최근에 표출된 이탈리아 국민들의 열기는 좌파 정당들을 통일시키는 계기가 돼서, 이탈리아 정가의 판도를 완전히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3월23일 로마 시위에 직접 참여한 피터 슈와츠는 독일 출생으로 국제사회주의(IS) 그룹과 함께 국제사회주의 운동을 양분하고 있는 제4인터내셔널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피터 슈와츠/ 자유기고가·국제사회주의 운동가

사진/ 3월23일 로마에 모인 시위대. 노동법 개악에 반대해 일어난 이날 시위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시위로 평가된다. (SYGMA)
제반 상황이 변하면서 집회 주최 쪽은 민주적 권리에 대한 탄압 반대, 테러리즘 반대, 복지국가의 고수라는 이슈로 시위의 목표를 확대시켰다. 테러리즘에 반대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주최 쪽과 군중은 집회가 시작되기 전 1분간 비아기 교수를 애도하는 묵념을 가지기도 했다. 사실 이날의 집회는 지난 3월 초에 수십만의 노동자들이 로마에서 시위를 가진 이래 예정된 시위라는 점에서 비아기 교수의 암살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낀 베를루스코니가 저지른 짓이라는 의혹을 갖고 있다. CGIL 의장인 코퍼라티는 집회에서 군중에게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합법적인 권리를 선언하려고 모여들 때 암살이 일어났다”면서 비아기 교수 암살사건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군중의 규모에 놀란 CGIL의 한 간부는 “베를루스코니가 1994년 연금제도를 고치려고 했을 때 100만 노동자들의 반대에 직면했던 날처럼 오늘이 베를루스코니 최후의 날”이라고 선언했다. 이날의 집회는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대표하는 모든 것에 반대한 것이었다. 시위 행렬은 상공에서조차 분명하게 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고대 전차경기장인 ‘서커스 막시무스’로 여섯 방향에서 노조와 당의 붉은 피켓들이 바다를 이루면서 한 군데로 모여드는 장관을 연출했다. CGIL과 더불어 모든 야당들, 특히 중도좌파인 올리브나무동맹까지 시위에 참가했다. 또한 반세계화그룹들과 베를루스코니 진영의 권위주의적 성격에 반대하면서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올해 조직된 ‘기로톤디운동’이라는 단체도 참가했다. 한 참가자의 말을 빌리자면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여느 시위와는 다르게 이탈리아 인구의 거의 모든 출신, 직업, 성, 나이를 총망라했다고 한다. 즉 버스 안이나 술집이나 길거리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국에서 10만대의 버스와 60대의 특별전세기차, 4척의 배와 개인승용차, 비행기로 모여들었다. 시칠리아로부터 24시간 동안 배와 버스로 달려온 리타는 “우리는 이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를 그냥 짓밟아버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수십년의 힘든 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라고 외쳤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인 시몬느는 “나는 그냥 노동자들의 권리를 방어하기 위해 온 것만이 아니라 이 정부가 해오고 있는 모든 것에 반대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다”고 밝혔다. 3월23일의 시위는 이탈리아인 대다수는 베를루스코니 정부를 꿋꿋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이탈리아 언론과 세계 언론의 환상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러한 환상은 베를루스코니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혐오가 제대로 조직화된 정치적 표현으로 나타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될 수 있었다. 5년의 집권기간 동안에 올리브나무동맹은 우익적인 사회정책을 통해 베를루스코니의 집권에 길을 터줬고 지난해 5월 선거에서 패배한 뒤에도 제대로 된 야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떠오르는 스타 코퍼라티는 누구인가

사진/ 94년 총리에 올랐으나 부패 스캔들로 7개월 만에 사임한 베를루스코니. 지난해 총선에서 보여준 화려한 재기의 신화는 이번 시위로 위기에 처했다.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