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들 ‘팔레스타인 침공 실시간 보도’ 보며 분노 폭발… 이스라엘 정보독점 시대는 끝났다
예순두살 요르단 여성 라비베 탄노우스는 얼마 전, 어떤 위성방송 수신용 안테나를 살 것인지를 놓고 크게 망설였다. 아랍 채널들만 잡을 수 있는 게 100달러 정도인 반면 유럽 채널들까지 모두 잡을 수 있는 건 150달러쯤 했던 탓이다.
“방송 채널이 제공하는 정보와 뉴스를 어떻게 하면 싼값으로 구입할 수 있을까?” 탄노우스와 같은 망설임은 요즘 아랍 시민들 사이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유행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말할 것도 없이, 최근 아랍의 수많은 ‘탄노우스들’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는 이스라엘 탱크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팔레스타인 시민들이고, 이 참상을 아랍과 국제사회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다.
아랍 전역, 시차 없는 즉각적 반응
전과 비교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꼽으라면 정보의 다양성과 뉴스의 신속성이라 할 만한데, 바로 위성방송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전쟁 소식이 일방적인 경로를 통해 무차별 보급되고 선전되던 시절은 끝났다는 생각이 확연하게 들 정도다. 이스라엘의 탱크가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난타하던 일이야 어제오늘 일도 아닐뿐더러 이미 50년이 넘도록 계속되어 왔던,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현장의 시민들에게는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일도 아니었지만, 그동안에는 이런 실정을 국제사회가, 심지어 아랍 세계조차도 정확히 인식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뉴스보급 경로가 없었던 데다, 모든 뉴스가 이스라엘의 손으로 철저하게 각색되었기 때문이다. 걸프전이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오사마 빈 라덴이 카타르의 <알자지라>를 소개했다면, 요즘 팔레스타인 시민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 이스라엘 탱크들은 아랍의 위성방송들을 키워주고 있다.
아랍 시민들이 금요일 휴가를 즐기고 있던 지난 3월29일, 보통 금요일이면 일을 제쳐놓고 휴식을 취하거나 가족들과 나들이를 즐기거나 아니면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가벼운 웃음거리에 낄낄대는 정도였는데, 아리엘 샤론의 탱크부대가 팔레스타인의 라말라로 진격해 야세르 아라파트의 집무실을 공격하면서 아랍 전역이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수백만 아랍 시민들의 눈은 이스라엘 탱크가 인구 밀집지인 라말라로 쳐들어가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위성방송 뉴스에 꽂혔고, 위성방송들이 하루종일 ‘라이브’를 띄운 탓에 아랍 시민들 사이에는 유례 없는 분노가 폭발했다. 지난 50년 동안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시민을 공격해왔지만, 이번처럼 시차 없는 즉각적인 반응이 아랍 전역을 광범위하게 격노케 한 경우는 없었다.
“위성방송은 어떤 정치 집단들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원했다.” 저명한 여성운동가 압라 아부 아리즈는 인터넷 라디오 암만넷을 통해 위성방송의 위력을 평가했다.
새로운 전달수단을 통한 신속한 정보의 보급 결과, ‘예정’된 분노는 강화되었고 아랍 전역의 거리는 항의 시위대로 들끓었다. 이런 가운데 많은 경우는 누가 그 시위의 배경인지도 알 수 없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한 예로 라이브 위성방송 뉴스가 전해주는 현장 상황에 맞춰 젊은이들은 무선전화기 메시지로 일거에 수천명에게 언제, 어디서 시위를 벌이자는 정보를 신속히 전달하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미국과 유럽 대사관 앞에서 벌인 철야 촛불시위가 대표적인 경우다. 위성방송 뉴스가 실시간 현장을 보도하는 가운데 무선전화 메시지를 통해 단 몇 시간 만에 수백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방송국 공격한 뒤 포르노 틀어
“아랍 위성방송 채널들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공격하는 예민한 상황을 24시간 전하면서 이제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실질적인 전위대가 되었다.” 프랑스 뉴스 에이전시두바이 지국이 내린 결론이다.
이니 로 대변되던 위성방송의 독점시대는 저물고, 이제 아랍에는 아랍 출신의 위성 채널들이 서로 격렬한 경쟁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전령사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아랍의 을 외치며 위성방송을 주도해온 카타르의 <알자지라>에 이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소유의 가 위력적인 송출을 하며 아랍의 눈으로 아랍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쯤 되고 보니 이스라엘군은 방송을 적의 심장처럼 인식하면서 다양하고 치명적인 방법으로 방송 학대를 시작했다. 방송 취재차량이 이스라엘군으로부터 실탄 세례를 받는 건 예사고 취재기자들이 총격을 받아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방송사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까지 서슴지 않아 지난 1년 반 동안, 팔레스타인의 수많은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불탔다. 또 최근에는 지방방송 <와탄티비>가 사용하고 있는 라말라의 고층빌딩을 공격한 이스라엘군이 방송사의 일꾼들을 모두 몰아내고 대낮에 포르노를 내보내는 야만적인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
최근 이스라엘이 방송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건 말건, 지난 50년 동안 제한된 정보, 차단된 뉴스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해결의 장애물이었다면, 다채로운 위성방송의 출현은 쌍방의 이해를 높이며 평화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조금 더 확장해서 보자면, 이 해묵은 과제는 싫든 좋든 현실적으로 미국의 입장이 가장 중요한 대목처럼 여겨져온 게 사실인데, 이 과정에서도 미국의 정치를 주도하는 이들이나 납세자들이나 모두 일방적인 정보에 의존함으로써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조작하고 배급하는 정책과는 별개로 자신들이 그 속에 함몰된 것이다. 가령 부시나 파월 같은 이들이 현재 폭증하는 아랍의 분노를 심각하게 깨닫지 못해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에게나 납세자들에게나, 아랍의 시민들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을뿐더러 흥미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들린 모양인데, 이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과 언론이 모두 이스라엘과 그 후견인 미국의 손아귀에 쥐여 있었던 까닭이 아니었나 싶다. 만약 미국의 납세자들이 만이 아니라 아랍 위성방송의 뉴스를 통해 정확한 사태를 볼 수 있었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이스라엘군의 탱크가 시민들의 집으로 진격해 안방에다 불을 뿜고, 람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공격용 헬리콥터 아파치가 시민들의 머리 위에서 각종 미사일을 퍼붓고, 임신한 어머니와 세살 먹은 계집아이가 피투성이로 울고 있는 장면들이 미국의 어머니들에게 정직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면 말이다.
국제회의까지 못 가게 하는 불법성
부시가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 공격만이 역사의 시작이었고 종결이라는 식의 유치한 인식을 끝내 물고늘어질 수 있는 것도 모두 제한된 정보 아래서 가능한 일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가 없다. 적어도 아랍의 방송을 볼 수 있는 아랍 세계에서는 말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외국군(이스라엘)이 외국시민(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일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는 아랍분쟁은 그 배경을 들여다보아야만 해결의 가능성도 캘 수 있을 터인데, 불행히도 유독 미국이 선택한 렌즈로는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아랍국가들이 이런 미국에게 현실 속에 드러나는 곁가지만을 보지 말고 분쟁의 뿌리를 보라고 요구해왔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의 침공이라는 근본적인 병보다는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 공격이라는 일시적인 증상만을 죽어라 물고늘어지고 있다.
1967년 국제사회의 규범을 심각하게 깨뜨린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대 아랍 영토공격 당시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의 침공을 ‘용납할 수 없는 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철수를 결정했다. 지난 35년 전의 국제연합 결정만을 새삼스레 뒤질 일도 아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영토 내에서 벌어진 불법적인 유대인 정착촌 건설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제4차 제네바협정은 또 어떻게 되었던가?
너무 먼 옛날의 일이라고? 그러면 지난주로 돌아가보자. 이스라엘은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의 아랍정상회담 참가를 저지했다.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랍정상회담에 “그가 참가한다면 돌아오지는 못한다”는 굴욕적인 경고 아래. 이스라엘로부터 아라파트의 참가가 물리적으로 거부된 아랍정상회담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전쟁회의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가 제안한 중동 평화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낼 자리였다. 국제적인 회의도 국가 간의 외교도 모조리 무시하는 불법성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옳은가?
아랍사회는 경악했고, 아라파트는 결국 비디오를 통해 사우디의 평화중재안에 동의했다. 아라파트는 ‘우리 아이들과 당신의 아이들’의 형식을 빌려 포괄적인 평화중재안에 이스라엘이 긍정적으로 대답해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랍 정상들이 만장일치로 사우디의 평화중재안을 통과시킨 뒤, 정반대의 사태가 터졌다.
‘자살공격’ 핑계만 대지 말라
심각한 폭발이 일어났다. 유월절(유대력의 1월14일에 해당하는 유대인의 축제) 성찬에 참가했던 20명의 유대인 죽었고 수많은 이들이 다쳤다. 팔레스타인자치기구는 즉각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며 강경파 이슬람단체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라파트뿐만 아니라 300만명의 팔레스타인 전 시민들이 1년 반이 넘도록 이스라엘군에 포위당해 옴짝달싹도 못했던 상태에서 자신들의 대표자를 아랍정상회담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한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 탓이었다.
최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속의 순환적인 폭력은 매우 파괴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양쪽은 서로 이것저것 따지며 폭력 발생의 배경이 상대방의 공격 탓이라고 덮어씌우기 바빴고. 그렇더라도 이 악순환을 깨트릴 여전히 유효한 방정식은 있다. 이스라엘이 ‘빽’으로 여겨온 미국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멈추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며 동시에 유일한 대안이다. 미국이 아랍평화의 후견인- 이걸 중재자라 하든 말든- 을 자처한 이상 미국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의무가 있다. 미국은 ‘자살폭탄공격’이라는 현상 하나에만 목을 매고 지난한 분쟁의 역사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제연합이 결의한 대로 이스라엘에게 침공의 종지부를 찍도록 강요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국가 건설을 지원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뜻이다.
정직한 뉴스에 목말라하며 그 해결책을 찾아나선 예순두살의 탄노우스는 이제 더 이상 아랍의 시민들 사이에 ‘별종’이 아니라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과 그 동맹국 이스라엘은 깨달아야 할 때가 왔다. 위성방송이 이스라엘군의 야만적인 행위도 또 미국의 이기적인 태도도 이제 모든 아랍 가정에 속속들이 전달해주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이전에 잘사는 아랍인들- 주로 미국식 교육을 받은- 만이 향유했던 위성방송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과 반향을 무시하는 태도는 더 이상 국제사회의 가치로 통용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사태를 풀 수 있다는 의미다.
더 이상 무의미한 논쟁을 하지 말자
보자. 레바논의 아랍정상회담에서 결의한 평화안은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분쟁을 종식시킬 만한 매우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담은 것임을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았던가. 이 평화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에는 자유와 독립이 이스라엘에는 안전과 안정이라는 서로 갈망해왔던 꿈이 현실 속에 등장했다.
더 이상 달걀과 닭의 순서를 따지는 건 당면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상이 다 알듯이 닭이 먼저인 까닭이다. 평화롭게 살던 팔레스타인의 땅에 이스라엘이 국가를 건설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 비무장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학살하지 않았다면,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자살폭탄공격 같은 끔찍한 일이 절대로 벌어지지 않았다고 장담해왔다.
인류에게는 보편성이 있었고, 역사의 흐름은 상식을 창조했다. 런던 시민이 아무 일도 없었는데 줄줄이 폭탄을 지고 가서 파리에서 자폭하는 일은 결코 벌어진 적이 없었다. 위성방송은 이제 팔레스타인 땅에도, 아랍 세계에도 이런 보편성과 상식을 전달해주는 무기가 되고 있다. 방송을 독점했던 이스라엘과 미국, 그래서 일방적인 몰이를 보편성이라 또 상식이라 포장했던 시대는 끝났다.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전 <알쿠드스> 신문 기자·칼럼니스트

사진/ 아밀라로 진격해 들어가는 이스라엘 탱크들. 이 탱크들은 아랍의 위성방송들을 키워주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GAMMA)
전과 비교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꼽으라면 정보의 다양성과 뉴스의 신속성이라 할 만한데, 바로 위성방송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전쟁 소식이 일방적인 경로를 통해 무차별 보급되고 선전되던 시절은 끝났다는 생각이 확연하게 들 정도다. 이스라엘의 탱크가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난타하던 일이야 어제오늘 일도 아닐뿐더러 이미 50년이 넘도록 계속되어 왔던,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현장의 시민들에게는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일도 아니었지만, 그동안에는 이런 실정을 국제사회가, 심지어 아랍 세계조차도 정확히 인식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뉴스보급 경로가 없었던 데다, 모든 뉴스가 이스라엘의 손으로 철저하게 각색되었기 때문이다. 걸프전이


사진/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그의 눈엔 자살공격만 보일 뿐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SYGMA)

사진/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폭력적 악순환을 끊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을 지원하는 일이다. (GAMMA)


사진/ 자신의 집무실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아라파트. 이스라엘의 저지로 아랍정상회담 참석이 무산되자 아랍인들은 경악했다.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