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탱크의 반문명적 공격에 방송사를 파괴당한 다오우드 쿠탑의 국제호소문
이 편지는 다오우드 쿠탑의 팔레스타인 현지발 기사가 마감된 2시간 뒤, 급전 꼬리표를 달고 보내져온 것이다. <한겨레21>은 쿠탑 자신이 썼던 기사와 깊은 연관성을 지닌 이 편지를 국제사회의 독립언론 투쟁을 지원한다는 뜻에서 싣기로 결정했다. 예루살렘 출신의 팔레스타인 시민 다오우드 쿠탑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을 모두 겨냥해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른 대가로 양쪽 당국으로부터 체포, 투옥을 거듭 당해온 세계적인 언론인이다. <한겨레21>의 ‘아시아 네트워크’ 필진 중 한명이기도 한 그는 현재 라말라의 알쿠드스대학 부설 현대미디어연구소 소장 겸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편으로는 알쿠드스 교육방송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끈질긴 언론 투쟁으로 2001년 국제언론연구소가 제정한 언론영웅상을 비롯해 각종 언론자유상을 수상했다. 편집자
아시아 네트워크 동지들에게.
이렇게 화가 날 수가 없다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여태 나는 뭘 해왔으며, 또 지금 내가 왜 이런 편지를 쓰게 되었는지에 이르기까지. 부디 알려주게나. 신문이든 잡지든 어떤 매체든 좋으니 가능한 공간이 있다면 정확한 우리 현실을 말일세.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네 나는 아직도 1997년 3월 팔레스타인 자치기구로부터 라말라에 있는 알쿠드스대학의 현대미디어연구소에 방송사 개설을 허가한다는 한장의 문서를 받아들던 그 감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네. 아무런 재원도 없었지만 넘치는 정열 하나로 알쿠드스 교육방송사를 세우며, 우린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지. 정부로부터도 상업적인 자본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진정한 독립언론으로 우뚝 서자고. 되돌아보면 참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우린 수많은 동지들의 힘을 입으며 지난주까지만 해도 뜻했던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자랑스럽게 수행해왔다네. 그러나 5년 전 유리잔에 놀고 있는 금붕어에다 베토벤 음악을 깔아 40와트짜리 송출기로 첫 화면을 쏘아올렸던 그날의 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네. 우리 방송사는 폐쇄당해 버렸고 방송장비는 모조리 파괴당해 버렸고 방송사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놀이터로 둔갑해 버렸다네. 방송사가 폐쇄당할 만한 아무런 일도, 어떤 불법적인 행위도 없었던 탓에 그저 반문명적인 공격이었다는 결론만 내리고 있을 뿐이지. 그 사이 팔레스타인의 수많은 방송사들이 공격을 받는 동안 우리도 고달팠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 방송사는 괜찮으리라 믿었는데…. 자네들이 알다시피 그동안 우리는 이스라엘과, 심지어 팔레스타인 당국으로부터도 핍박받아왔지만 용케 견뎌오지 않았던가. 팔레스타인 자치당국의 고위 인사들과 국영방송이 처음부터 우리를 달갑잖게 여기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지. 팔레스타인 입법위원회 선거 생방송을 국영방송이 전파방해로 해코지하더니, 결국 나를 체포해서 감옥에 처넣어버리지 않았던가. 당시 국내외 동지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일주일 만에 풀려나긴 했지만 말일세. 그로부터 팔레스타인에서 자치당국을 비판하는 유일한 방송사로 낙인찍혀 버렸지만, 우리는 언론의 자유와 정치·경제적 사상의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애초 의지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네. 우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방송사의 건설이 결국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팔레스타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견뎌왔지. 그동안 우리가 가족문제나 공공의료 부문, 그리고 환경문제에 집중했던 까닭도 가족의 응집력과 최소한의 주거환경이 독립적인 사회를 이룩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믿음에서였다네. 이런 바탕에서 우리 알쿠드스대학 총장 사리 누세이베가 내렸던 용감한 결정을 기억하는가? 왜, 팔레스타인-이스라엘판 <세서미 스트리트>(미국의 유명한 유아교육 텔레비전 프로그램)를 이스라엘 방송과 공동제작해서 적대감에 사로잡힌 두 사회의 어린이들에게 다양성 존중과 관용을 가르치자는 계획 아래 만들었던 그 프로그램 말일세. 팔레스타인 쪽에서도 말썽 많았던 그 프로그램으로 당시 네타냐후 총리 정부의 눈에 거슬려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말았지만. 그 무렵 이스라엘이 공격을 중단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한 게 비단 아이들뿐이었겠어? 스태프들, 체포직전 송출기 차단
어쨌든 우린 양쪽 당국의 ‘가자미 눈’ 아래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다네. 지난주까지도 말일세. 최근 들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방송사를 공격하는 사건이 다발했지만, 우린 최후까지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무진 노력을 기울였던 게 사실이네. 그건 어떻게 해서든지 방송을 지켜내야 한다는 결심 때문이었지.
탱크가 라말라를 짓밟기 시작한 초기까지만 해도 우린 공공서비스를 포함해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계속 송출할 수 있었다네. 방송 스태프들이 통금 탓에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지만 방송사가 라말라 시가지에서 벗어난 분쟁의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지. 병원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프로그램에서부터 유니세프와 함께 제작한 전쟁 장애아들과 그 부모들을 돕는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 상황도 결국 오래 갈 수 없었다네. 2002년 4월2일 오전 6시30분, 이스라엘군은 알쿠드스대학의 4층짜리 의료학과 건물에 진입해서 장비들을 모조리 파괴하면서 우리의 꿈을 산산조각내기 시작했다네. 교육학과 건물은 모든 사무실의 기자재들과 사무집기마저 깨트려졌고, 남아 있던 2명의 방송 스태프들이 체포됐지.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방송 스태프들이 체포당하기 직전 송출기를 차단하는 용기를 발휘해서 이스라엘군이 와탄방송사에서 저질렀던 것과 같은 야만적인 장난질만은 막을 수 있었다네. 이미 자네들도 소문을 들었겠지만, 얼마 전 라말라의 와탄방송을 점령한 이스라엘군이 대낮에 포르노를 내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던 일 말일세.
이스라엘 군인들은 우리 방송사가 설치되어 있던 4층 건물에서 방송 카메라와 장비뿐만 아니라 값을 따질 수도 없을 만큼 소중한 기록 테이프들을 1층 땅바닥으로 내던진 뒤, 다섯대의 탱크를 동원해 깔아뭉개 버렸지. 학교 주차장에는 현재 이스라엘군의 탱크가 진주해 있는 실정이고. 사태가 좀 진정되고 나서 보니 그나마 다른 방송사처럼 스태프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린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네.
그러나 분명한 건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일생을 바쳐 힘들게 성취한 일들을 단숨에 깨트려 무력감에 빠트리겠다는 이스라엘의 저의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네. 시민의 꿈을 깨뜨린 행위 말일세. 그 꿈이란 것은 개인의 것이든, 유용한 교육방송사이든, 집합적인 국가 건설을 위한 것이든, 어떤 이유에서도 침해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믿음일세.
이스라엘 감방과 팔레스타인 감방
이런 잔인한 경험을 하고 나니 그 치명적이고 야비한 공격을 했던 이들이 속한 사회든 국가든 종교든 무엇이든 간에 다시는 존중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고 마네.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네. 폐허가 되어버린 방송사를 바라보며 짓는 한숨보다는, 흘리는 눈물보다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말일세. 5년 전 황무지에서 동지들의 도움으로 불가능하다던 일을 해냈던 그날의 기억을 거듭거듭 되새기면서. 자네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꿈이 살아날 수 있도록 내게 매서운 매를 들어주게나. 내가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말일세. 내 머지 않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자네들의 환히 웃는 얼굴을 쳐다볼 수 있게 말일세.
이제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독립국가 건설뿐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네.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 안에서 독립언론을 죽어라고 외쳐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우스개 같지만 이스라엘 감방에도 또 팔레스타인 감방에도 처박혀본 결과, 시설은 비록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팔레스타인 감방이 마음만은 편했던 걸 기억해보네. 언론독립, 언론자유도 내 조국에서나 외칠 주제인가 싶네. 자네들에 비해 내 생각이 너무 편협한가? 아무튼 미안하네, 좋은 소식 전하지 못해. 모쪼록 다시 만날 날까지 모두들 건강 조심하게나. 2002년 2월5일.
라말라에서 쿠탑 올림.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전 <알쿠드스> 신문 기자·칼럼니스트

사진/ <알쿠드스> 교육방송의 편집실 내부에서 편집자와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필자(오른쪽). 이 편집실도 이스라엘군 탱크에 의해 초토화됐다.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네 나는 아직도 1997년 3월 팔레스타인 자치기구로부터 라말라에 있는 알쿠드스대학의 현대미디어연구소에 방송사 개설을 허가한다는 한장의 문서를 받아들던 그 감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네. 아무런 재원도 없었지만 넘치는 정열 하나로 알쿠드스 교육방송사를 세우며, 우린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지. 정부로부터도 상업적인 자본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진정한 독립언론으로 우뚝 서자고. 되돌아보면 참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우린 수많은 동지들의 힘을 입으며 지난주까지만 해도 뜻했던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자랑스럽게 수행해왔다네. 그러나 5년 전 유리잔에 놀고 있는 금붕어에다 베토벤 음악을 깔아 40와트짜리 송출기로 첫 화면을 쏘아올렸던 그날의 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네. 우리 방송사는 폐쇄당해 버렸고 방송장비는 모조리 파괴당해 버렸고 방송사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놀이터로 둔갑해 버렸다네. 방송사가 폐쇄당할 만한 아무런 일도, 어떤 불법적인 행위도 없었던 탓에 그저 반문명적인 공격이었다는 결론만 내리고 있을 뿐이지. 그 사이 팔레스타인의 수많은 방송사들이 공격을 받는 동안 우리도 고달팠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 방송사는 괜찮으리라 믿었는데…. 자네들이 알다시피 그동안 우리는 이스라엘과, 심지어 팔레스타인 당국으로부터도 핍박받아왔지만 용케 견뎌오지 않았던가. 팔레스타인 자치당국의 고위 인사들과 국영방송이 처음부터 우리를 달갑잖게 여기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지. 팔레스타인 입법위원회 선거 생방송을 국영방송이 전파방해로 해코지하더니, 결국 나를 체포해서 감옥에 처넣어버리지 않았던가. 당시 국내외 동지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일주일 만에 풀려나긴 했지만 말일세. 그로부터 팔레스타인에서 자치당국을 비판하는 유일한 방송사로 낙인찍혀 버렸지만, 우리는 언론의 자유와 정치·경제적 사상의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애초 의지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네. 우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방송사의 건설이 결국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팔레스타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견뎌왔지. 그동안 우리가 가족문제나 공공의료 부문, 그리고 환경문제에 집중했던 까닭도 가족의 응집력과 최소한의 주거환경이 독립적인 사회를 이룩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믿음에서였다네. 이런 바탕에서 우리 알쿠드스대학 총장 사리 누세이베가 내렸던 용감한 결정을 기억하는가? 왜, 팔레스타인-이스라엘판 <세서미 스트리트>(미국의 유명한 유아교육 텔레비전 프로그램)를 이스라엘 방송과 공동제작해서 적대감에 사로잡힌 두 사회의 어린이들에게 다양성 존중과 관용을 가르치자는 계획 아래 만들었던 그 프로그램 말일세. 팔레스타인 쪽에서도 말썽 많았던 그 프로그램으로 당시 네타냐후 총리 정부의 눈에 거슬려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말았지만. 그 무렵 이스라엘이 공격을 중단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한 게 비단 아이들뿐이었겠어? 스태프들, 체포직전 송출기 차단

사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시신들이 라말라의 한 병원 영안실에 보관돼 있다. 철수하지 않는 이스라엘군 때문에 장례조차 못 치르고 있다.(GAMMA)

사진/ 망신창이가 도니 라말라 거리의 건물모습.(GAMMA)









